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진짜야?” “여기 모순 아니야?”
1부에서 성경을 펴고 읽기 시작한 당신에게,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아마 약간 불안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 걸까. 믿음이 없는 건 아닐까.
좋습니다. 그 질문을 가지고 읽읍시다.
의심은 적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질문하는 사람에게 종종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진화론이나 역사비평을 접한 뒤 솔직하게 물으면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답이 돌아오고, 그 사람은 조용히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심하는 사람을 내쫓지 않습니다. 오히려 손을 내밀어 부릅니다.
제자 도마를 보십시오. 그는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못 자국을 보고 손을 넣어 보지 않으면 절대 믿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요한복음 20:27-28
예수님은 도마를 쫓아내지 않으셨습니다. 증거를 요구하는 그에게 증거를 내미셨습니다. 의심을 가지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도 곧바로 “아멘” 하지 않았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 사도행전 17:11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 정말 그런지 직접 확인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 태도를 비난하지 않고, “더 너그럽다”고 칭찬합니다. 맹신은 미신입니다. 증거를 통과하여 도달한 확신만이 진짜 믿음입니다.
의심하는 독자를 위한 읽기 경로
1부에서는 바쁜 직장인을 위해 마가복음부터 시작하는 경로를 제안했습니다. 질문이 많은 탐구자에게는 다른 순서가 필요합니다.
1. 요한복음 — 네 복음서 중 가장 논증적인 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표적과 증언과 논쟁을 통해 층층이 쌓아 올립니다. 의심하는 독자를 위해 설계된 책처럼 읽힙니다.
2. 로마서 — 바울은 이 편지에서 가상의 반론자와 계속 논쟁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롬 6:1) — 이런 식으로 반박이 예상되는 지점마다 먼저 질문을 던지고 답합니다. 지성을 존중하는 글입니다.
3. 전도서 — 놀랍게도, 성경 안에 회의주의자가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생의 부조리를 직시하는 이 책이 성경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성경이 맹목적 낙관주의의 책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4. 사도행전 —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고고학적 교차 검증이 가능한 지명, 인물, 사건이 등장합니다. 역사적 사실 여부가 궁금한 탐구자에게 검증의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질문 노트를 쓰세요 — 단,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읽다가 불편한 구절을 만나면, 덮지 말고 적으세요.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순서가 다른 것 같다.” “여기서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런 질문을 노트에 기록하되, 그 자리에서 답을 구하려 하지 마세요.
계속 읽으세요. 성경 안에서 실마리가 나타나는 경우가 놀랍도록 많습니다. 2천 년간 수많은 사람이 씨름해 온 본문을 첫 번째 독서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무리입니다. 먼저 자신의 독해를 의심하십시오. 한 절을 뜯어서 “모순이다”라고 판단하기 전에, 그 절이 놓인 단락 전체를 읽어 보십시오.
편지를 한 문장씩 뜯어 읽으면 오해합니다. 요한복음 3:16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도 앞에 니고데모와의 대화 전체가 있어야 의미가 살아납니다. 성경은 문장이 아니라 문맥으로 읽는 책입니다.
이 모든 페이지가 가리키는 한 분
질문을 가지고 읽다 보면, 언젠가 한 가지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66권의 책이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저자, 다른 장르에도 불구하고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요한복음 5:39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정보의 저장소가 아니라 한 분에 대한 증언입니다. 창세기의 제물이, 이사야의 고난의 종이, 시편의 버림받은 의인이 — 모두 같은 한 분을 가리키는 화살표입니다. 이 패턴을 발견하는 순간, 성경의 “모순”으로 보이던 것들이 다른 빛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성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마지막 한 걸음
여기까지 읽은 당신에게 한 가지 정직하게 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질문하고, 탐구하고, 맥락을 읽고, 패턴을 발견하는 것 — 이 모든 과정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마지막 한 걸음을 뗄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 고린도전서 2:14
성경은 스스로 이렇게 선언합니다. 순수한 지적 분석만으로는 이 책의 핵심에 닿을 수 없다고. 이것은 반지성주의가 아닙니다. 지성을 다해 탐구하되, 동시에 “깨닫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닫힌 마음을 억지로 열지 않으시지만, 열린 마음에는 빛을 비추십니다.
의심을 가지고 오십시오. 질문을 놓지 마십시오. 그리고 읽기 전에 이 한 마디를 덧붙여 보십시오 — “만약 당신이 정말 있다면, 내가 읽는 이 페이지에서 말해 주십시오.”
이 기도가 어색해도 괜찮습니다. 정직한 기도는 언제나 어색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질문이 아니라 분노에서 성경을 펼칩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 분노를 품고 읽는 것 — 놀랍게도, 그것이 가장 정직한 읽기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