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약속의 땅 — 하나님은 왜 이방 민족을 진멸하라 명하셨나

피로 물든 약속의 땅 — 하나님은 왜 이방 민족을 진멸하라 명하셨나

#구약#심판#공의#이방민족#헤렘

성경을 처음 진지하게 읽는 사람들이 자주 걸려 넘어지는 본문이 있다. 여호수아서와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다.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까지 진멸하라”는 명령(삼상 15:3). 처음 이 본문을 읽었을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

어쩌면 책을 덮고 싶었을 것이다. 혹은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데, 구약의 하나님은 왜 이렇게 잔인하냐”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이 질문을 하는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 그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것 — 그것이 진지한 신앙의 출발점이다.

이 글은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려 한다.


400년이라는 시간

이야기는 가나안 정복보다 훨씬 앞에서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시대,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 창세기 15:16

이 한 구절이 모든 것을 바꾼다. 하나님은 즉각 심판하지 않으셨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대, 즉 수백 년을 기다리셨다. 어린 아이를 신에게 바치는 제의, 온갖 음란한 의식, 땅을 더럽히는 죄악들 —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보고 계셨다. 그러나 기다리셨다.

레위기 18장은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깊은 것이었는지를 기록한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럽혀졌고 그 땅도 더럽혀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그 땅을 벌하매 그 땅도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 레위기 18:24-25

이것이 첫 번째 진실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즉흥적이거나 변덕스럽지 않았다. 수백 년의 오래 참음 끝에 내려진, 역사적으로 정당하고 도덕적으로 필연적인 심판이었다.


헤렘 — 파괴가 아니라 봉헌

“진멸”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헤렘(חֵרֶם)의 원뜻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상태, 거룩한 봉헌을 의미한다. 레위기 27장 28절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여호와께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기업으로 받은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량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 레위기 27:28

가나안 땅에 선포된 헤렘은 그 땅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선언하는 신성한 행위였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영토를 정복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심판의 집행자로 이스라엘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 심판의 근거는 이스라엘의 의로움이 아니었다. 모세는 분명히 경고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 신명기 9:4

이것이 두 번째 진실이다. 이스라엘의 성공은 이스라엘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집행이었다.


심판 안에 열린 문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무서운 심판의 이야기 한가운데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등장한다. 라합이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 심판의 대상인 가나안 족속. 그녀는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주며 고백했다.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 당신들의 하나님이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신 줄을 아노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당신들을 선대하였은즉 당신들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 여호수아 2:11-12

그녀는 살았다. 단지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장 5절의 예수님 족보에 라합의 이름이 등장한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 마태복음 1:5

가나안 족속의 기생이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다. 이것이 세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진실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이었지만, 그 심판 안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문을 닫지 않으셨다. 믿음으로 돌아오는 자는 누구든 받으셨다. 민족이 문제가 아니었다. 심장이 문제였다.


구약과 신약은 같은 하나님을 말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구약의 심판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시는지를 드러낸다. 신약의 십자가도 정확히 같은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고통의 깊이는,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그냥 눈감아 버리지 않으셨다. 그것을 자기 아들 위에 모두 쏟아부으셨다.

다시 말해, 구약의 진노와 신약의 십자가는 모순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하나님의 같은 거룩함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구약에서 심판은 이방 민족 위에 임했다. 신약에서 심판은 하나님의 아들 위에 임했다. 그리고 그 아들 위에 임한 심판이, 그분을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한다.

시편 7편 11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 시편 7:11

이 하나님이 동시에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요한복음 3:16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것

구약의 헤렘 명령은 오늘날 교회에 주어진 보편적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 시간, 특정 장소, 특정 목적을 위한 언약 역사의 한 장이었다. 신약 교회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복음이다. 에베소서 6장 17절은 이렇게 말한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에베소서 6:17

그러나 이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강력한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그분이 죄를 묵인하신다는 뜻으로 오해하지 말라. 수백 년을 기다리신 하나님은 결국 심판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때를 모를 뿐이다.

, 그러나 그 심판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라합을 구원하셨다.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오늘도 그 길은 열려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명기 32장 4절은 이 모든 것의 근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 신명기 32:4

피로 물든 약속의 땅 이야기를 읽으며 흔들렸다면, 이것을 기억하라. 그 피는 결국 더 큰 이야기를 가리켰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이루어진, 모든 민족을 위한 구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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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