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3부: 마지막 부탁 — 목회서신과 전체 조감도

바울 서신 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3부: 마지막 부탁 — 목회서신과 전체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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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이 무거워지는 감옥에서

1부에서 우리는 바울의 편지가 특정 교회의 특정 위기에 대한 처방전임을 확인했다. 2부에서는 로마서라는 복음의 설계도와, 옥중에서 쓴 네 편의 편지를 펼쳤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한 가지 유형의 편지가 더 있다. 교회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보낸 편지다.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 이른바 목회서신이다. 바울이 신뢰한 두 명의 젊은 동역자에게 쓴 편지들이고, 그중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마지막 편지다. 쇠사슬이 점점 무거워지는 로마 감옥에서,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아는 사람이, 자기 뒤에 남을 교회의 미래를 젊은이에게 맡기는 편지. 그것이 바울의 마지막 목소리다.

다른 편지들이 “지금 이 위기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룬다면, 이 세 편은 “내가 떠난 뒤에 교회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다룬다. 그래서 읽는 법이 다르다. 수신자는 한 사람이지만, 담긴 내용은 교회의 질서와 사역자의 임무 전체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젊은 동역자에게 위탁하고 있는 것이다.

편지의 현장 — 두 번의 로마 감옥 사이

사도행전 28장은 바울이 로마에서 셋집에 연금된 채 복음을 전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초대교회의 전승과 바울 자신의 진술을 종합하면, 바울은 이 첫 번째 투옥에서 일단 풀려난 것으로 보인다. 석방된 바울은 에게해 지역과 그레데(크레타)를 돌며 사역을 이어갔고, 이 시기에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썼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맡고 있었다(딤전 1:3). 에베소는 3년간 바울이 집중적으로 사역한 도시였지만, 바울이 떠난 뒤 거짓 교사들이 침투하고 있었다. 디도는 그레데 교회를 맡고 있었다(딛 1:5). “그레데인은 항상 거짓말쟁이”(딛 1:12)라는 고대 속담이 인용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섬이었다. 두 사람 모두 젊었고, 두 곳 모두 어려운 현장이었다.

그러다 주후 66-67년경, 네로의 박해가 본격화되면서 바울은 다시 체포되었다. 두 번째 투옥이다. 첫 투옥과 달리 이번에는 셋집이 아니라 지하 감옥(아마도 마메르티노 감옥)이었고, 재판은 처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떠났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남은 사람은 누가뿐이었다(딤후 4:11).

이 감옥에서 바울이 쓴 마지막 편지가 디모데후서다. 자기 죽음을 직감한 노사도가, 젊은 제자에게 급히 불러서 남긴 유언장이다.

배경을 알면 살아나는 구절 — 디모데전서와 디도서

디모데전서 3장 2-5절의 감독 자격 요건은 도덕 목록처럼 읽히기 쉽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 디모데전서 3:2-3

이 목록을 “좋은 사람이면 직분을 맡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개혁주의 전통이 직분자 선발에서 신앙과 생활(fides et mores)을 동시에 요구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품성과 교리는 분리되지 않는다. 디도서에서 이 원칙은 더 분명해진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 디도서 1:9

바른 교리를 붙드는 자만이 참된 품성을 지킬 수 있고, 참된 품성을 지닌 자만이 바른 교리를 신뢰 있게 가르친다. 이 둘이 결합될 때 사역자는 도덕적 모범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리의 증인이 된다. 칼뱅이 『기독교강요』 4권에서 길게 논한 그대로다 — 감독의 자격에서 가르침의 능력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본질 요건이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은 이 편지 전체의 열쇠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 디모데전서 3:15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 — 이것이 목회서신 전체의 요약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다. 교회가 진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떠받치고 전수하는 장치다. 바빙크가 『개혁교의학』에서 교회론을 유기체(organism)와 제도(institution) 두 측면으로 나누어 다룬 까닭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에베소서가 교회의 유기적 본질(그리스도의 몸)을 선언했다면, 목회서신은 그 유기체를 지켜 내는 제도적 구조를 가르친다. 둘은 대립하지 않는다. 제도는 유기체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레데인은 항상 거짓말쟁이”(딛 1:12)라는 인용도 배경을 알면 재미있다. 바울이 그레데 문화를 싸잡아 비난한 것이 아니다. 기원전 6세기 그레데의 시인 에피메니데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바울은 그레데 교회가 자기 섬의 속담대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복음이 들어간 곳에서는 문화의 악순환이 끊어져야 한다는 선언이다.

배경을 알면 살아나는 구절 — 디모데후서

디모데후서 4장 6-8절은 성경에서 가장 장엄한 고별사다.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디모데후서 4:6-8

“전제”(libation)는 제사 용어다. 포도주를 제단 위에 붓는 행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이 언어로 표현한다. 그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었다는 고백이다. 좌절의 냄새가 아니라 완결의 냄새다.

원어를 보면 더 선명하다. “싸우고”(ἠγώνισμαι), “마치고”(τετέλεκα), “지켰으니”(τετήρηκα) — 세 동사가 모두 완료형이다. 완료형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 현재에도 결과로 유효하다”는 시제다. “내가 싸웠고, 그 싸움은 끝났다”는 단순 과거가 아니라, “내가 싸웠고, 그 싸움의 결과는 지금도 살아 있다”는 선언이다.

특히 “마치고”(τετέλεκα)는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다 이루었다”(τετέλεσται)와 어근이 같다.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이 한 사도의 삶에서 열매 맺었다는 고백이다. 바울의 완성은 자기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성에 접붙여진 완성이다.

그래서 다음 구절의 수동태에 주목해야 한다.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 면류관은 바울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예비된 것이다. 은혜로 시작된 것이 은혜로 완성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 1항이 고백하는 성도의 견인이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받아들이신 자들, 그의 성령으로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또는 궁극적으로 타락할 수 없으며, 반드시 그 안에서 끝까지 견인할 것이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1

바울이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은 강한 의지력 때문이 아니다. 부르신 분이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이 확신이 없다면 사형 선고 앞에서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쓸 수 없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은 이 편지의 설계도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 디모데후서 2:2

바울 → 디모데 → 충성된 사람들 → 또 다른 사람들. 4세대 전수의 설계도다. 목회서신이 “계승 문서”인 이유는 단순히 후계자를 세우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 자체가 전수되어야 하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사람의 인격과 역사를 통해 성경을 주셨듯, 복음도 사람과 공동체의 신실함을 통해 흘러 내려온다.

13편의 조감도 — 지도의 완성

이제 바울의 편지 13편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점에 섰다. 각 편지는 다른 수신자와 다른 위기를 가지지만, 하나의 중심을 가리킨다.

구분서신성격
초기 서신갈·살전후·고전후갓 세워진 교회의 위기 대응 처방전
복음의 설계도로마서복음 전체의 건축학
옥중서신엡·빌·골·몬감옥에서 드러난 복음의 깊이
목회서신딤전·딤후·딛다음 세대에 넘기는 복음의 불씨

바빙크는 바울 신학을 네 축으로 정리한다. 구원론(로마서·갈라디아서가 기초를 놓는다), 교회론(고린도서·에베소서·목회서신), 종말론(데살로니가서·고전 15장·빌립보서), 윤리(로마서 12장의 “그러므로”가 경첩이 되어 교리를 삶으로 연결한다). 이 네 축이 13편 전체에 분산되어 있고, 어느 편지도 네 축 중 하나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에서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자들과 싸운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 복음을 체계적으로 펼쳤고, 고린도서에서 교회 생활로 구현했고, 옥중서신에서 극한 상황이 오히려 복음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목회서신에서 다음 세대 사역자들에게 복음을 위탁했다. 복음은 상황이 극한에 달할 때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디모데후서 1장 13-14절이 이 전체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 디모데후서 1:13-14

바른 말(건전한 가르침의 윤곽)을 지키는 것과 성령 안에서 지키는 것 — 이 둘은 하나다. 교리 없는 경건은 공허하고, 성령 없는 교리는 죽어 있다.

오늘 우리에게 — 세 개의 질문을 다시 던진다

1부에서 소개한 세 질문이 있었다. 바울은 어디서 이 편지를 썼는가, 수신자의 긴박한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처음 편지를 받아 든 사람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목회서신을 읽을 때 이 질문을 다시 던져 보라.

바울은 어디서 이 편지를 썼는가 —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마지막 자유인의 시간에, 디모데후서는 처형을 앞둔 지하 감옥에서 썼다. 수신자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 에베소와 그레데의 거짓 교사들, 그리고 바울이 떠난 뒤의 교회를 지켜야 할 젊은 목회자의 중압감이었다. 편지를 받아 든 디모데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 스승의 죽음을 예감하며,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을 것이다.

이 세 편이 오늘 한국 교회에 주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고 있는가. 프로그램인가, 건물인가, 조직인가 — 아니면 미쁜 말씀의 가르침인가. 바울이 디모데에게 맡긴 것은 교회 조직의 노하우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지켜야 할 아름다운 것이었다.

세 편의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한 가지 사실이 남는다. 바울의 13편은 지금 여기 있다. 갈라디아서의 분노도, 로마서의 장엄함도, 빌립보서의 기쁨도, 디모데후서의 고별사도 — 모두 한 책 안에 보존되어 우리 손에 건너왔다. 그것은 디모데가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켰기 때문이다. 지킨 자가 있었기에 전해졌다.

그리고 이제 그 편지는 우리의 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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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