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긴 자다”
이만희는 선언한다. 자신이 요한계시록의 “이긴 자”이며, 하나님이 직접 계시를 주신 유일한 존재라고. 자신이 보혜사의 역할을 하는 “약속의 목자”라고. 노아, 모세, 예수에 이어 자신이 이 시대의 구원자라고. 오직 신천지 14만 4천 명만 구원받는다고. 자신의 비유풀이를 받아야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다섯 가지 주장이다. 이 주장들이 만약 참이라면, 2천 년 기독교 신앙은 근본부터 틀린 것이 된다. 사도들의 고백이 무너지고, 종교개혁이 헛수고가 되며, 전 세계 교회가 속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러나 성경을 펼치는 순간, 이 다섯 기둥은 하나씩 무너진다.
첫 번째 기둥: “이긴 자”는 누구인가
이만희는 요한계시록 3:21을 자신에게 적용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이긴 자”가 누구인지 스스로 밝히고 있다.
“보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 요한계시록 5:5
“이기었으니”로 번역된 헬라어 ‘에니케센(ἐνίκησεν)‘은 부정과거 시제다. 이미 완결된 행위를 가리킨다. 이긴 자의 승리는 과거에 완성되었다. 그분은 다윗의 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이만희가 아니다.
그리고 이 승리는 그분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 요한계시록 12:11
“이기는 자들”은 한 사람의 특권이 아니다. 어린 양의 피를 의지하는 모든 성도가 이기는 자다. 이만희가 이 칭호를 독점하는 것은 성경을 강탈하는 행위다.
두 번째 기둥: 보혜사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만희는 요한복음 14:16을 근거로 자신이 보혜사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어보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요한복음 14:16-17
“또 다른”으로 번역된 헬라어 ‘알로스(ἄλλος)‘는 동일한 본성의 또 다른 존재를 뜻한다. 예수님과 동일한 신적 본성을 가진 다른 인격—곧 삼위일체의 제3위격이신 성령 하나님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한다”고 하셨다. 보혜사는 보이지 않는 영이시다. 눈에 보이는 인간 이만희가 보혜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삼위일체 교리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성령은 이미 오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요한복음 16:7
이 약속은 오순절에 성취되었다. 성령은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믿는 자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어떤 외부 중간자도 필요 없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한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 요한일서 2:27
세 번째 기둥: 구원자는 시대마다 바뀌지 않는다
“노아 → 모세 → 예수 → 이만희.” 이것이 신천지의 시대별 구원자론이다. 이 도식은 교묘하다. 노아와 모세라는 성경 인물을 배치하여 이만희를 그 연장선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노아와 모세의 위치를 분명히 한다. 그들은 구원자가 아니라 **앞으로 오실 구원자의 예표(typos)**였다.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 — 사도행전 4:12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 노아의 이름으로도, 모세의 이름으로도, 이만희의 이름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이다.
더 나아가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이 단번에, 영원히 완성되었음을 선언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히브리서 9:28
“그는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히브리서 10:12
“단번에.” “한 영원한 제사.” 추가 구원자가 필요 없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전하고 충분하다. 이만희를 추가 구원자로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불충분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 디모데전서 2:5-6
중보자의 자격은 대속의 피로 확보된다. 이만희는 누구를 위해 피를 흘렸는가? 아무도 없다. 그에게는 중보자의 자격이 없다.
네 번째 기둥: 14만 4천의 함정
“오직 신천지 14만 4천 명만 구원받는다.” 이 주장은 요한계시록 7:4를 왜곡한 것이다. 그런데 같은 요한계시록 7장, 바로 몇 절 뒤를 읽으면 이 주장이 스스로 무너진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요한계시록 7:9
14만 4천 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다.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숫자로 제한되지 않는다. 14만 4천은 이스라엘 12지파 × 12 × 1,000이라는 완전수로, 모든 시대 하나님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묵시적 표현이다. 신천지 교적부의 등록 인원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장에서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 요한계시록 22:17
“원하는 자는 값없이.” 숫자의 제한이 없다. 조건도 없다. 복음은 값없이, 모든 목마른 자에게 열려 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 에베소서 2:8-9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다. 특정 조직에 가입하고, 특정 인물의 강의를 수료하는 것이 구원 조건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다. 그것은 행위 구원이다.
다섯 번째 기둥: 비밀 계시는 없다
이만희는 다음 구절을 비유풀이의 근거로 사용한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 마태복음 13:35
그런데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것이지, 이만희가 그 비유를 독점적으로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비유의 열쇠는 이만희에게 있지 않고 성경 전체 안에 있다.
이만희의 “비유풀이”는 2세기 영지주의(Gnosticism)의 정확한 재현이다. “특별한 지식(그노시스)을 가진 자만 구원받는다”는 구조—그 자리에 이만희의 비유풀이가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스스로 충분하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 — 디모데후서 3:16-17
“온전하게.”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성경 위에 추가 계시가 필요하다면 성경은 온전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경이 온전하다고 말씀하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 6절은 이 원리를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한 하나님의 전체 뜻은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거나 선하고 필연적인 결론으로 성경에서 도출할 수 있다. 어느 때든지 성령의 새 계시로든 인간의 전승으로든 아무것도 성경에 더할 수 없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경고로 끝을 맺는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 요한계시록 22:18
다섯 기둥이 무너진 자리에서
정리하면 이렇다.
| 이만희의 주장 | 성경의 대답 |
|---|---|
| 내가 이긴 자다 | 이긴 자는 다윗의 뿌리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계 5:5) |
| 내가 보혜사다 | 보혜사는 삼위일체 성령이시며 이미 오셨다 (요 14:16-17) |
| 시대마다 구원자가 바뀐다 |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행 4:12) |
| 14만 4천 명만 구원받는다 |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계 22:17) |
| 내 비유풀이로만 구원 가능하다 | 성경은 이미 온전하다 (딤후 3:16-17) |
다섯 가지 주장이 모두 무너졌다. 이만희의 체계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자신의 계시로,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를 자신의 이름으로, **오직 믿음(Sola Fide)**을 자신의 강의 수료로, **오직 은혜(Sola Gratia)**를 조직 가입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이만희에 대한 경배로 대체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시도에 대해 성령의 감동으로 두 번이나 경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갈라디아서 1:8-9
두 번. 한 번으로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문제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벗어나는 것이 두려운 당신에게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지금 신천지 안에 있는 분이 계실지 모른다. 떠나고 싶지만 두려운 분이 계실지 모른다. “내가 이곳을 떠나면 구원을 잃는다”는 공포가 발목을 잡고 있을지 모른다.
그 두려움 자체가 증거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 고린도후서 3: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 디모데후서 1:7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 두려움과 통제로 사람을 묶어두는 곳에 성령이 계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참된 구원의 확신은 이만희의 인정에 달려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의(義)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로마서 8:1-2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로마서 8:38-39
어떤 피조물도—이만희도, 신천지라는 조직도—당신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태복음 11:28
“다 내게로 오라.” 이만희에게 오라가 아니다. 신천지에 등록하라가 아니다. “내게로 오라.”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부르신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 사도행전 16:31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갈라디아서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