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생명이다 — 그래서 수혈을 거부해야 하는가

피는 생명이다 — 그래서 수혈을 거부해야 하는가

#이단비판#생명윤리#율법#복음의자유

응급실에서 울려 퍼지는 질문

산모가 피를 흘리고 있다. 의사가 급히 수혈 동의서를 내밀지만, 가족은 고개를 젓는다. “성경이 피를 금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멈칫한다. 시간이 없다. 피가 필요하다. 그러나 가족의 눈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이 있다 —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

이 장면은 상상이 아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예수를 피조물로 가르치는 한 서방 기원 단체는 수십 년째 수혈을 금지해 왔다. 산모가, 아이들이, 사고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다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피를 멀리하라”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든다.

과연 성경이 정말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이 교리의 근거를 하나씩 펼쳐 보자.

세 구절, 세 가지 오독

수혈 금지론자들이 의지하는 성경 본문은 크게 셋이다: 창세기 9장, 레위기 17장, 사도행전 15장. 이 세 본문을 순서대로 읽어 보겠다.

노아에게 하신 말씀

“모든 생물을 너희의 먹을 것이 되게 하였으니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 창세기 9:3-4

홍수 후 하나님은 노아에게 동물을 식용으로 허락하시면서, 한 가지를 금하셨다 — “피째 먹지 말라.” 수혈 금지론자들은 이것이 모세 율법 이전의 보편적 명령이므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맥을 보라. 이 명령은 식용(食用)에 관한 것이다. “먹을 것이 되게 하였으니”에 이어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가 온다. 동물의 고기를 먹되, 피를 함께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의료적 수혈 — 정맥을 통해 혈액을 주입하는 행위 — 은 1세기는커녕 노아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개념이다. 이 본문에서 수혈을 끌어내는 것은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본문에 집어넣는 행위다.

레위기의 피 규정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외국인 중에 누구든지 어떤 피든지 먹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사람에게 내 얼굴을 돌려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 레위기 17:10-11

이 본문은 피 규정의 신학적 핵심을 밝힌다. 피는 속죄 제사의 표징이기 때문에 함부로 먹지 말라는 것이다. 피가 가리키는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보혈이었다. 이것은 의식법(ceremonial law)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든 짐승의 피로 드려진 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이 의식법은 그 역할을 다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느니라.” — 히브리서 10: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 히브리서 9:14

그리스도는 이 그림자 전체의 실체이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단체가 같은 레위기에 나오는 다른 의식 규정들 — 돼지고기 금지, 혼합 직물 금지, 접촉 부정 — 은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율법에서 수혈 금지만 끌어내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것은 선택적 적용, 곧 자기 모순이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나니 곧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 사도행전 15:28-29

이것은 수혈 금지론자들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다. “피를 멀리하라”가 신약에도 분명히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의 문맥을 보라.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제는 **“이방인 신자에게 할례와 율법을 부과해야 하는가”**였다(행 15:5). 결론은 “아니다”였다. 다만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한 식탁에서 교제하기 위한 과도기적 목회 지침으로 네 가지를 제시한 것이다 — 우상 제물, 피, 목졸라 죽인 것, 음행. 이 중 셋은 식탁 교제와 직결된 음식 관련 사항이고, 하나는 도덕적 계명이다.

이 본문에서 의료적 수혈을 끌어내는 것은, “칼로 찌르지 말라”는 폭행 금지 규정에서 외과 수술을 금지하는 것만큼 문맥에서 벗어난 해석이다. 본문에서 두 번 반복되는 “목매어 죽인 것”도 주목하라 — 이것은 피를 빼지 않고 도축한 고기를 가리키며, 역시 식탁 위의 음식에 관한 이야기다.

수혈은 피를 “먹는” 것이 아니다

세 본문이 공통으로 금하는 것은 피를 먹는 행위다. 히브리어 אָכַל(아칼)과 헬라어 ἐσθίω(에스티오) 모두 구강 섭취를 전제한다. 수혈은 정맥 주입(transfusion)이다. 소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이것을 “먹는 것”이라 부르려면, 포도당 링거를 맞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성경이 금한 것(피를 먹는 것)과 수혈(피를 정맥에 주입하는 것)은 범주가 다르다. 이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범주 오류(category error)다.

피가 생명이라면

수혈 금지론의 가장 근본적인 역설은 바로 여기에 있다. 레위기 17:11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말한다. 피가 생명이기 때문에 경외해야 한다면, 피로 생명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피의 거룩함을 가장 깊이 존중하는 행위가 아닌가?

수혈 금지는 “생명을 보호하라”는 원리를 “생명을 버려라”로 뒤집는다. 이것은 피를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피가 가리키는 바로 그것 — 생명 — 을 내버리는 것이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예수님은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기 전에 이렇게 물으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악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 마가복음 3:4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문자를 붙들고 생명을 내버렸다. 예수님은 이를 “악을 행하는 것”이라 부르셨다. 율법의 문자 뒤에 숨어 생명을 방치하는 것 — 이것이 바로 수혈 금지 교리가 하는 일이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35문은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가 요구하는 의무에 대해, 자기와 타인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모든 합법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포함한다고 가르친다. 136문은 그 위반으로,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생명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합법적 수단을 소홀히 하거나 거부하는 것을 열거한다.

의료적 수혈은 생명을 보존하는 합법적 수단이다. 이를 거부하여 사망에 이르는 것은 거룩한 순교가 아니다. 해석 오류가 낳은 비극이다.

일반 은혜의 선물을 거절하는 것

의료 기술은 하나님의 일반 은혜(common grace)의 열매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 마태복음 5:45

하나님은 인류에게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지식과 기술을 허락하셨다. 수혈 기술을 거부하는 것은 이 선물을 손으로 밀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통받는 이들에게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수혈 거부로 가족을 잃은 분이 계실 수 있다. 혹은 그 교리에서 벗어났지만, 과거에 자신이 내린 결정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분이 계실 수 있다. 죄책감과 분노가 뒤섞여, 성경을 다시 펼치기가 두려울 수 있다.

당신에게 말씀드린다 — 그 교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성경에 순종한다고 믿으며 그 결정을 내렸다. 그 진실함을 하나님이 아신다. 그리고 그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지금, 당신 앞에 놓인 것은 정죄가 아니라 복음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로마서 8:1

피는 생명이다. 그리고 그 모든 피의 규정이 가리키던 궁극적 실체 — 그리스도의 보혈 — 은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살리러 오셨다. 그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으셨다면,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의식 규정의 문자가 아니라, 그 피가 가리키는 분 자신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한복음 11:25-26

처음부터 끝까지, 피가 가리키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다. 그리스도가 그 생명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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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