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요. 남한테 피해 안 주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열심히 살아요. 착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맞는 말입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를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기준이 누구냐의 문제
“착하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일까요? 보통 우리는 주변 사람과 비교해서 판단합니다. 나보다 나쁜 사람이 있으면 “나는 괜찮다”고 느끼죠.
그런데 성경은 다른 기준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마태복음 22:37
이 기준 앞에 서면 솔직해집니다. 하나님을 마음 다해 사랑한 날이 하루라도 있었나요? 저도,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착한 사람”은 없습니다.
착함이 채우지 못하는 것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해결하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외로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내 삶이 의미 있는가 하는 질문 —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이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착하게 살려고 노력할수록 “이 정도면 됐나?”라는 불안이 따라옵니다.
성경은 이것을 관계의 문제로 봅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은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더 착해지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제부터 더 착하게 살겠습니다”라는 결심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부모님이 계신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관계를 회복하는 건 “앞으로 밥을 잘 먹겠습니다”라는 결심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전화해서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 그게 관계의 회복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손을 내미셨고, 그 손을 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빌립보서 4:7
착하게 사는 것으로는 얻기 어려운 평안 — 이것이 믿음 안에서 주어집니다. 착한 삶이 나쁜 게 아닙니다. 다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