전신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6:10-20) — 영적 전쟁의 성경적 이해
바울이 말하는 영적 전쟁은 무엇이며, 여섯 갑주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가
진리를 향한 정직한 물음과 사유가 머무는 공간, 현대 신학의 흐름 속에서 개혁주의 가치를 탐구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영적 전쟁은 무엇이며, 여섯 갑주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가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 세 가지 입장의 신학적 전제와 개혁주의의 판단
신앙생활이 어려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순종인가, 도피인가. 이주와 머묾 사이에서 분별하는 네 가지 시금석.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했는가, 성취했는가. 세대주의와 강경 대체신학 사이에서 개혁주의 언약신학이 서는 자리.
웃시야가 죽던 해, 선지자가 본 것은 인간 왕의 빈 보좌가 아니라 하늘 보좌에 앉으신 참된 왕이었다. 삼중 거룩의 외침, 숯불의 정결, 그리고 '나를 보내소서'의 응답.
교회에서 자주 듣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 그 안에 담긴 따뜻하고 단단한 진실을 새봄과 함께 천천히 풀어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반역한 사탄을 지금 당장 소멸시키지 않으시는 이유를 개혁주의 섭리론·악의 허용(permissio)·구속사의 내적 논리로 풀어낸다.
광야의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는 왜 얼굴을 가렸는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이 열어 주는 하나님의 자존성과, 그 이름을 자기 것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
유딧은 입술의 속임수로 적장의 목을 벴다. 라합도 야엘도 거짓을 말했다. 정경 안의 거짓말과 외경의 거짓말은 같은가 다른가. 윤리의 차이가 영감의 차이를 드러낸다.
드라마 속 악마는 잊으셔도 괜찮아요. 성경이 말하는 마귀는 이미 십자가에서 패배한 적이에요.
가나안 진멸, 아말렉 학살 — 신무신론자들이 반복하는 이 비난 앞에서, 우리는 본문을 정직하게 읽어야 한다. 400년의 유예, 몰렉의 토펫, 헤렘의 언약적 의미까지.
나는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는 안 다닌다는 현대의 유행 명제를 해부한다. 가나안 성도 현상을 목양적으로 끌어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몸·은혜의 방편·가시 교회와 비가시 교회의 구분을 통해 개인 신앙주의의 한계를 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