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경과 정경 사이 2부: 침묵의 400년 — 마카베오기로 읽는 구약과 신약 사이
말라기 이후 400년, 하나님은 정말 침묵하셨는가. 마카베오기는 그 시대를 기록하면서도 스스로 선지자가 없다고 고백한다. 말씀이 멈춘 시간에 섭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진리를 향한 정직한 물음과 사유가 머무는 공간, 현대 신학의 흐름 속에서 개혁주의 가치를 탐구합니다.
말라기 이후 400년, 하나님은 정말 침묵하셨는가. 마카베오기는 그 시대를 기록하면서도 스스로 선지자가 없다고 고백한다. 말씀이 멈춘 시간에 섭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마리아 공경과 성인 중보 기도를 둘러싼 천주교와 개혁주의의 근본적 차이를, 성경과 신앙고백에 비추어 탐구한다.
삼위일체가 기도, 예배, 고난, 구원의 확신을 어떻게 바꾸는지 탐구합니다
삼위일체를 빼면 기독교는 남지 않는다 — 이 교리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 탐구합니다
신자의 손에 들린 십계명은 안내자인가, 다시 메는 멍에인가. 셋째 용도를 둘러싼 세 거장의 강조점이 부딪치는 자리에서 개혁주의 윤리의 중심을 다시 묻는다.
'이루어지면 응답, 안 이루어지면 더 큰 뜻' — 이 해석이 무엇이든 정당화하는 확증 편향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 비판의 전제를 정직하게 점검한다.
같은 구약성경을 공유하면서도 결정적으로 갈라진 두 신앙 — 그 분기점의 신학적 해부
가나안 진멸·여종 매매·저주시·여인의 침묵 — 불편한 본문 앞에서 신자는 검열도 정당화도 아닌 **함께 읽기**를 배워야 한다.
안식일은 폐지된 의식법인가, 영속적 도덕법인가? 창조 안식과 구속 안식의 이중 토대 위에서 신약 시대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신학적 근거를 정리한다.
칭의는 왜 **법정적 선언**인가.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선언하는 것 — 이 한 단어의 차이가 신앙의 모든 색깔을 결정한다.
영원 전 유기 작정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왜 그들을 창조하기로 작정하셨는가. 창조 목적론에서 유기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
한정속죄의 논리와 복음의 자유로운 제공이 충돌하지 않는 이유를 성경과 신앙고백에서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