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역사적 사실인가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가

#부활#역사적 예수#변증#고린도전서#최소 사실 접근법

“부활을 믿으라고요? 그건 그냥 신화 아닌가요?”

이 질문은 무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2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주장을 — 그것도 기독교 신앙 전체의 근거로 — 어떻게 검증할 수 있단 말인가? 역사가는 이 사건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려는 시도다.


역사가가 먼저 동의하는 것들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비기독교 학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동의하는 사실들이 있다. 이것을 최소 사실 접근법(Minimal Facts Approach)이라 부른다 —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학문적으로 거의 이견이 없는 사실들만으로 논증하는 방식이다.

첫째,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이것은 성경 외의 자료가 뒷받침한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라는 인물에서 이름을 얻었으며, 그는 티베리우스 치하에서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극형에 처해졌다”고 기록했다(『연대기』 15:44).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예수의 죽음을 언급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기독교 문헌에 의존하지 않고도 확립된 역사적 사실이다.

둘째, 예수를 따르던 자들이 그가 부활했다고 확신했다. 이들이 착각했는지, 거짓말을 했는지, 아니면 정말 무언가를 보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그들이 이 확신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셋째, 박해자 바울과 회의론자 야고보가 부활 신앙으로 회심했다. 이 두 사람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야고보는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그를 메시아로 믿지 않았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 요한복음 7:5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 갈라디아서 1:13

이 두 사람이 회심한 이유로 가장 자연스러운 설명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증언 — 사망 후 3-5년 이내에 형성된 기록

여기서 결정적인 증거가 등장한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주후 54-55년경)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3-8절에는 매우 정형화된 언어가 나온다. 신약학자들은 이 구절이 바울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라, 이미 초기 교회에서 사용되던 신경(creed)을 인용한 것임을 확인한다. 바울이 이 신경을 전달받은 시점은 그의 다메섹 회심 직후인 주후 32-35년경 — 즉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불과 3-5년 이내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 고린도전서 15:3-8

이것은 전설이 형성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는 기록이다. 역사가들은 전설이 생겨나기까지 통상 수세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신경은 사건 발생 후 수년 내에 이미 고정된 형태로 교회에서 전달되고 있었다.


빈 무덤 — 적대자들의 침묵이 말해주는 것

초기 기독교를 억압하려 했던 유대 당국자들이 부활 소문을 잠재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마태복음이 기록한 그들의 반응은 이렇다.

“군인들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 마태복음 28:11-13

그들이 퍼뜨린 이야기는 “시신이 없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었다. 시신이 있었다면 도난설을 만들어낼 이유가 없다. 적대자들 자신이 빈 무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안 이론들은 왜 설득력이 없는가

부활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여러 대안을 제시해왔다.

환각설 — 제자들이 집단적으로 환각을 경험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집단 환각의 사례를 알지 못한다. 더구나 바울이 언급하는 오백여 명의 동시 목격(고린도전서 15:6)은 환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환각은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 현상이다.

기절설 — 예수가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로 무덤에 안치되었다가 깨어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로마의 십자가형은 대상자의 사망을 철저히 확인하는 절차였다. 요한복음 19장에 따르면 군인들은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확인했다. 이후 좁고 어두운 무덤에서 홀로 회복한 사람이 석판을 치워 탈출하고,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나는 죽음을 이긴 주님이다”라는 확신을 심어줬다는 시나리오는 의학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깝다.

도난설 —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부활을 꾸며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적대자들이 퍼뜨린 이야기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만약 제자들이 자신들이 꾸며낸 이야기임을 알았다면, 그 거짓말 때문에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인간 심리로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은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거짓임을 아는 것을 위해 순교하지는 않는다.


1세기 유대인에게 “부활”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신약학자 N.T. 라이트는 방대한 연구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지적한다. 1세기 유대인의 언어 세계에서 “부활”(anastasis)은 영혼의 불멸이나 영적 체험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체적, 물리적 부활 — 죽은 몸이 새로운 몸으로 변형되어 살아나는 사건 — 을 뜻했다.

제자들이 그리스-로마의 영혼 불멸 개념을 유대인의 언어로 재포장했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영적 체험을 표현하는 언어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anastasis”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이것은 그들이 실제로 목격한 것이 영적 체험이 아니라 신체적 부활이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이 결국 이르는 곳

역사적 논증은 여기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 “부활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까지는 이성이 따라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 걸음 — “그렇다면 이것이 나와 무슨 관계인가” — 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닌 다른 것을 요구한다.

바울은 이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 고린도전서 15:17

부활은 기독교의 여러 교리 중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 전체의 하중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고, 그래서 솔직하게 인정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거짓 증인이다.”

그리고 마르다 앞에서 예수는 이 역사적 사건을 개인적 신앙의 언어로 연결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한복음 11:25-26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질문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동일하게 향해 있다. 역사는 부활이 일어났다는 방향으로 가리킨다. 증거는 충분히 제시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 이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2천 년 전 빈 무덤 앞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들은 천사의 말이 오늘도 울려 퍼진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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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