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 채워지지 않는 자리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의학은 수명을 연장했고, 기술은 거리를 지웠으며, 물질은 넘쳐난다. 그런데 왜 마음 한가운데는 여전히 텅 비어 있는가?
성공을 거머쥔 사람이 허무를 말하고, 젊은 세대는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소유가 늘어날수록 갈증이 깊어지는 이 역설 앞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찍이 이렇게 고백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하여 지으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는 쉼이 없나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권 1장
이 고백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구조에 대한 진단이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향해 만들어졌기에, 창조주 밖에서는 결코 안식을 얻지 못한다.
2. 탐구 (1) — 모든 사람 안에 새겨진 신성의 감각
지울 수 없는 각인
장 칼뱅은 『기독교 강요』 첫 장에서 참된 지혜의 전부는 두 가지 인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cognitio Dei)**과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cognitio nostri)**이다.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반드시 하나님께로 올라가게 되고, 하나님을 올바로 바라보면 비로소 자기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된다. 나아가 칼뱅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신성의 감각(sensus divinitatis)**이 심겨져 있다고 가르친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로마서 1:19-20
하늘이 선포하는 영광
피조 세계 자체가 하나님을 가리키는 거대한 표지판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 시편 19:1-4
하늘은 소리 없이 말한다. 그러나 그 무언의 선포는 세상 끝까지 미친다.
3. 탐구 (2) — 왜 자연만으로는 부족한가
죄가 가린 눈
그렇다면 왜 세상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가? 문제는 증거의 부족이 아니라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다. 예외가 없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 — 이것이 인간 공허함의 정체다. 성취로 채우려 해도, 쾌락으로 덮으려 해도 해결되지 않는 그 결핍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한 데서 온다.
성경이라는 안경
칼뱅은 이 상황을 시력을 잃은 사람에 비유한다. 자연이라는 책은 펼쳐져 있으나, 우리의 눈이 흐려졌다. 그래서 성경이라는 안경이 필요하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시편 119:105
특별 계시인 성경 없이는, 인간은 자연 계시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다.
4. 탐구 (3) — 오직 한 분, 삼위일체 하나님
자존하시는 존재
현대 사회는 말한다 — 어떤 신이든 상관없지 않은가.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피조물과 본질적으로 다른 분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존재하기 위해 다른 무언가에 의존해야 한다. 반면 하나님은 **자존하시는 분(aseitas)**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의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시다.”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4문
유한하고, 시간 속에 있으며, 변하는 것들은 — 돈이든, 명예든, 사상이든 — 결코 인간 영혼의 궁극적 안식처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열리는 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안다 해도, 죄인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요한복음 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 사도행전 4:12
길은 하나다. 중보자도 한 분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성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시며, 성령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적용하시는 삼위일체적 구원 — 이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5. 발견 — 은혜로 열린 문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답
인간은 하나님을 알아야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 이것이 인간 상황의 절망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절망의 자리에서 복음이 선포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로마서 3:24
“값 없이.” 인간이 지불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손을 내미셨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 에베소서 2:8-9
존재의 목적을 되찾다
“왜 하나님인가?”에 대한 최종적 답은, 인간 존재의 목적 자체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고린도전서 10:3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이 진리를 가장 간결하게 고백한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그리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의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깊은 기쁨이다.
결론 — 질문에서 고백으로
첫째, 하나님은 자존하시는 유일한 존재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존재 근거이시다.
둘째,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신성의 감각이 새겨져 있으나, 죄로 인해 그 인식이 왜곡되었다.
셋째, 참된 하나님 인식은 성경의 조명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넷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며, 그 구원은 값 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다섯째,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요한복음 14:6
Soli Deo Gloria — 오직 하나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