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질문 하나
성경을 처음 펼치는 사람에게 구약은 당혹스러운 세계다. 제사와 피, 전쟁과 율법, 족보와 토지 분배. 신약에 이르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은혜와 용서, 십자가와 부활. 그래서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정말 같은 분인가?” “이 두 부분을 한 권에 묶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2세기의 마르키온은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구약의 하나님은 정의의 신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니,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교회는 이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했지만, 마르키온의 유혹은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구약을 읽지 않는 그리스도인, 율법을 은혜의 반대편에 놓는 설교, 이스라엘과 교회를 완전히 분리하는 해석 — 이 모든 것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언약신학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한다. 구약과 신약은 하나의 언약 아래 있으며, 성경 전체는 한 하나님의 한 구원 계획을 펼쳐 보인다.
세 겹의 언약 — 성경을 읽는 틀
언약신학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세 개의 언약을 구별한다.
첫째, 구속의 언약. 시간이 시작되기 전,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작정 안에서 이루어진 언약이다. 성부께서 택한 백성을 성자에게 맡기시고, 성자께서 그들의 중보자가 되시며, 성령께서 구속을 각 사람에게 적용하시기로 하셨다. 시편에서 성자의 음성이 들린다.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 시편 40:7-8
이 영원한 합의가 중요한 이유는,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이 역사 안에서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역사의 한 시점에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 속죄의 효력은 시간을 초월한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증언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히브리서 9:15
구약의 아브라함과 다윗과 이사야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구원받았다. 신약의 우리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돌아보며 구원받는다. 바라보는 방향은 다르지만, 구원의 근거는 동일하다.
둘째, 행위 언약.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맺으신 언약이다. 완전한 순종에는 영생이 약속되었고, 불순종에는 죽음이 따랐다. 아담은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전 인류의 언약적 대표로서 실패했다. 이 타락이 단지 도덕적 실수가 아니라 언약의 파기였다는 사실이, 이후 전개되는 구원 역사의 전제를 이룬다.
셋째, 은혜의 언약. 행위 언약이 깨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즉시 은혜로 응답하셨다. 창세기 3장 15절, 뱀의 머리를 밟을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 그 시작이다. 이후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시내산의 율법, 다윗과의 언약,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 —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은혜 언약이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펼쳐진 것이지, 서로 다른 구원 계획이 아니다.
그림자와 실체 — 구약은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미리 보여준 것이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생각해 보라. 대제사장이 해마다 짐승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 반복 자체가 불완전함의 증거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의도적으로 설계된 그림자라고 설명한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 히브리서 10:1
그림자는 실체가 있어야만 존재한다. 구약의 제사·제사장·성전·할례·유월절은 모두 그리스도를 향해 뻗은 그림자였다. 할례는 죄된 본성의 제거를 예표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로 성취되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미리 보여주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한복음 1:29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단번에 참된 성소에 들어가셨다. 구약의 모든 그림자가 가리키던 실체가 마침내 나타난 것이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 히브리서 9:12
성령의 사역에서도 이 연속성은 분명하다. 구약에서도 성령은 역사하셨다. 다윗은 참회의 시편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 시편 51:11
다만 구약에서 성령은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임하셨다. 오순절 이후에는 모든 성도에게, 항구적으로, 내주하시는 방식으로 임하신다. 본질은 동일하되 충만함의 정도가 달라진 것이다.
세대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언약신학과 자주 비교되는 것이 세대주의다. 세대주의는 성경 역사를 여러 개의 구별된 경륜(dispensation)으로 나누고,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방식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특히 이스라엘과 교회를 영구적으로 분리하여, 구약의 약속은 이스라엘에게, 교회 시대의 약속은 교회에게 각각 별도로 적용된다고 가르친다.
언약신학은 이 분리를 거부한다.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분명히 선언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 갈라디아서 3:29
교회는 이스라엘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 안에서 이방인이 접붙여진 하나의 백성이다. 구원의 방법은 언제나 동일했다 — 은혜로,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근거로.
왜 이것이 중요한가
언약신학은 단지 학술적 분류 체계가 아니다. 이것은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구원의 확실성에 닿는 문제다.
구약과 신약이 하나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시대를 넘어 변함없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하신 약속도 반드시 지키신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확신의 근거를 이렇게 제시한다.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 히브리서 6:17-18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맹세, 이 두 가지 변할 수 없는 사실이 구약부터 신약까지, 아브라함부터 오늘의 성도까지 관통하는 동일한 언약의 이중 보증이다.
시편을 읽을 때 그리스도의 고난이 들려오고, 이사야 53장에서 십자가가 보이며,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나 자신의 구원의 뿌리가 발견되는 그 순간 — 우리는 비로소 성경 전체가 한 분 하나님의 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구약을 잃어버린 신앙은 그리스도를 반쪽만 아는 신앙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요한복음 5: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