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도 않는 분을 어떻게 믿어요?”
이 질문은 솔직한 질문이다. 아마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속으로 물었을 것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분에게 인생을 맡기라는 말이 부담스럽고, 혹시 이것이 그냥 느낌에 기대는 맹신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런데 성경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면으로 답한다.
믿음은 맹신이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히브리서 11:1-2
여기서 “증거”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단어는 원래 법정에서 쓰는 용어다. 증거란 근거 없는 확신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믿겠다”가 아니다.
개혁주의 신학 전통은 믿음을 세 가지 요소로 설명한다. 첫째, 지식(notitia) — 복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둘째, 동의(assensus) — 그 내용이 참이라고 지성으로 수긍하는 것이다. 셋째, 신뢰(fiducia) — 그 진리에 자신의 전 인격을 내맡기는 것이다.
맹신은 지식 없이 곧바로 신뢰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요구하는 믿음에는 반드시 알고 수긍하는 단계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눈을 뜨라고 하셨다.
보이지 않아도 실재하는 것들
중력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 중력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성경은 하나님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고 말한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이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로마서 1:19-20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그분이 만드신 세계가 그분을 가리킨다. 밤하늘의 별, 생명의 질서, 인간 마음속에 새겨진 선과 악의 감각 — 이 모든 것이 무언가를 가리키는 화살표다. 보이지 않는 분이 자신을 보이는 것들 안에 드러내셨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연 세계에만 자신을 드러내고 멈추지 않으셨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을 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한복음 1:14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역사의 특정 시점에, 특정 장소에 발을 디디셨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사람이 되셨다.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사람들 사이를 걸으셨다. 기독교의 믿음은 안개 같은 느낌에 기대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신뢰다.
의심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시는 분
그래도 여전히 의심이 남을 수 있다. 그것도 괜찮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도마라는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믿지 못했다.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요한복음 20:27-28
주목할 것은 예수님의 태도다. 의심하는 도마를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직접 나타나셔서 손을 내밀어 보이셨다. 의심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다. 채워지지 않은 갈망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갈망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믿음은 모든 의문이 해소된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게 이해한 뒤에야 신뢰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어떤 관계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이 보여주는 믿음의 길은 이렇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역사를 통해, 그리고 마침내 그분의 아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증거 앞에 서서, 도마처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분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다. 믿음은 그 사실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