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단, 새 얼굴 10부: 도나투스주의 — 저 목사가 준 세례는 유효한가
목회자의 도덕 실패 앞에서 성도는 묻는다. '저 사람이 집전한 성례는 무효 아닌가?' 4세기 북아프리카의 한 분파가 먼저 그 질문을 던졌다.
진리를 향한 정직한 물음과 사유가 머무는 공간, 현대 신학의 흐름 속에서 개혁주의 가치를 탐구합니다.
목회자의 도덕 실패 앞에서 성도는 묻는다. '저 사람이 집전한 성례는 무효 아닌가?' 4세기 북아프리카의 한 분파가 먼저 그 질문을 던졌다.
바룩서 1장의 회개 기도는 다니엘 9장과 놀랍도록 닮았다. 그러나 두 기도 사이에는 '경건한 모방'과 '예언적 영감'의 차이가 있다.
무신론자는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증거'의 기준 자체가 어디에서 오는지 묻는 순간, 질문의 방향이 뒤집힌다.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 세 가지 입장의 신학적 전제와 개혁주의의 판단
신앙생활이 어려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순종인가, 도피인가. 이주와 머묾 사이에서 분별하는 네 가지 시금석.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했는가, 성취했는가. 세대주의와 강경 대체신학 사이에서 개혁주의 언약신학이 서는 자리.
유딧은 입술의 속임수로 적장의 목을 벴다. 라합도 야엘도 거짓을 말했다. 정경 안의 거짓말과 외경의 거짓말은 같은가 다른가. 윤리의 차이가 영감의 차이를 드러낸다.
가나안 진멸, 아말렉 학살 — 신무신론자들이 반복하는 이 비난 앞에서, 우리는 본문을 정직하게 읽어야 한다. 400년의 유예, 몰렉의 토펫, 헤렘의 언약적 의미까지.
나는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는 안 다닌다는 현대의 유행 명제를 해부한다. 가나안 성도 현상을 목양적으로 끌어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몸·은혜의 방편·가시 교회와 비가시 교회의 구분을 통해 개인 신앙주의의 한계를 직면한다.
2세기의 한 부유한 선주가 성경을 가위로 잘랐다. 오늘도 많은 강단이 같은 가위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이슬람은 유일신·성경·예수를 인정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삼위일체 부정, 성경 변조론, 십자가 부정, 저울의 구원론이라는 네 지점에서 '인정'은 '재창작'임이 드러난다.
유기의 문제, 운명론과의 차이, 전도의 동기, 그리고 예정론이 신자에게 주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까지 — 예정론의 나머지 절반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