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면 나는 문을 닫는다.
가버나움 호숫가의 작은 집이다. 내가 산 집은 아니다. 주인이 죽기 두 해 전에 나에게 내준 집이다. 주인은 나에게 무엇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가 죽고 나면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정해 두었을 뿐이다. 주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무엇을 베푸는 것보다 무엇을 미리 정해 두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지금 나는 예순쯤 되었을 것이다. 정확한 나이를 나는 모른다. 종에게는 자기 나이를 셀 이유가 별로 없다. 누군가 묻는다면 예순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누군가 다시 묻는다면 예순둘이라고도 대답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사람에게는 큰 차이가 아닐 것이다.
저녁이 오면 나는 문을 닫는다. 그것이 내가 매일 하는 마지막 일이다.
문을 닫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가버나움의 집들은 대부분 안쪽에서 빗장을 가로지르는 구조다. 빗장은 올리브 나무로 만든 가로대이고, 양쪽 벽의 홈에 끼워 넣게 되어 있다. 빗장을 넣을 때는 오른손으로 가운데를 잡고, 왼쪽 끝을 먼저 왼쪽 홈에 밀어 넣은 뒤, 오른쪽을 가볍게 들어 올려 오른쪽 홈에 떨어뜨린다. 떨어뜨린다는 말이 정확하다. 너무 세게 누르면 홈의 안쪽이 닳고, 너무 살살 놓으면 빗장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한밤중에 바람이 흔들면 덜컹거린다. 손목에 일정한 각도가 필요하다.
그 각도는 가르쳐서 익히는 것이 아니다. 몸이 익힌다.
나는 이 각도를 마흔 해쯤 가지고 살았다. 백부장의 집에서 종으로 일하던 시절부터다. 주인의 집은 가버나움 북쪽 언덕 위에 있었고, 문이 셋이었고, 그 셋 모두에 빗장이 있었다. 저녁마다 그 셋을 차례로 닫는 것이 내 일이었다. 첫 번째 문을 닫고, 두 번째 문을 닫고, 마지막에 부엌 뒷문을 닫고 안쪽 회랑을 한 바퀴 돌아본 뒤에야 나는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지금 내 집에는 문이 하나뿐이다. 그러나 손목의 각도는 마흔 해 전 그대로다.
오늘도 나는 빗장을 든다. 왼쪽 끝을 왼쪽 홈에 밀어 넣는다. 오른쪽을 들어 올린다. 오른쪽이 오른쪽 홈에 떨어진다. 떨어지는 소리가 짧게 난다. 그 소리는 오늘 저녁 내가 들은 마지막 분명한 소리다.
나는 빗장 가까이 잠시 손을 두었다가 내린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적은 없다. 손이 그렇게 한다.
내가 백부장의 종이 된 것은 열다섯 무렵이었다.
나는 갈릴리 동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어부였고 빚이 있었고, 어느 해 빚이 한도를 넘어섰을 때 나를 가버나움의 노예 시장으로 보냈다. 그것이 통상의 절차였다. 나는 그 절차에 대해 특별히 원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원망은 다른 선택지가 있었던 사람에게나 가능한 감정이고, 아버지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른다.
가버나움의 시장에서 나를 산 사람은 백부장의 가신이었다. 가신이 나를 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는 내 어깨를 한 번 만지고, 내 이를 한 번 들여다보고, 발목을 한 번 잡아 흔들어 보았다. 그러고는 동전을 셈하고, 나를 데리고 갔다. 그 길에서 그는 내게 한 마디만 했다. “주인은 좋은 사람이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의심하지도 않았다. 좋은 주인과 나쁜 주인의 차이가 종의 일상에서 어떤 모양으로 드러나는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따라갔다.
주인은 로마 군단에서 떨어져 나와 가버나움에 주둔하던 한 부대의 백부장이었다. 백 명을 거느린다는 뜻의 직책이지만 실제로 그가 거느리던 사람의 수가 정확히 백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군의 실무는 종의 일이 아니었으므로. 주인의 집은 군 막사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있었고, 작은 회당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었다. 주인은 그 회당을 자기 돈으로 지었다. 마을 사람들 중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주인이 회당을 지었다는 사실은 마을의 유대인들에게 이상한 인상을 남겼다. 로마인이 자기들의 회당을 지어 주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마을의 장로들은 주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고,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주인을 자기들 중 하나처럼, 그러나 결코 자기들 중 하나는 아닌 방식으로 대하게 되었다. 그 거리감은 미묘했고, 주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주인의 집에 들어간 첫해, 나는 주로 마구간 일을 했다. 주인의 말은 두 마리였고, 부대 소속의 말은 더 많았다. 말의 발굽을 닦고, 짚을 갈고, 물을 길어 오는 일이 내 일이었다. 둘째 해에 나는 부엌 일을 겸했고, 셋째 해부터 주인의 집 안쪽 일을 맡게 되었다. 문을 여닫는 일, 회랑을 쓰는 일, 등잔의 심지를 자르는 일, 저녁마다 빗장을 거는 일.
주인은 나에게 친절했다. 친절했다는 말로는 정확하지 않다. 주인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었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주인은 나에 대해 알아야 할 만큼만 알고 있었고, 그 이상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주인의 방식이었다. 거리를 두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거리를 정확히 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군인이었으니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빗장 거는 법을 배운 것도 주인에게서다. 다른 종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주인은 어느 저녁 내가 빗장을 너무 세게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는 가까이 와서 자기 손으로 한 번 시범을 보여 주었다. “왼쪽을 먼저 넣어. 오른쪽은 들어 올려서 떨어뜨려. 너무 세게 말고.” 그가 한 말은 그뿐이었다. 그러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시범을 한 번 보고 그대로 익혔다. 마흔 해가 지난 지금까지 그 각도가 그대로다.
내가 언제 병에 걸렸는지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종의 시간에는 날짜라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
다만 그해 봄이 늦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갈릴리의 봄은 보통 니산월 초에 오는데, 그해는 니산월 중순이 지나서야 와서, 들의 보리가 평소보다 짧았다. 보리가 짧으면 그해의 모든 일이 한 박자씩 늦어진다. 양털 깎는 시기도, 첫 무화과 따는 시기도, 호수의 물이 따뜻해지는 시기도. 그런 해였다.
처음에는 등이었다. 등의 한 자리가 뻐근했다. 마구간 일을 오래 하면 종종 그런 일이 있었으므로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그 뻐근함이 가슴 쪽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나자 숨을 쉬는 것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일을 계속했다. 종이 일을 멈추는 데에도 절차가 있다. 스스로 멈출 수는 없다. 누군가 — 보통은 가신 — 가 그 종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가신은 바빴고, 나는 그를 부르는 것이 미안했고, 그래서 나는 며칠을 더 끌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빗장을 거는 일이었다. 그 저녁 나는 평소처럼 세 개의 문을 차례로 닫았다. 첫 번째 문, 두 번째 문, 부엌 뒷문. 마지막 문의 빗장을 떨어뜨리고 나서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손을 댔다. 손을 떼지 못했다. 가슴 안쪽에서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음 날 아침 가신이 나를 발견했다. 그가 나를 일으켜 안방 옆의 작은 방으로 옮겼다. 종을 안방 옆방에 눕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보통 종이 병들면 마구간 옆의 작은 방이나 부엌 뒤편의 빈자리에 눕힌다. 죽으면 옮기기 쉬운 자리에. 그런데 가신은 나를 안방 옆방으로 옮겼다. 나중에 나는 그것이 주인의 지시였다는 것을 들었다.
그 방에서 며칠을 누워 있었는지 정확히 모른다. 사흘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닷새였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정확하지 않다. 병이 깊어지면 시간이 정확하지 않게 된다. 하루의 어느 시각인지조차 분명하지 않게 된다.
나는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천장은 갈릴리 회반죽이었고, 회반죽이 마르면서 생긴 가는 금이 한 자리에 있었다. 그 금은 비스듬히 갔다가 한 번 꺾여서 다시 올라갔다. 나는 그 금을 보고 있었다. 다른 곳을 볼 기력이 없었다.
가끔 누군가가 들어와 내 이마에 천을 얹었다. 천은 차가웠다가 미지근해졌다가 다시 차가워졌다. 그 변화가 내가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가신이 한 번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마디 했다.
“주인이 너를 위해 어떤 일을 하려 하신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듣고도 묻지 못했다. 묻는 일은 종의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때 나는 묻기에 너무 멀리 가 있었다.
그 뒤에 내 의식은 한 번 끊겼다.
깨어났을 때 나는 천장의 금을 먼저 보았다.
그것이 처음이었다. 천장의 회반죽 위에 비스듬히 갔다가 한 번 꺾여 올라가는 금. 그 금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 금을 한참 보았다.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다음에 들린 것은 창의 소리였다. 아마실로 짠 창문 가리개가 바람에 살짝 부딪히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두 번 났다. 두 번째 소리가 났을 때 내 귀가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 그것은 바깥에 바람이 있다는 뜻이었고, 호수 쪽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뜻이었다. 동쪽 창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그다음은 이불이었다. 이불의 무게가 가슴 위에 얹혀 있었다. 양모로 짠 거친 이불이었다. 그 무게가 가슴을 누르고 있었지만, 누르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누르고 있는데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 — 잠시 뒤에야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내 머리 안으로 들어왔다.
가슴 안쪽에 아무것도 없었다.
뻐근함도 없었다. 무엇이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도 없었다. 숨이 무겁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없었다. 아파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숨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어디에서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숨을 쉬었다. 같았다. 한 번 더. 같았다.
그제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천천히 머리에 들어왔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살아 있어도 된다는 사실이 먼저 들어왔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정보였다. 누군가 그 정보를 나에게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묻는 일은 종의 일이 아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보았다. 손이 들렸다.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 보았다. 움직였다. 다섯 손가락이 다 움직였다. 그것은 기적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럽다는 것이 — 며칠 동안의 부자연스러움 끝에 — 가장 이상한 것이었다.
나는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일어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누군가 내가 깨어났음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종의 일이었다. 나는 다시 천장의 금을 보았다. 금은 그대로였다.
얼마쯤 지났을 때 가신이 들어왔다. 그는 내 이마에 손을 댔고, 그 손을 한 번 거두었다가 다시 댔다. 그러고는 잠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나는 누워서 보았다.
“주인을 부르겠다.” 그가 말했다.
그가 나갔다. 나는 다시 천장의 금을 보았다. 금은 그대로였다.
주인이 들어왔을 때 그의 얼굴을 나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
주인이 나를 일으켜 앉히려 했다. 나는 일으켜졌다. 일으켜지면서 내 이불이 한쪽으로 미끄러졌다. 주인이 그 이불을 다시 내 어깨에 둘러 주었다. 그가 말했다.
“걸을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이 잘 열리지 않았다. 며칠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입이었다.
주인은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그는 나를 그 방에 그대로 두고 잠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은 그의 어깨가 한 번 위아래로 움직였다. 군인의 어깨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때 나는 아직 천장의 금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곁눈으로만 그의 어깨를 보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보았다고 말하기 애매한 것이다. 나는 보았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는 잠시 후에 일어났다. 일어나기 전에 한 마디 했다.
“오늘 일은 천천히 알게 될 것이다.”
그가 나갔다. 나는 그 말의 뜻을 그때 묻지 않았다. 며칠 뒤에야 가신이 나에게 말해 주었다. 더듬더듬, 가신 자신도 잘 정리되지 않은 사람의 말투로.
가신이 말한 바는 이러했다. 내가 의식이 끊긴 그날, 주인은 마을의 장로들에게 가서 부탁을 했다. 그 무렵 가버나움 근처를 지나가던 한 사람을 찾아가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사람은 나사렛 출신이라 했고, 호숫가 쪽의 어부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장로들은 처음에 망설였지만, 결국 나사렛 사내를 찾아갔다. 사내는 마을로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가버나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주인이 다시 사람을 보냈다. 두 번째 사자였다. 두 번째 사자가 사내에게 무엇이라 전했는지 가신은 자세히 모른다. 주인이 그 자리에 없었으니 가신도 모르고, 가신이 모르니 나도 모른다. 다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나중에 전한 바로는, 두 번째 사자가 사내에게 한 말의 끝부분에 이런 말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이 말이 내 주인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두 번째 사자가 옮긴 말인지, 사람들이 나중에 다듬어서 전한 말인지 — 정확한 출처를 나는 가려낼 수 없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으므로. 종이 그 자리에 없었던 일에 대해 종이 할 수 있는 일은, 들은 것을 들었다고 말하고, 보지 않은 것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다만 사람들이 또한 전한 바로는, 사내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추어 섰다고 한다. 그러고는 둘러 선 사람들 쪽을 한 번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가신은 이 말을 나에게 옮길 때 약간 머뭇거렸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신 자신이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신의 머뭇거림에 답하기 위한 끄덕임이었다. 그 말의 뜻을 내가 그때 이해했는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분명히 안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 사내가 가버나움의 우리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 우리 집 문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 그는 어느 길의 어느 자리에서 멈추었고, 그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말했고, 그러고는 갔다. 우리 집 빗장은 그날도 평소처럼 걸리고 풀렸다. 그 빗장 안쪽으로 그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안방 옆방에 누운 종 하나의 가슴 안쪽에서, 잘못되어 있던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지 않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 나는 지금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 설명할 수 있는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다.
며칠 뒤 나는 일어났다.
일어났을 때 가신이 나를 안아 일으키려 했다. 나는 그의 손을 가볍게 비켜 일어났다. 비켜 일어났다는 말이 무례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이 맞다. 종이 가신의 손을 비킬 때는 자기 발로 설 수 있다는 뜻이었고, 자기 발로 설 수 있으면 가신의 손은 더 필요하지 않은 손이 되었다.
나는 방을 나와 회랑을 한 번 걸었다. 회랑의 돌이 발에 차가웠다. 평소와 같은 차가움이었다. 평소와 같다는 것 — 그것이 내가 그날 처음 한 확인이었다.
저녁이 왔다.
나는 평소처럼 첫 번째 문으로 갔다. 빗장을 들었다. 왼쪽 끝을 왼쪽 홈에 밀어 넣었다. 오른쪽을 들어 올렸다. 오른쪽이 오른쪽 홈에 떨어졌다. 떨어지는 소리가 짧게 났다.
그 소리가 평소와 같은 소리였다.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손을 두었다가 내렸다. 그 손을 두는 일을 나는 그날 처음 했다. 그 전까지 빗장을 건 뒤 손을 그 자리에 두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의 손은 그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왜 머물렀는지 나는 그때 설명하지 못했다. 지금도 설명하지 못한다.
두 번째 문, 세 번째 문도 같은 방식으로 닫았다. 손목의 각도는 그대로였다. 오른쪽이 떨어지는 소리는 그대로였다. 나는 같은 사람이었고, 같은 일을 하고 있었고, 같은 종이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같지 않았다.
같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나는 그때 말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종의 일이기도 했고, 종의 일이 아니기도 했다. 종은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종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종의 두 가지 침묵이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마구간에 가서 말의 발굽을 닦았다. 발굽을 닦는 손목의 각도도 평소와 같았다. 짚을 갈았다. 물을 길었다. 물 항아리가 무거웠지만 며칠 누워 있던 사람의 손에 무거운 만큼만 무거웠다. 그 무거움은 자연스러웠다.
그 사내는 며칠 뒤 가버나움을 떠났다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 가신도 알지 못했다. 호수 건너편으로 갔다는 말도 있었고,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말도 있었다. 어떤 말이 맞는지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낼 자리가 아니었다.
그 뒤로 종종 그 사내에 대한 말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호숫가의 어부들이 말을 가져왔다. 어부들은 주인의 집에 생선을 대주었으므로 부엌까지 자주 들어왔고, 부엌에서 그들의 말이 흘러나와 회랑을 지나 마구간까지 닿았다. 어떤 말은 분명했고 어떤 말은 분명하지 않았다. 분명한 말일수록 나는 더 듣지 않으려 했다. 듣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듣고 있다는 뜻인 줄을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가 회당에서 가르쳤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한 사람의 손을 펴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호수의 풍랑을 멈추었다는 말도 들었다. 마지막 말은 어부들 사이에서 자주 반복되었다. 어부들에게 호수의 풍랑은 가장 가까운 적이었으므로, 그것을 멈춘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에게 특별했다.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면서 한 가지 일을 했다. 빗장의 각도를 매일 저녁 그대로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 말들에 대해 한 유일한 일이었다.
가신이 어느 저녁 나에게 말했다. “그 사람을 한 번 보고 싶지 않은가.” 가신의 말에는 종을 위한 호의가 있었다. 주인의 호의가 가신에게 옮겨 와 종에게 닿는 식의 호의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은 이유를 가신은 묻지 않았고, 나도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었을 것이다. 종의 처지가 그러하다든가, 일이 바쁘다든가, 군중이 많이 모여서 다가갈 수 없다든가. 그러나 그 이유들은 정확한 이유가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는 — 정확한 이유라는 것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런 것이었다. 그 사내는 내 집 빗장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들어오지 않은 그 안쪽이, 그 자리가, 내가 매일 저녁 손을 두는 자리였다. 그 자리는 비어 있었지만 비어 있는 채로 정확했다. 내가 그를 찾아가는 일은 그 정확한 비어 있음을 흩트리는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내가 생각했다고 말하면 정확하지 않다. 나는 그렇게 정리해서 생각하지는 못했다. 다만 발이 그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발이 움직이지 않으면 종은 가지 않는다.
몇 해 뒤에 그 사내가 예루살렘에서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호숫가에 도달했다. 어부 하나가 그 소식을 부엌으로 가져왔고, 부엌이 그 소식을 회랑으로 보냈다. 나는 그 소식을 마구간 옆 우물가에서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평소처럼 빗장을 걸었다. 손목의 각도는 그대로였다. 오른쪽이 떨어지는 소리도 그대로였다.
그 뒤로 그가 죽지 않았다는 말이 또 들려왔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도 들렸고,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어떤 말이 맞는지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내는 일은 처음부터 종의 일이 아니었고, 그 일은 마지막까지 종의 일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 어떤 소식이 와도 내 빗장의 각도는 변하지 않았다. 변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도, 그가 살아났다는 소식에도, 그가 어디 다른 곳에서 또 보였다는 소식에도, 빗장은 같은 각도로 떨어졌다. 그 각도는 마흔 해 동안 같았다.
주인이 죽은 것은 내가 마흔 몇이 되었을 때다.
그는 군에서 물러난 지 오래였고, 마지막 몇 해는 회당 가까운 자기 집에서 조용히 살았다. 죽음은 갑작스럽지 않았다. 며칠 누웠다가 갔다. 가는 날 가신과 내가 그의 옆에 있었다. 그는 가신에게 몇 가지를 부탁했고, 나에게는 한 가지만 말했다.
“이 집은 너에게 둔다.”
그뿐이었다. 그가 말한 “이 집”은 그가 살던 큰 집이 아니었다. 호숫가의 작은 집,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을 말한 것이었다. 그가 그 집을 언제 사 두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는 무엇을 베푸는 것보다 무엇을 미리 정해 두는 것이 그의 방식인 사람이었다고 나는 앞에서 말했다.
그가 갔다. 가는 순간 나는 그의 침상 곁에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말했는지 나는 정확히 듣지 못했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가신은 그가 어떤 이름을 불렀다고 했다. 어떤 이름인지 가신도 분명하게 듣지는 못했다고 했다. 나는 가신의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장례 뒤 나는 작은 집으로 옮겼다. 주인의 큰 집은 가신의 가족에게 갔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고, 나에게 같이 살자고 권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사양한 이유를 나는 그들에게도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빗장을 매일 저녁 같은 각도로 떨어뜨리는 일을 어디에서 계속할지를 골라야 했고, 작은 집의 문은 단 하나였다.
문이 하나라는 사실이 좋았다.
큰 집의 문 셋에서 같은 동작을 세 번 반복하던 마흔 해와 달리, 작은 집에서는 그 동작을 한 번만 한다. 한 번만 하면 그 한 번이 무게가 늘어난다. 세 번에 나뉘던 무게가 한 번 안에 모인다. 그 모임이 좋았다. 좋았다는 말이 정확한지 모른다. 받아들였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종은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오늘 저녁이다.
나는 평소처럼 문 앞에 섰다. 빗장을 들었다. 왼쪽 끝을 왼쪽 홈에 밀어 넣었다. 오른쪽을 들어 올렸다. 오른쪽이 오른쪽 홈에 떨어졌다. 떨어지는 소리가 짧게 났다.
손이 그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오늘은 그 머묾이 어제보다 조금 길었다. 길었다고 내가 잴 수 있는 길이는 아니다. 잴 수 없는 길이가 잴 수 없는 만큼 길었다. 그뿐이다.
저녁 바람이 창의 가리개를 두 번 건드렸다. 호수 쪽에서 오는 바람이다. 동쪽 창은 호수를 보고 있다. 그것은 마흔 몇 해 전과 같다. 그 마흔 몇 해 전의 어느 봄, 보리가 짧던 그해, 한 사람이 가버나움 쪽으로 걸어왔고 도중에 멈추었고 다시 걸어 어디론가 갔다. 그 사람의 발자국은 우리 집 빗장 안쪽으로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 안쪽에 내가 매일 저녁 손을 둔다.
나는 손을 내린다. 부엌 쪽으로 걸어간다. 부엌의 작은 등잔에 심지가 짧게 타고 있다. 심지를 가위로 자른다. 가위의 손잡이가 손바닥에 닿는 각도도 마흔 해 전과 같다. 자른다. 등잔불이 한 번 흔들렸다가 다시 자리를 잡는다.
나는 잠자리로 간다.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올린다. 양모로 짠 거친 이불이다. 무게가 가슴 위에 얹힌다. 그 무게가 누른다. 누르는데 불편하지 않다.
작은 집 천장에도 회반죽 금이 한 자리에 있다. 비스듬히 갔다가 한 번 꺾여 다시 올라간다. 큰 집 안방 옆방의 그 금과 모양이 같다. 내가 누워 그런 금을 본 것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그해 봄이었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일어날 것이다. 물을 한 번 길어 올 것이다. 낮에는 햇볕에 앉아 있을 것이다. 저녁이 오면 다시 빗장을 들 것이다. 왼쪽을 먼저 넣고, 오른쪽을 들어 올려, 떨어뜨릴 것이다. 떨어뜨리는 소리가 짧게 날 것이다. 손이 그 자리에 잠시 머물 것이다.
호수 쪽에서 바람이 창의 가리개를 한 번 더 건드린다.
빗장이 자기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나는 아침마다 보리가루를 손바닥에 한 번 비빈다.
비비는 이유는 따로 없다. 어머니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한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보리가루는 손바닥에 비비면 거친 결이 손금 사이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간다. 그 결의 굵기로 그날의 가루가 어떤 가루인지 대강 안다. 굵으면 거칠게 갈렸다는 뜻이고, 가늘면 두 번 갈렸다는 뜻이다. 두 번 간 가루는 비싸므로 우리 집에는 한 번 간 가루뿐이다. 결은 언제나 거칠다.
비빈 가루를 나는 다시 함지에 털어 넣는다. 손바닥에는 가루가 얇게 남는다. 그 얇은 막을 닦지 않고 그대로 일을 시작한다. 막이 손등으로 옮겨 가서 마르고, 마른 자리가 갈라진 손등의 골에 쌓인다. 저녁이 되면 골이 하얗게 되어 있다. 그것이 내 손이 일을 했다는 표시다.
벳세다 호숫가 마을에서 나는 마흔 몇 해를 살고 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큰애를 낳을 때 내가 열일곱이었다는 것을 어머니가 말해 주었고, 큰애가 지금 스물여덟이라 했으므로, 나는 마흔다섯이다. 그러나 그 셈은 내가 누군가에게 물었을 때 대답하기 위한 셈이고, 평소에는 잊고 있다. 나이를 세는 일은 일을 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
집에는 아이가 다섯이다. 큰애와 둘째는 결혼해서 호수 건너편 마을로 갔다. 셋째는 작년에 갔다. 지금 집에 남은 아이는 넷째와 다섯째다. 넷째는 열한 살이고, 다섯째는 일곱이다. 그날 보리떡 다섯을 들고 나간 아이는 넷째였다.
아이의 이름을 여기 적지 않겠다. 적지 않는 이유는 따로 없다. 적으면 이름이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올라오는데, 그 자리는 이름의 자리가 아니다.
그날 아침의 일을 나는 거의 다 기억한다.
기억하는 것은 그날의 일이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날의 일은 그 전날 아침의 일과 거의 같았고, 그다음 날 아침의 일과도 거의 같다. 그러므로 그날 아침을 기억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아침을 기억한다는 말과 거의 같다. 모든 아침이 같으므로.
새벽에 일어나 아궁이의 재를 부지깽이로 긁었다. 재는 전날 밤의 마지막 불의 잔여물이고, 재를 긁어 한쪽으로 모으지 않으면 다음 불이 잘 오르지 않는다. 부지깽이의 손잡이는 닳아 반들거린다. 어머니가 쓰던 부지깽이다. 어머니가 죽기 전에 그 부지깽이를 내게 주었는데, 줄 때 따로 말은 없었다. 그저 한쪽으로 밀어 놓고 갔다. 그것이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재를 긁고, 마른 가지를 얹고, 불을 붙였다. 불이 오르는 동안 함지를 꺼내 보리가루를 부었다. 손바닥에 한 번 비볐다. 결이 평소대로 거칠었다. 물을 부었다. 반죽을 시작했다.
반죽은 손목으로 한다. 손가락이 아니다. 손목의 한 자리를 함지의 가운데에 박고 그 자리를 축으로 반죽이 자기 둘레를 돌게 한다. 손가락은 반죽이 손목을 빠져나가지 않게 막는 일을 할 뿐이다. 이 동작도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동작일 것이다.
다섯째가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일곱 살이고, 새벽에 깨면 언제나 함지 옆으로 와서 반죽을 보고 싶어 한다. 보고 싶어 하면서도 졸려서 눈을 반쯤 감고 있다. 나는 그 아이를 한 번도 안아 올리지 않았다. 손이 더러웠기 때문이고, 안아 올리면 함지가 옆으로 밀려 반죽이 흐트러지기 때문이고, 그리고 아이가 옆에 있는 것에 익숙해지면 아이는 안기지 않아도 옆에 있다.
넷째는 그때 아직 자고 있었다.
넷째를 깨운 것은 해가 지붕 끝에 닿을 무렵이었다. 첫 빵이 화덕에서 나왔고, 두 번째 판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넷째를 깨우면서 동시에 손으로는 반죽을 떼어 내고 있었다. 반죽이 손바닥에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깨우는 손은 어깨를 살짝 흔드는 정도였다. “일어나라.” 그뿐이다.
넷째는 부스스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 아이는 일찍 일어나는 아이가 아니고, 일찍 일어나야 할 때만 일찍 일어난다. 그날은 일찍 일어나야 할 날이었다. 그 전날 마을의 어른 몇이 호수 건너편으로 간다고 했다. 그쪽에 사람이 모여 있다고 했다. 누가 모여 있는지 그 어른들도 잘 모르는 듯했다. 다만 사람이 많으면 어른들은 가서 본다. 가서 보고 와서 말한다. 그것이 마을 어른들의 일이었다.
넷째는 가고 싶다고 며칠을 졸랐다.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호수 북쪽 끝의 길은 평탄하고, 마을 어른 몇이 함께 가면 위험하지 않다. 가서 한나절 보고 저녁 전에 돌아올 거리다. 다만 점심을 가져가야 했다. 그날 그 자리에 음식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을 꺼냈다.
천은 부엌 한쪽 못에 걸어 둔다. 다섯 장이 있고, 가장자리가 닳은 정도로 구분한다. 가장 닳은 것은 걸레로 쓰고, 그다음은 함지를 덮을 때 쓰고, 가운데 두 장은 도시락에 쓰고, 가장 새것은 안식일에 쓴다. 도시락 천은 두 장이 번갈아 쓰인다. 한 장이 빨래 줄에 있을 때 다른 한 장이 일을 한다.
그날의 천은 두 장 중 더 닳은 쪽이었다. 다른 한 장은 전날 호수에 빨아 마당 줄에 걸려 있었다. 천을 꺼낼 때 나는 어느 쪽인지 보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꺼냈다. 손에 잡힌 것이 더 닳은 쪽이었다.
빵 다섯 개를 그 위에 얹었다.
빵은 오늘 아침에 구운 것이 아니라 어제 저녁 것이었다. 오늘 아침 빵은 뜨거워서 천에 싸면 김이 차고, 김이 차면 빵이 눅눅해진다. 도시락에는 어제 저녁 빵이 좋다. 어제 저녁 빵은 한 시간쯤 화덕 옆에 두면 다시 데워진다. 그 일을 그날 새벽에 했다.
빵 다섯이 천 가운데에 놓이자, 모서리를 들어 올려 매듭을 지었다. 매듭은 두 번 짓는다. 한 번만 지으면 길에서 풀린다. 두 번 짓는 손목의 각도가 정해져 있다. 첫 번째 매듭의 끝을 두 번째 매듭이 누른다. 누르는 힘이 너무 세면 천이 찢어지고, 너무 약하면 풀린다. 그 힘은 손목이 익혀서 안다.
물고기는 다섯째 아이가 마당에서 가져왔다. 어제 형이 호수에서 잡아 온 작은 두 마리. 절여서 한쪽에 둔 것이었다. 다섯째가 그것을 양손에 한 마리씩 들고 와서 함지 옆에 내려놓았다. 비린내가 짧게 올라왔다. 나는 두 마리를 빵 매듭 위에 얹었다. 다시 묶으려다, 그러면 빵이 눌릴 것 같아 그만두고 따로 작은 천에 쌌다. 그 작은 천이 또 한 장 들어갔다.
다 묶고 나서 매듭을 한 번 만졌다. 풀리지 않을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풀리지 않았다. 매듭은 두 번이면 충분하다. 어머니가 그렇게 했고, 나도 그렇게 한다.
넷째는 마당 끝에 서 있었다. 마을 어른 셋이 길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어부였고, 한 명은 토기장이였고, 한 명은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도 같이 가면 같이 가는 것이고, 묻지 않는다.
나는 도시락을 넷째의 어깨끈에 매주었다. 어깨끈은 길이가 짧아서 도시락이 옆구리에 닿았다. 닿으면 걷는 데 불편하지만,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불편이다. 매주면서 나는 어른들 쪽을 보았다. 셋 다 멀쩡한 얼굴이었다. 멀쩡하면 보내도 된다.
“가라.”
넷째가 갔다.
대문 쪽으로 그 아이가 걸어 나가는 동안 나는 함지로 돌아와 있었다. 두 번째 판의 빵이 거의 다 구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빵이 타면 그날의 모든 일이 한 박자 어긋난다. 나는 화덕의 입구에 손을 대어 열을 가늠했다. 적당했다. 첫 번째 빵을 꺼내고 두 번째 판을 밀어 넣었다.
대문 쪽에서 발소리가 멀어졌다. 다섯째가 내 옆에서 다섯째 아이의 일을 했다. 다섯째 아이의 일이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한 번 잡아당기고, 함지 모서리를 한 번 두드리고, 까닭 없이 한 번 우는 것이다. 이 셋을 차례로 했고, 나는 그중 한 가지에 응답했다. 무엇에 응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해가 더 올라갔다. 그날 아침은 그렇게 갔다.
해가 한가운데에 올라갔을 무렵 나는 솥을 씻고 있었다.
호숫가의 바위에 솥을 엎어 놓고 모래로 안쪽을 문지른다. 모래는 물에 헹구어 다시 쓴다. 한 번 문지르고, 헹구고, 다시 문지른다. 솥의 검은 자국은 잘 빠지지 않는다. 빠지지 않는 자국은 그대로 두고 빠지는 자국만 닦는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일이다. 안 빠지는 것을 빼려고 매달리지 않는다. 그것도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다섯째가 옆에서 돌을 호수에 던지고 있었다. 던질 때마다 물이 짧게 튀었다. 그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들려왔다. 첫 번째 돌, 잠시 침묵, 두 번째 돌, 잠시 침묵. 다섯째 아이가 돌을 던지는 박자가 그렇다. 어른의 박자와 다르다.
솥을 다 씻고 호숫물에 담갔을 때, 마을 쪽에서 한 여자가 와서 우리 집 문 앞을 지나갔다. 이름은 라헬이고, 둘째와 함께 자란 아이의 어머니다. 라헬이 나를 보고 멈췄다.
“넷째 어디 갔어.”
“호수 건너편.”
“건너편 어디.”
“몰라. 어른들 따라갔어.”
라헬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비 올 것 같아. 동쪽 하늘이 어두워.”
나는 동쪽 하늘을 보았다. 어둡지 않았다. 라헬의 눈이 어두운 것이지 하늘이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게” 하고 말했다. 라헬은 그런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는 “그러게” 하고 말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라헬이 갔다.
나는 솥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솥의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평소대로의 무게는 무거우면서도 무겁지 않다. 일이 되어 있는 무게다.
집에 돌아와 마당의 빨래 줄을 보았다. 어제 빨아 둔 천이 거의 말라 있었다. 손으로 만져 보니 한쪽 모서리가 아직 축축했다. 햇볕에 한 시간만 더 두면 다 마를 것이다. 나는 천을 그대로 두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다음 일은 저녁 빵의 반죽이었다.
빵은 매일 두 번 굽는다. 아침 한 번, 저녁 한 번. 아침 빵은 그날 먹고, 저녁 빵은 다음 날 아침에 먹는다. 도시락에 가는 빵은 그 전날 저녁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에 굽는 빵은 내일의 누군가의 점심이 될 수도 있고, 그냥 우리 집 아침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내일 결정된다. 오늘은 그저 굽는다.
함지를 다시 꺼냈다. 보리가루를 부었다. 손바닥에 한 번 비볐다. 결이 평소대로 거칠었다.
저녁 늦게 넷째가 돌아왔다.
해가 산 너머로 거의 다 넘어간 시각이었다. 마을 어른 셋이 넷째를 데리고 왔다. 어른들은 우리 집 마당까지 들어와서 잠시 서 있었다. 셋 다 얼굴에 무엇인가가 있었다. 무엇인지 나는 그때 짚어 내지 못했다. 피곤한 얼굴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너무 많이 본 사람의 얼굴 같기도 했고, 술을 마시지도 않고 술 마신 사람의 얼굴 같기도 했다.
어부가 먼저 말했다. “그쪽에서 사람이 많이 모였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알고 있었다.
토기장이가 말했다. “음식이 있었소.”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이 있다는 말이 어떤 음식인지 그때 나는 묻지 않았다. 어른들이 음식을 먹고 왔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나에게는 그날 저녁의 일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의 일은 솥을 한 번 더 닦고, 다섯째에게 빵을 먹이고, 넷째의 발을 씻기는 것이었다.
세 번째 어른이 입을 열려다 말았다. 그 어른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그가 입을 열려다 말고 다른 두 어른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 두 어른은 그를 보지 않았다. 그러자 그도 입을 다물었다.
어른들이 갔다.
넷째는 마당 한쪽에 서 있었다. 손에는 도시락 천이 들려 있었다. 천은 비어 있었다. 비어 있을 줄 알았다. 점심으로 가져간 빵과 물고기는 점심으로 먹는 것이고, 점심을 다 먹으면 천은 비어 돌아온다. 그것이 도시락 천의 일이다.
다만 그 천이 깨끗했다. 보통 도시락 천은 빵 부스러기가 묻어 있고 물고기 기름이 한 자리에 배어 있다. 그날의 천에는 부스러기도 기름 자국도 없었다. 깨끗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잠시 멈추었다. 그러나 멈춘 시간은 짧았다. 멈출 시간이 없었다. 다섯째가 나를 부르고 있었고, 저녁 빵이 화덕에서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넷째의 손에서 천을 받아 함지 옆에 놓았다.
“발 씻고 들어와.”
넷째는 마당의 항아리에서 물을 떠 발에 부었다. 발이 까매져 있었다. 호수 건너편 흙은 우리 마을 흙보다 검은 편이다. 까만 발이 물에 한 번 헹궈지고 두 번 헹궈졌다. 나는 그동안 부엌에서 두 번째 판의 빵을 꺼내고 있었다.
빵을 다 꺼낸 뒤에 함지 옆에 놓인 그 깨끗한 천을 다시 보았다. 깨끗한 채로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다른 천들과 함께 못에 걸었다. 걸 때 모서리가 한 번 펄럭였다. 펄럭임은 짧았다. 천은 못에 걸렸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넷째가 입을 열었다.
“빵이 많이 있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빵이 많이 있었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이유는 따로 없다. 그 자리에서 다섯째가 자기 빵 조각을 떨어뜨렸고, 떨어뜨린 빵을 줍느라 식탁이 한 박자 흔들렸기 때문이다. 다섯째의 빵을 주워 다시 손에 쥐여 주는 사이에 넷째의 말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넷째는 다시 말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한 번 말한 것을 두 번 말하지 않는다. 그 아이의 성격이 그렇다. 큰애와 둘째와 셋째가 말이 많고, 넷째와 다섯째가 말이 적다. 같은 부모에게서 났는데 어떤 아이는 말이 많고 어떤 아이는 적다. 이유는 모른다.
나는 그 아이가 자기 자리에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가 먹는 양은 평소와 같았다. 평소와 같다는 것은, 그날 점심에 그 아이가 충분히 먹었다는 뜻이다. 어른들이 음식이 있었다고 한 것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되었다.
저녁이 끝나고 나는 함지를 한 번 더 닦았다. 손바닥에 가루가 마른 채로 남아 있었다. 손등의 골이 하얗게 되어 있었다. 그날도 일을 한 표시가 그 자리에 있었다.
며칠 뒤 라헬이 다시 왔다.
라헬은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기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고, 옮길 때 자기 의견을 한 번 더 보태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말은 절반만 듣고 절반은 흘려야 한다. 절반을 어느 쪽으로 흘릴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다.
라헬이 말했다. “건너편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더라.”
나는 함지를 씻고 있었다. “그래.”
“빵이 모자랐는데, 어디서 났는지 모르게 갑자기 많아졌다고 해.”
“그래.”
“마을의 어부 둘째 형이 그날 거기 있었거든. 그 형이 말하기를, 한 사내가 보리떡 다섯 개로 다 먹였대.”
함지를 씻던 손이 한 번 멈출 만한 말이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자리가 아니었다. 솥에 묻은 자국 하나가 그 순간 마침 떨어지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국에 손가락을 대고 한 번 더 문지르는 동작이 라헬의 말과 동시에 있었다. 자국이 떨어졌다. 나는 헹궜다.
“그 보리떡이 어디서 났는지는 안 들었어?”
내가 그렇게 물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입까지 오지 않았다. 입까지 오지 않은 말은 한 말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래” 하고 한 번 더 말했다. 라헬의 말은 절반만 들리는 것 같았다. 다섯째가 마당에서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헬이 한참 더 자기 말을 했고, 나는 그동안 함지를 다 씻고 다섯째에게 갔다. 다섯째가 발에 가시가 박혔다. 그 가시를 빼는 일이 그다음의 일이었다. 가시는 작았고, 손톱 끝으로 한 번에 빠졌다. 다섯째가 잠깐 울었고, 잠깐 그쳤다.
그날 저녁 함지 옆에 걸려 있던 그 도시락 천을 다시 꺼냈다. 다음 날 도시락에 쓸 차례였기 때문이다. 두 장의 천이 번갈아 쓰인다고 앞에서 말했다. 그날 빨래 줄에서 가져 온 다른 한 장이 마침 마당에 들어와 있었고, 못에 걸린 이 한 장은 며칠을 쉬었다. 다음 날 점심은 이 천이 일할 차례였다.
천을 펴서 빵을 얹었다. 매듭을 두 번 지었다. 매듭의 각도는 평소대로였다. 천에는 그날의 깨끗함이 그대로 있었지만, 위에 빵을 얹고 매듭을 짓고 나니 그 깨끗함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 적어도 도시락 천에서는 그렇다.
다음 날 아침 그 도시락은 다섯째 아이의 어깨끈에 매여 마당을 나갔다. 다섯째는 그날 형이 모래밭에서 노는 것을 따라가고 있었다. 점심을 가지고 갔다. 저녁에 돌아왔을 때 천에는 부스러기가 묻어 있었고 물고기 기름 자국이 한 자리에 배어 있었다. 평소의 도시락 천이었다.
나는 그 천을 마당의 항아리에서 헹궜다. 두 번 헹구고 줄에 걸었다. 펄럭였다. 펄럭임은 짧았다.
몇 달 뒤 마을의 회당에서 누군가가 그 사내의 이야기를 했다.
회당에 나가는 일을 나는 자주 하지 않는다. 안식일 저녁의 짧은 시간만 간다. 그날 저녁에는 다섯째를 데리고 갔다. 안식일이라 빵을 굽지 않았으므로 손이 한가했고, 한가한 안식일에는 회당에 다섯째와 가는 것이 마을의 풍습이었다.
회당의 한 자리에서 누군가가 일어나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듣지 않았다. 다섯째가 옆에서 안식일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소리를 자꾸 냈기 때문이다. 그 소리를 막느라 내 귀의 절반이 그 아이에게 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사람의 말 가운데 한 단어가 들렸다. 보리떡이라는 단어였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떨림이 무엇 때문인지는 그 자리에서 분명하지 않았다. 떨리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섞이는 법이고, 그 이유를 가려내는 일은 듣는 사람의 일이 아니다.
나는 그때 다섯째의 손을 한 번 더 잡았다. 다섯째가 회당의 돌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그리려 하고 있었다. 안식일에 돌바닥에 무엇인가를 그리는 일은 어머니의 잘못으로 돌아오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 다섯째 아이의 무릎 위에 놓았다. 다섯째가 잠시 가만히 있었다.
말하는 사람의 말이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보리떡 다섯 개라는 말이 한 번 더 나왔고,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단어들도 여러 번 나왔다. 하늘과 떡, 양식과 영생 같은 단어들. 나는 그 단어들이 무슨 뜻인지 그 자리에서 다 알아듣지 못했다. 다섯째가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려 했고, 나는 다시 다섯째 아이의 무릎을 잡았다.
회당에서 나오는 길에 다섯째가 물었다.
“어머니, 그 보리떡이 우리 보리떡이에요?”
나는 그 물음을 들었다. 다섯째는 일곱 살이고, 일곱 살 아이의 물음에는 정확한 대답이 필요하지 않다. 정확한 대답을 해도 다음 날이면 잊는다. 나는 “글쎄” 하고 말했다. 그 “글쎄”가 어떤 종류의 글쎄인지는 나도 그 순간 분명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함지를 한 번 들여다보았다. 함지에는 다음 날 아침의 반죽을 위한 보리가루가 이미 부어져 있었다. 어제 저녁에 부어 놓은 가루였다. 그 가루를 손바닥에 한 번 비볐다. 결이 평소대로 거칠었다. 같은 결이었다. 그 결이 회당에서 들은 단어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정리하지 못했다. 정리하지 못한 채로 함지를 덮고 잠을 잤다.
그 뒤로도 그 사내의 이야기는 마을에 띄엄띄엄 들어왔다. 들어올 때마다 이야기는 조금씩 달랐다.
어떤 사람은 사내가 호수 위를 걸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죽은 아이를 일으켰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결국 예루살렘에서 잡혀 죽었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 어느 말이 맞는지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내려는 시간이 따로 없었다. 마을 어른들이 가려낼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른들 중에서도 회당에 자주 가는 사람들이 가려낼 일이라고.
다만 한 번, 큰애가 호수 건너편에서 우리 집에 잠시 다녀간 어느 저녁이었다. 큰애는 그쪽 마을의 회당에서 들은 말을 옮기면서, 마지막에 한 마디를 보탰다.
“그날 어머니가 싼 도시락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그래요.”
나는 큰애의 말을 들었다. 큰애의 얼굴을 보지 않고 들었다. 큰애의 얼굴을 보면 큰애의 얼굴 표정이 그 말의 무게를 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함지를 씻고 있었다.
“넷째가 그렇게 말했어?”
“넷째가 한 번 말했고, 다른 사람들이 옮겼대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 보리떡이 어디서 왔는지 그날에는 묻지 않았는데, 나중에 누군가 넷째에게 물어봤대요. 넷째가 어머니가 싸 줬다고 그랬다고 해요.”
“그래.”
큰애는 그 뒤에 말이 없었다. 큰애는 자기가 한 말의 다음 말을 내가 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날 나는 다음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이다.
큰애가 갔다.
함지를 다 씻고 나서 나는 천이 걸린 못 쪽을 한 번 보았다. 그날의 그 천은 이제 어느 천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두 장이 번갈아 쓰이고, 빨래 줄에서 마르고, 다시 못에 걸리고, 다시 도시락에 묶이고, 다시 풀리고. 그러는 사이에 두 장은 비슷한 정도로 닳았다. 내가 그날 꺼낸 것이 두 장 중 어느 쪽이었는지 며칠이 지나면서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한 해가 지난 지금은 알 수 없다. 두 장 다 다른 천이 되었다.
알 수 없다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천은 알 수 없게 되어도 일을 한다. 일을 하는 천은 일이 끝나면 다시 못에 걸린다. 그것이 천의 일이다.
오늘 저녁이다.
나는 함지를 꺼냈다. 보리가루를 부었다. 손바닥에 한 번 비볐다. 결이 평소대로 거칠었다. 물을 부었다. 반죽을 시작했다.
손목의 한 자리가 함지 가운데에 박혔다. 그 자리를 축으로 반죽이 자기 둘레를 돈다. 손가락이 반죽을 단속한다. 반죽이 손목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가 다시 달라붙는다. 그 박자가 지난 마흔 몇 해 동안 같은 박자다. 어머니의 박자고, 어머니의 어머니의 박자다. 내 큰며느리도 호수 건너편에서 같은 박자로 반죽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다섯째는 이제 일곱 살이 아니다. 열셋이다. 옆에 와서 함지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자기 친구들과 마당 너머에서 무슨 놀이를 하고 있다. 넷째는 열일곱이다. 넷째는 며칠 전 호수 동쪽 마을로 일을 보러 갔다. 사흘 뒤에 돌아온다고 했다.
반죽이 다 되자 나는 그것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아침 빵으로, 한쪽은 저녁 빵을 위한 묵힘으로 두었다. 묵힘은 천으로 덮어 두는데, 그 천이 또한 어느 천이다. 못에 걸린 다섯 장 중 한 장. 어느 장인지 나는 보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꺼냈다. 손에 잡힌 것이 가운데 두 장 중 한 장이었다. 가장자리가 닳은 정도가 비슷한 두 장.
덮었다.
저녁이 깊어진다. 화덕의 불은 한 번 사그라졌다. 다음 불을 위해 부지깽이로 재를 한 번 긁는다. 부지깽이의 손잡이가 손바닥에 닿는다. 닿는 자리는 어머니의 손이 닿던 자리고, 어머니의 어머니의 손이 닿던 자리다. 닳아 반들거린다.
마당 끝에서 다섯째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잘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 않아도 그 아이가 거기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나는 함지를 옆으로 밀어 두고 솥을 걸었다. 솥에 물을 부었다. 내일 아침을 위한 물이다. 물이 솥에 떨어지는 소리가 한 번 났다. 물이 솥의 바닥을 채우는 동안 나는 손바닥을 한 번 더 비볐다. 가루가 손등으로 옮겨 갔다. 손등의 골이 하얗게 되었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보리가루를 손바닥에 한 번 비빌 것이다.
저녁이 되면 나는 가죽의 한쪽 끝을 엄지손톱으로 한 번 누른다.
수가성 변두리의 가죽 작업장이다. 작업장이라고 하지만 작은 마당과 헛간이 전부다. 마당의 한쪽에는 무두질용 항아리 셋이 있고, 다른 쪽에는 마른 가죽을 거는 줄이 있다. 헛간 안에는 칼 두 자루와 망치와 송곳, 그리고 다듬어 놓은 가죽 묶음 몇이 있다. 나는 그 묶음 중 한 장을 꺼내 무릎 위에 펴 놓고 끝을 엄지손톱으로 누른다.
누르는 자리는 가죽의 모서리에서 손가락 두 마디쯤 들어간 곳이다. 그 자리가 단단하면 무두질이 충분히 된 것이고, 살짝 들어가면 덜 된 것이다. 손톱의 끝이 가죽 결에 한 번 박혔다 빠진다. 그 박혀 있다 빠지는 짧은 시간 동안 가죽의 결이 손톱 끝에 전해진다. 결이 거칠면 한 번 더 무두질을 해야 하고, 매끈하면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도 된다.
이 동작을 나는 마흔 해쯤 해 왔다. 아버지가 가죽장이였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가죽장이였다. 손톱 자리는 정해져 있다. 오른손 엄지의 끝, 그중에서도 오른쪽으로 약간 비낀 자리. 그 자리만 닳아 한쪽 손톱이 다른 쪽보다 빨리 자란다. 어느 쪽인지는 굳이 적지 않겠다. 적으면 손톱이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올라오는데, 그 자리는 손톱의 자리가 아니다.
나는 예순쯤 되었을 것이다.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아내가 죽고 십여 년이 지났고, 아들 둘이 갔고, 막내딸이 마을 동쪽에서 자기 식구와 산다. 막내딸이 사흘에 한 번 빵을 가져온다. 그 빵을 받는 것 외에 나는 누구의 일에 끼지 않는다.
수가성에서 사람의 일에 끼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가죽장이는 마을 한가운데에 살지 않는다. 무두질의 냄새가 있기 때문이다. 마을의 끝, 우물길 갈래의 안쪽 두 번째 골목 — 그 자리에 내 작업장이 있다. 우물길을 지나가는 사람의 발소리는 들리지만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거리가 내가 사람의 일에 끼지 않게 해 주는 거리다.
오늘 저녁에도 나는 가죽의 끝을 한 번 눌렀다. 결이 매끈했다. 다음 작업으로 넘겨도 되는 결이었다.
내가 한때 그 여자와 살았다.
말한 김에 적는다. 두 해였다. 두 해를 살고 갈렸다. 갈린 이유는 적지 않겠다. 적기 시작하면 한 줄로 끝나지 않고, 한 줄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적는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이 이야기는 적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 갈릴 때 나는 그 여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서 절반쯤은 내 잘못이라고도 생각했다. 절반쯤이라는 것은 정확한 셈이 아니다. 정확한 셈은 가능하지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가죽의 결처럼 손톱 끝으로 눌러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여자는 그 뒤로 다른 남자와 살았고, 그 남자와도 갈렸고, 또 다른 남자와 살았고, 또 갈렸다고 들었다. 들은 것은 마을의 입에서다. 마을의 입은 정확하지 않다. 정확하지 않은 것을 정확한 것처럼 옮기는 것이 마을의 입의 일이다. 그러므로 들은 횟수를 나는 적지 않는다. 적지 않는 것이 그 입에 대한 나의 한 가지 거리다.
지금 그 여자가 어느 남자의 집에서 자고 일어나는지는 안다. 안다고 적는 이유는 모를 수가 없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수가성은 작다. 누가 누구의 집에서 자고 일어나는지는 우물길의 아침 발소리만으로도 마을 사람들 머릿속에 자연히 그려진다. 나는 그 그림을 그리지 않으려 했지만 그림은 저절로 그려진다.
그 남자의 집은 우물길에서 동쪽으로 두 갈래째 골목 안쪽이다. 그 정도까지만 적는다. 그 남자에 대해서는 적을 것이 없다. 본 적이 한두 번 있고 말은 섞은 적이 없다. 같은 마을에서 사십 년쯤 산 사람들 사이에는 그런 사람이 더러 있다.
그 여자가 처음 우물길을 지나가는 것을 내가 본 것은, 그 일이 있고 며칠 뒤였다.
그 일이라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한동안 입에 올린 어느 한낮의 일이다. 한낮에 우물에 갔던 그 여자가 한 사내와 우물가에서 한참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 사내가 누구인지 그날 우물에 있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옷이 달랐고, 말투가 달랐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날 그 자리에 두엇 있었지만 멀찍이서 보았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 정확히 며칠인지는 모른다. 사흘일 수도 있고 닷새일 수도 있다 — 어느 늦은 아침에 나는 작업장 마당에 앉아 가죽의 끝을 누르고 있었다. 마당의 항아리에서 무두질액의 비린 냄새가 평소대로 올라왔다. 그 냄새 때문에 사람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다가오지 않는 자리에서 일을 하는 것이 가죽장이의 한 가지 편함이다.
골목의 입구에서 발소리가 났다. 가벼운 발소리였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우물길로 나가는 발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드는 것이 작업의 박자를 한 번 어긋나게 하기 때문이다. 가죽의 끝을 눌렀다 떼는 동작이 그 발소리와 한 박자 어긋나게 마침 끝났고, 나는 다음 가죽으로 손을 옮겼다.
발소리가 마당 앞을 지나갈 때 짧게 그쪽이 보였다. 보였다는 것은 시야의 가장자리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는 뜻이고, 들어온 것이 누구인지 그때는 분간하지 않았다. 분간하지 않은 채로 가죽 끝을 한 번 더 눌렀다.
그러나 다음 가죽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을 때, 시야의 가장자리에 들어왔던 것이 누구였는지 뒤늦게 분간이 되었다. 두건의 매는 방식이 익숙했다. 마흔 해 가까이 한 마을에 산 사람들 사이에는 두건만으로 누구인지 분간이 되는 일이 있다.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것이 작업의 박자를 한 번 어긋나게 하기 때문이다. 다음 가죽의 끝을 엄지손톱으로 눌렀다. 결이 평소대로 매끈했다. 그것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며칠 뒤가 아니라 몇 주 뒤였다.
그 사이에 나는 그 여자가 한 번 더 우물길을 지나갔는지 아닌지 모른다. 모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나는 작업장 안 헛간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헛간 안에서는 골목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둘째, 나는 그 발소리를 일부러 듣지 않으려 했다. 일부러 듣지 않으려 한 이유는 적지 않겠다. 적지 않아도 적지 않은 이유는 분명히 있다.
두 번째 본 날은 시장 가는 길이었다.
수가성의 시장은 일주일에 두 번 선다. 그 두 번 중 한 번에 나는 가죽 묶음을 들고 나간다. 잘 다듬어 놓은 가죽은 한 번 시장에 들고 나가면 그날 안에 절반이 팔린다. 절반이 팔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날그날의 운에 따른다.
그날 나는 가죽 두 묶음을 등에 지고 시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물길의 갈래에서 시장 길로 꺾이기 직전, 우물 쪽에서 한 사람이 물동이를 들고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거리는 스무 걸음쯤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분간하기 전에, 어깨의 각도를 먼저 보았다. 어깨의 각도가 익숙하면서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 어깨를 한때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그 각도가 내가 알던 각도와 다르다는 뜻이다. 어떻게 다른지는 그때 분간하지 못했다. 분간하지 못한 채로 나는 시장 길로 꺾었다.
꺾기 전에 나는 가죽 묶음을 한 번 추슬렀다. 묶음의 끈이 어깨에서 살짝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추스르는 동안 오른손이 묶음의 위쪽 가죽 끝을 한 번 눌렀다. 눌러 본 결의 단단함이 평소대로였다. 그것이 두 번째였다.
시장에서 그날 가죽은 절반쯤 팔렸다. 평소의 운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우물길로 가지 않고 마을 북쪽으로 한 바퀴 둘러서 왔다. 둘러서 온 이유는 가죽 묶음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가벼워진 묶음으로는 북쪽 길의 약간 가파른 자리도 어렵지 않게 지난다. 다른 이유는 없다.
세 번째는 한 달쯤 더 지난 뒤였다.
그날은 비가 한 번 왔다 그친 오후였다. 마당의 항아리들이 빗물을 받아 한 손가락쯤 위로 올라와 있었다. 그 위에 떠오른 무두질액의 막을 나는 헝겊으로 걷어 내고 있었다. 헝겊을 한 번 휘저으면 막이 한쪽으로 모이고, 그것을 손바닥으로 한 번에 떠 올려 옆의 빈 통에 버린다. 그 동작을 항아리 셋에 걸쳐 차례로 했다.
마지막 항아리의 막을 거의 다 걷었을 때 골목 입구에서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은 평소처럼 가벼운 발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모르는 발이었다. 모르는 발은 마을의 발이 아니었다. 마을의 발은 마흔 해를 산 귀에 익은 박자가 있고, 그 박자가 아닌 발은 외지인의 발이다.
나는 항아리에서 손을 떼고 헝겊을 짰다. 짠 헝겊을 줄에 걸었다. 그러는 사이에 두 발소리가 마당 앞을 지나갔다.
지나갈 때 짧게 그쪽이 보였다.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두건의 매는 방식이 익숙했다. 다른 한 사람은 처음 보는 여자였다. 나이가 비슷했고, 어깨에 빈 물동이를 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마당 앞을 지나는 짧은 동안에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익숙한 두건 쪽에서 한 마디가 짧게 들렸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들린 것이 그 한 마디였는지, 아니면 내가 그 한 마디만 골라 들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람은 자기가 들을 수 있는 것만 듣는다. 그 한 마디 뒤에 다른 말이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른 말은 마당 앞을 지나는 짧은 동안에 골목의 다음 굽이로 사라졌다.
그 한 마디가 무슨 뜻인지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내야 할 자리가 아니었다. 그 자리는 내가 항아리의 마지막 막을 걷어 내고 헝겊을 짠 자리였고, 그다음 자리는 짠 헝겊을 줄에 걸어 마르는 동안 마른 가죽 한 장을 꺼내 무릎 위에 펴 놓는 자리였다. 자리가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나는 가죽 한 장을 꺼냈다. 끝을 엄지손톱으로 눌렀다. 결이 평소보다 약간 거칠었다. 그날 비가 와서 무두질액의 농도가 변한 탓이었다. 한 번 더 무두질을 해야 할 결이었다. 나는 그 가죽을 다시 항아리 옆에 두고 다른 한 장을 꺼냈다.
다른 한 장의 끝을 엄지손톱으로 눌렀다. 결이 매끈했다. 그것이 세 번째였다.
세 번째에 나는 그 여자가 누구와 함께 우물에 가는지를 처음 알게 되었다. 함께 가는 사람이 외지인이었다는 것은, 그 여자가 마을 사람과는 함께 우물에 가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날만 외지인과 갔다는 뜻일 수도 있다. 두 가지 중 어느 쪽인지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네 번째는 그해 가을이었다.
가을의 어느 날 저녁 — 정확히 어느 날인지는 모른다 — 마을 광장의 한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장을 가로질러 막내딸의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막내딸이 그날 자기 첫 아이의 백일을 맞아 빵을 굽는다고 했다. 그 빵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열다섯쯤 되어 보였다. 가장자리에 두 사람이 더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이 그 여자였다. 그 여자는 모임의 한가운데에 있지 않고 가장자리에 있었다. 가장자리에 있는 것이 그 여자의 익숙한 자리였다. 마흔 해 한 마을에 산 사람의 눈에는 그 자리가 평소대로의 자리로 보인다.
다만 그날 가장자리의 자리에 있는 그 여자의 어깨가 — 어깨라고만 적는다 — 가장자리의 어깨가 아니었다. 가장자리에 서 있되 가장자리에 눌려 있지는 않은 어깨였다. 어떻게 그런 어깨가 가능한지 나는 그때 가려내지 못했다. 가려내려고 멈추지도 않았다. 멈추지 않은 이유는 막내딸의 빵이 아직 화덕에 있을지 이미 식고 있을지 모르는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식은 빵을 가져가는 것은 막내딸의 마음을 한 박자 어긋나게 한다.
나는 광장을 가로질렀다. 가로지르면서 가죽 묶음을 들고 다닐 때처럼 어깨의 끈을 한 번 추슬렀다. 그날은 가죽 묶음을 들고 있지 않았는데도 손이 그 동작을 했다. 추스르는 동안 오른손이 입고 있던 옷의 어깨 솔기를 한 번 눌렀다. 솔기의 결이 가죽의 결과 비슷한 자리에서 같은 압력을 받았다. 그것이 네 번째였다.
광장을 다 가로지른 뒤에 나는 한 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은 이유는 적지 않겠다.
막내딸의 집에서 빵은 식어 있지 않았다. 화덕에서 막 나온 빵이었다. 막내딸이 그 빵을 천에 싸서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천이 따뜻했다. 그 따뜻함을 가지고 나는 다시 마을의 북쪽 길로 둘러서 집으로 돌아갔다. 광장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가지 않은 이유는 광장의 사람들이 그때까지 모여 있을지 흩어졌을지 모르는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흩어진 자리를 지나는 것은 모인 자리를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 모인 자리는 모인 자리이고, 흩어진 자리는 무엇이 거기 있었는지를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
집에 돌아와 빵을 식탁에 올려놓고 나서 나는 헛간으로 들어가 가죽 한 장을 꺼냈다. 끝을 엄지손톱으로 눌렀다. 결이 매끈했다. 그러나 누른 자리에 평소보다 한 박자 길게 손톱이 머물렀다. 머문 시간이 한 박자 길었던 이유를 나는 그 자리에서 가려내지 않았다.
다섯 번째는 마지막이었다.
해가 바뀌고 봄이 한 번 더 왔다 갔다 한 어느 여름 오후였다. 그동안에도 그 여자는 우물길을 몇 번 지나갔을 것이다. 몇 번이었는지 나는 적지 않는다. 적기 시작하면 횟수가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올라온다. 그 자리는 횟수의 자리가 아니다.
그 오후 미리암이 내 작업장 앞을 지나다 멈췄다. 마흔 해 한 마을에 산 사람의 발소리는 골목의 입구에서부터 분간이 된다. 미리암의 발소리는 한 박자 빠르고 한 박자 가볍다. 가벼운 발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길 때는 그 박자대로 옮긴다. 옮기는 동안 자기 의견을 한 번 더 보태는 것도 그 박자다.
미리암이 말했다. “건너편 마을로 갔다더라.”
나는 가죽의 끝을 누르고 있었다. “그래.”
“그 사내가 — 작년에 우물에서 한참 이야기를 했다는 그 사내 말이야 — 이번에 그쪽 동네에서 누가 죽었던 일이 있었대. 죽었다가 다시 일어났대. 그 이야기를 듣고 갔대.”
“그래.”
“가서 거기서 산다고 그러더라.”
함지를 씻던 — 가죽장이의 함지는 다르지만 동작은 비슷하다 — 손이 한 번 멈출 만한 말이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자리가 아니었다. 가죽의 끝이 평소보다 한 박자 더 단단하게 손톱에 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단단함을 한 번 더 확인해야 했다. 한 번 더 누르고 떼었다. 단단함이 평소대로였다.
“같이 사는 그 남자도 갔어?”
내가 그렇게 물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내가 한 말은 “그래”였다. 미리암은 자기 말을 한참 더 했고, 그 말 가운데 한 마디가 끼어 있었다.
“그 사내가 그 사람의 행한 모든 일을 다 알았다더라.”
미리암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미리암은 어디선가 들은 말을 옮기고 있었다. 옮기는 동안 미리암은 자기 의견을 한 번 더 보태려 했지만, 그날따라 보태지 못하고 그 한 마디만 그대로 두었다. 보태지 못한 이유를 나는 모른다. 미리암도 자기가 왜 그날따라 보태지 못했는지 모를 것이다.
나는 그 한 마디를 들었다. 들으면서 손은 다음 가죽으로 옮겨 가 있었다. 다음 가죽의 끝을 엄지손톱으로 눌렀다. 결이 매끈했다. 매끈한 결을 확인한 뒤에 나는 그 가죽을 다듬어 놓은 묶음 위에 올려놓았다. 묶음 위에 올려놓을 때 가죽의 한쪽 모서리가 다른 가죽의 모서리와 맞닿았다. 두 모서리의 결이 비슷한 정도로 매끈했다. 한 묶음으로 묶기에 적당했다.
나는 가죽장이의 일이 그 두 모서리가 비슷한 정도로 매끈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사십 년간 생각해 왔다. 다른 일이 끼어들 자리가 거기에는 없다. 끼어들면 두 모서리의 결이 어긋난다. 결이 어긋난 가죽은 시장에서 절반 값에 팔린다. 그날 미리암의 한 마디가 끼어들었지만 두 모서리는 다행히 어긋나지 않았다. 어긋나지 않은 이유는 내가 그 한 마디를 들으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리암이 갔다. 그것이 다섯 번째였다.
다섯 번째는 그 여자를 본 것이 아니다. 다섯 번째는 그 여자가 더 이상 우물길을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들은 것이다. 본 것과 듣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마흔 해 한 마을에 산 사람에게는, 더 이상 누가 우물길을 지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사람을 한 번 더 본 것과 비슷한 무게로 들어온다. 그 무게는 가죽의 결로는 가늠할 수 없는 무게다.
그 뒤로 그 여자의 이야기는 마을에 띄엄띄엄 들어왔다. 들어올 때마다 이야기는 조금씩 달랐다. 어떤 사람은 그 여자가 건너편 마을의 한 무리에 끼어 산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그 여자가 그쪽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내의 이야기를 옮긴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내가 결국 예루살렘에서 죽었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
어느 말이 맞는지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내려는 시간이 따로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 여자가 그 사내의 이야기를 옮긴다는 말이 옮겨 왔을 때 — 미리암이 한 말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옮긴 말이었다 — 나는 그 자리에서 마침 가죽의 끝을 누르고 있었고, 결이 평소보다 한 박자 더 단단하게 손톱에 닿았다. 그 단단함을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단단하면 단단한 대로 두는 것이 가죽장이의 한 가지 방식이다. 너무 단단한 가죽은 다음 작업으로 넘기지 않고 한 번 물에 다시 담그면 풀린다. 그러나 그날 그 가죽은 물에 다시 담그지 않았다. 묶음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두었다. 그대로 둔 이유는 적지 않겠다.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그 사내의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그러나 그 사내의 이야기는 내 안의 어떤 자리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오려다 가죽 항아리의 비린 냄새 같은 것에 막혀 마당의 입구에서 그대로 멈췄다. 막혔다는 말이 정확하지 않다. 막힌 것이 아니라 들어오지 못했다. 들어오지 못한 이유를 나는 안다. 안다는 말이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 나는 그 사내의 이야기가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들어오지 못하게 두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원하지 않은 이유를 나는 적지 않겠다. 적지 않아도 적지 않은 이유는 분명히 있다. 다만 한 줄만 적는다면 — 그 사내의 이야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여자의 어깨의 각도가 왜 그랬는지를 나는 분간해야 할 것이다. 분간하면 그다음에 따라오는 일이 있을 것이고, 그 따라오는 일을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일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가죽장이의 작업장은 받지 않을 것을 받지 않는 자리에 있다. 그 자리에 있는 사십 년 동안 나는 그 자리의 이점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오늘 저녁이다.
나는 헛간 안에서 가죽 한 장을 꺼냈다. 무릎 위에 펴 놓았다. 끝을 엄지손톱으로 한 번 눌렀다. 결이 매끈했다. 다음 작업으로 넘겨도 되는 결이었다. 나는 그 가죽을 다듬어 놓은 묶음 위에 올려놓았다. 두 모서리가 닿았다. 두 모서리의 결이 비슷한 정도로 매끈했다. 한 묶음으로 묶기에 적당했다.
마당의 항아리에서 무두질액의 비린 냄새가 평소대로 올라왔다. 그 냄새는 마흔 해 동안 같은 냄새다. 아버지의 작업장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작업장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을 것이다. 그 냄새를 한 마을의 사람들은 가죽장이의 마당의 냄새라고 부른다. 그 냄새 때문에 사람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다가오지 않는 자리가 사십 년 동안 나의 자리였다.
해가 마을의 서쪽 지붕 너머로 거의 다 넘어갔다. 우물길의 발소리는 이 시각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저녁의 자기 자리로 돌아간 시각이다. 우물에 가는 사람은 다음 아침까지 다시 나오지 않는다.
나는 가죽 묶음을 헛간 안쪽 자리로 옮겼다. 옮길 때 묶음의 끈을 어깨에 걸었다. 끈이 어깨에 닿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그 자리를 끈이 마흔 해 동안 닳게 했다. 닳은 자리에 끈이 들어맞는다.
헛간 안쪽 자리에 묶음을 내려놓고 나서 나는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의 항아리 셋의 막을 한 번 더 헝겊으로 걷었다. 걷어 낸 막을 옆 빈 통에 버렸다. 빈 통이 절반쯤 찼다. 절반이 차면 마당의 한쪽 흙구덩이로 가져가 묻는다. 묻는 일은 내일 아침의 일이다.
오늘의 일이 다 되었다.
나는 마당의 한쪽 의자에 앉았다. 의자라기보다 낮은 돌이다. 그 돌에 앉으면 마당의 입구가 보인다. 입구 너머는 골목이고, 골목 너머는 우물길이다. 우물길은 이 시각에 비어 있다. 비어 있는 우물길에는 발소리가 없다.
나는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손가락이 한 번 무엇인가를 누르려다 멈췄다. 누르려던 것이 무릎 위의 옷의 결이었는지, 다음 가죽의 결이었는지, 아니면 그 어느 쪽도 아닌 것의 결이었는지는 분간하지 않는다. 분간하지 않는 것이 가죽장이의 한 가지 방식이다.
엄지손톱이 옷의 한 자리에 한 번 닿았다 떨어졌다. 닿았다 떨어진 자리에 옷의 결이 평소대로 있었다. 결은 매끈하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옷은 가죽이 아니다.
마당의 입구 쪽에서 바람이 한 번 불어왔다. 바람이 항아리들을 한 번 흔들었다. 막이 한 번 출렁였다. 출렁임은 짧았다. 막이 다시 가만해졌다.
나는 손을 내렸다.
아침이 오면 나는 먼저 왼쪽 엉덩이뼈 아래의 한 자리를 안다.
그 자리로 돌판의 냉기가 스며든다. 스며드는 방향이 있다. 엉덩이뼈의 옆쪽에서 시작해 안쪽으로, 그다음에 허리뼈 아래까지 천천히 올라온다. 올라오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올라오기를 다 마치면 그쪽 옆구리 전체가 돌판과 같은 온도가 된다. 같은 온도가 되면 더 이상 시리지 않다. 시리지 않은 자리를 나는 가만히 둔다.
이 자리를 나는 열일곱 해 동안 안다. 열일곱 해라고 적었지만 정확한 햇수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 해에 한 번 굶주린 겨울이 있었고, 그다음 해에 비가 한 달 내내 왔고, 그다음 해의 어느 가을에 행각의 한 기둥이 무너져 내려 두 사람이 자리를 옮겨야 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 일들을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면 대략 열일곱이다. 누가 묻는 사람도 없으므로 정확하게 헤아려 본 적은 없다.
내 자리는 다섯 행각 중 동쪽에서 두 번째 행각의, 안쪽 줄 끝에서 셋째 자리다. 자리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누가 죽으면 한 자리씩 안쪽으로 옮겨 가는 식으로 정해진다. 나는 처음 이 자리에 왔을 때 바깥쪽 줄에 누워 있었다. 그동안 안쪽으로 두 번 옮겼다. 두 번 옮긴 사이에 몇 사람이 죽었는지 나는 헤아리지 않는다. 헤아리지 않는 것이 이 자리에서 사는 한 가지 방식이다.
내 몸은 허리 아래쪽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적지 않겠다. 적기 시작하면 한 줄로 끝나지 않고, 한 줄로 끝나지 않는 일은 적는 사람의 일이 된다. 이 일은 적는 사람의 일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 처음에는 한쪽 다리만 그랬고, 어느 해부턴가 다른 쪽도 같이 그렇게 되었다. 그 사이의 시간이 얼마였는지는 모른다.
손은 움직인다. 팔도 움직인다. 상체를 일으켜 앉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어서지는 못한다. 일어선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나는 몸으로 잊은 지 오래되었다.
베데스다는 양문 가까이에 있다.
성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양문에서 가까운 이 못 가를 지나가는 일이 잦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이 행각의 돌바닥 위에 한 박자씩 닿는다. 그 박자를 나는 누운 채로 안다. 짐을 진 발은 무겁고 박자가 느리다. 빈 손의 발은 가볍고 박자가 빠르다. 어린아이의 발은 두 박자가 한 박자에 들어간다. 노인의 발은 한 박자가 두 박자에 걸쳐진다. 박자만으로도 누가 지나가는지를 대략 안다.
베데스다라는 이름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이름의 뜻을 나는 가려내지 않는다. 가려내야 할 자리가 아니다. 이름은 이름이고, 자리는 자리다.
다섯 행각이라는 말도 그저 이 못 가의 모양에 대한 것이다. 못이 한가운데 있고, 그 둘레로 네 행각이 사각으로 둘러서 있고, 다섯째 행각이 못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다섯 행각은 모두 기둥이 받친 지붕을 가지고 있다. 지붕은 비를 막고 햇볕도 막는다. 비와 햇볕을 막는 자리에 사람들이 누워 있다. 누워 있는 사람의 수가 몇인지 나는 헤아리지 않는다. 헤아리려 하면 헤아릴 수 있겠지만 그 헤아림이 무슨 자리에 가닿는지 모른다.
내 행각의 기둥은 정오 무렵에 그림자를 행각 안쪽으로 길게 던진다. 그림자의 끝이 정오에 내 다리의 어느 자리까지 와 있는지를 나는 안다. 정확히 무릎의 한 뼘쯤 위, 허벅지의 가운데보다 조금 아래쪽이다. 그 자리에 그림자의 끝이 닿으면 정오다. 닿은 그림자는 거기서 잠시 머물다가 천천히 안쪽으로 더 들어간다. 들어가는 동안 나는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옮기지 않는다. 시선을 옮기지 않아도 그림자가 어디 있는지를 나는 안다.
이 자리에서 안다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내 왼편에는 한 사람이 있다.
그가 언제부터 거기 누워 있었는지는 나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는 자기가 서른여덟 해를 누워 있다고 가끔 말했다. 가끔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한 해에 두어 번 그가 그 숫자를 입에 올렸다. 누구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했는지, 행각의 공기에 했는지, 그 자리에 한 박자 멈춰 선 누구에겐가 했는지는 분간하지 않았다. 분간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서른여덟 해는 큰 숫자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는 큰 숫자도 작은 숫자도 같다. 같다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그 자리에 누워 본 사람만 안다.
나와 그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우리 사이에 없다. 우리는 수십 년 옆에 있었지만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서로의 마을을 묻지 않았고, 서로의 아침 빵을 나누지 않았다. 빵은 각자의 사람이 가져왔다. 그의 빵을 가져오는 사람은 한 늙은 여자였다. 내 빵을 가져오는 사람은 누이의 며느리였다. 두 사람은 가끔 행각 입구에서 마주쳤지만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호흡 박자를 나는 안다.
그가 잠들 때의 숨은 한 박자가 길고 다음 박자가 짧다. 그가 깨어 있을 때의 숨은 두 박자가 같다. 그가 통증을 견디는 때의 숨은 들숨에서 한 번 멈췄다가 흘러나간다. 그 멈춤의 길이가 그 통증의 깊이를 알려 준다. 멈춤이 길면 깊고, 짧으면 얕다. 깊은 통증의 멈춤도 그러나 어느 한도를 넘지 않는다. 사람의 몸이 견딜 수 있는 한도라는 것이 있고, 그 한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비슷한 길이의 멈춤을 가진다.
그의 숨이 옆에서 들리는 것은 가족의 거리이지만 가족은 아니다. 정확한 이름이 있다면 — 익숙함의 거리, 라고 적겠다.
이 못의 물에 대해 한때 사람들이 했던 말이 있다.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흔든다고 했다. 물이 흔들리는 그 순간에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는다고 했다. 그 말을 누가 처음 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이 자리에 처음 왔을 때 이미 그 말이 행각에 떠다니고 있었다. 행각의 사람들 중 어떤 이는 그 말을 믿었고, 어떤 이는 믿지 않았고, 어떤 이는 믿지도 믿지 않지도 않은 채 그 말을 자기 곁에 두고 있었다. 나는 어느 쪽이었는지 분간하지 않았다.
물이 흔들리는 일이 실제로 있는지에 대해서도 적지 않겠다. 적지 않는 것이 그 일에 대한 나의 자리다. 다만 어느 날 한낮에 못의 표면이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한 번 흔들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날 행각의 몇 사람이 한꺼번에 일어서려 했다. 일어서려 한 사람들 중 다리가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못에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행각 바깥에서 자기 노예에게 업혀 있던 어느 부유한 절름발이였다. 그가 못에서 올라왔을 때 그의 다리는 들어갈 때와 같은 다리였다. 그것이 내가 본 그 일의 전부다.
옆자리의 사람은 그 시각에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누워 있었다. 그가 일어나려 하지 않은 이유를 나는 묻지 않았다. 묻는 것이 그 자리의 방식이 아니다.
물의 냄새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온다. 동쪽에서 바람이 불 때는 옅고, 서쪽에서 불 때는 진하다. 진한 쪽에는 작은 물고기가 살았던 흔적의 비린 냄새가 섞여 있고, 옅은 쪽에는 그 비린 냄새가 거의 빠져 있다. 그 차이를 나는 안다. 누워서 안다. 누워서 아는 것 외에 내가 이 자리에서 더 가지는 것은 없다.
그날 아침에도 돌판의 냉기가 왼쪽 엉덩이뼈 아래의 그 자리로 스며들었다.
스며들기를 다 마치자 옆구리 전체가 돌판의 온도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통증은 더 이상 자기를 주장하지 않았다. 같은 온도가 되면 통증은 한 박자 작아진다. 작아진 통증은 작은 통증으로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큰 통증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행각에는 평소대로의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누군가의 기침 소리, 누군가의 낮은 신음, 누군가의 마른 입맛 다시는 소리, 누군가의 빵을 들고 들어오는 사람의 발소리. 그 소리들은 일주일 전 아침의 소리와 같았고 한 달 전 아침의 소리와 같았고 일 년 전 아침의 소리와 같았다. 행각의 아침은 아침이 되기 위해 새로워질 필요가 없다.
옆자리의 사람의 호흡은 그 아침에 깨어 있는 박자였다. 두 박자가 같았다.
해가 양문 위로 올라와 첫 햇살을 기둥의 동쪽 면에 던졌다. 햇살이 기둥의 결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기둥의 가운데쯤에 닿을 때 행각의 입구 쪽에서 한 사람의 발소리가 들어왔다.
발소리는 가벼웠다. 짐을 진 발이 아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빈 손의 발이라고 하기에는 박자가 한 박자 더 골랐다. 마을의 발이라기보다 외지의 발이었다. 외지의 발은 한 마을에 오래 산 귀에 한 박자 다른 박자로 들어온다.
그 발소리가 행각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와서 한 사람의 자리 앞에 잠시 멈췄다. 그 자리는 내 옆자리였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 것이 그 자리의 박자를 한 번 어긋나게 한다. 어긋난 박자는 다시 맞추는 데 시간이 든다. 누워 있는 사람에게 박자는 시간을 견디는 한 가지 방식이고, 박자가 어긋나면 그 한 박자만큼 시간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만 시야의 가장자리에 누군가의 옷자락이 들어왔다. 옷자락의 색은 내가 분간할 수 있는 색이 아니었다. 햇살이 아직 그 자리까지 닿지 않은 시각이었다.
옆자리의 사람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늘 눈을 천장 쪽으로 두고 있었다. 천장이라기보다 행각 지붕의 안쪽 결이었다. 그 결을 그가 서른여덟 해 동안 보아 왔다. 보아 온 결을 보는 것 외에 그가 자기 시간을 들이는 자리는 거의 없었다.
그 외지의 발이 옆자리의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추궁하는 목소리도 아니었고, 동정하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어느 자리에 자기 자리를 정해 둔 목소리였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나는 그 한 마디를 들었다. 들으면서 나는 내 왼쪽 엉덩이뼈 아래의 자리를 다시 한 번 의식했다. 돌판의 냉기는 이미 스며들기를 다 마쳤고, 옆구리 전체는 돌판의 온도가 되어 있었다. 같은 온도가 된 자리는 더 이상 시리지 않았다. 시리지 않은 자리에서 나는 그 한 마디를 받았다. 받았다는 말이 정확한지는 모른다. 그 한 마디는 옆자리의 사람을 향한 말이었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옆자리의 사람이 무엇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길었다. 그는 자기에게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물이 동할 때 못에 자기를 넣어 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자기가 가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 말들을 나는 옆에서 들었다. 들으면서 그가 한 말의 박자를 알았다. 그 박자는 그가 서른여덟 해 동안 자기 안에 두고 있었던 박자였다. 그 박자가 한 외지의 발 앞에서 한 번 흘러나왔다. 흘러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것을 자연스럽다고 분간한 것은 누워 있는 자의 분간이다.
그다음에 그 외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나는 그 자리에서 내 오른손을 가만히 두었다. 오른손은 평소처럼 옆구리 옆의 돌판 위에 놓여 있었다. 손바닥의 한쪽이 돌판에 닿아 있었고, 닿은 자리는 이미 돌판의 온도가 되어 있었다. 다른 자리가 아니었다. 그날 아침의 다른 어떤 자리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의 자리였다.
옆자리에서 한 박자 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다음에 천 조각이 끌리는 소리가 났다. 그다음에 한 사람의 무릎이 돌판에 한 번 닿는 소리가 났다. 그다음에 그 무릎이 다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들은 내가 그 자리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소리였다. 무릎이 돌판에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는 누워 있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일어나는 사람의 소리다.
발 두 개가 돌판 위에 섰다. 두 발의 무게가 한 박자 동안 돌판을 통해 내 옆구리까지 전해졌다. 발은 거기 서서 잠시 멈춰 있었다. 멈춰 있는 동안 그 발의 사람이 자기 자리의 천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다음에 두 발이 한 박자, 또 한 박자, 행각의 입구 쪽으로 옮겨 갔다. 옮겨 가는 박자는 처음에는 어긋나 있었고, 두세 걸음 뒤에 골라졌다. 골라진 박자가 행각의 돌바닥을 지나 입구를 빠져나갔다.
그 외지의 발도 그 뒤를 따라 갔는지, 그 자리에 잠시 더 머물렀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옷자락이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을 나는 가만히 두었다.
옆자리가 비었다.
빈자리는 빈자리의 박자를 가지고 있다. 그 박자는 누군가가 거기 누워 있을 때의 박자와는 다른 박자다. 호흡이 없으므로 들숨과 날숨의 박자가 없고, 몸이 없으므로 뒤척이는 소리가 없고, 가끔 입에 올리는 그 숫자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빈자리는 그 모든 것이 없는 자리의 박자를 가지고 있다.
그 자리에 그가 덮고 있던 천 조각의 절반이 남아 있었다. 절반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그가 자기 자리를 들고 일어났을 때 천 조각은 한 장이었고, 그 한 장이 그의 손에 들려 나갔다. 그러나 그 한 장의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고, 닳은 가장자리에서 작은 천 부스러기 몇이 그 자리에 떨어져 남아 있었다. 그 부스러기들이 빈자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그 부스러기들을 보았다.
보았다는 것은 시야의 한가운데로 그것들이 들어왔다는 뜻이다. 들어왔지만 나는 그것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손을 뻗어 치우기에는 거리가 있었고,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몸을 옆으로 돌리는 일은 그날 내 박자가 아니었다. 그대로 두는 것 외에 다른 자리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두었다.
행각의 다른 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로 한 마디씩 한 마디씩 옮겨 다니는 종류의 일이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물었고,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답했고, 어떤 사람이 행각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박자가 평소의 박자가 아니었다. 그 어긋난 박자가 행각 안에 한 차례 퍼졌다 가라앉았다.
가라앉은 뒤에 행각은 다시 행각이었다.
해가 조금 더 올라왔다. 햇살이 기둥의 결을 따라 더 내려와 기둥의 아래쪽 절반에 닿아 있었다. 그 햇살은 정오 무렵까지는 그림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오 무렵에야 그림자가 행각 안쪽으로 길게 던져진다. 그 그림자의 끝이 어느 자리에 와 있는지를 나는 그날 정오에도 알게 될 것이다. 알게 된다는 것이 그 자리의 일이다.
옆자리의 빈 천 부스러기 위로 행각의 공기가 그대로 머물렀다. 그 공기는 평소의 공기였다. 평소의 공기가 빈자리 위에 있는 것은 평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평소가 아닌 자리도 시간이 지나면 평소가 된다. 평소가 되기까지 얼마가 걸리는지는 그 자리에 누워 있는 자의 박자에 달려 있다. 내 박자는 그날 정오까지는 아직 평소가 되지 않은 박자였다.
해가 조금 더 올라왔을 때 행각의 입구로 사람 몇이 들어왔다.
그들은 외지의 발이 아니었다. 마을의 발이었다. 그러나 평소의 마을의 발은 아니었다. 평소의 마을의 발은 누군가의 빵을 들고 들어오거나, 누군가의 약을 들고 들어오거나, 누군가의 옷가지를 들고 들어오는 발이다. 그날의 마을의 발은 손에 든 것이 없었고, 박자가 한 박자 빠르고 한 박자 단단했다.
그들이 행각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물었다. 묻는 말의 첫 부분은 누가 무엇을 했는가, 였고, 두 번째 부분은 그 누가 어디로 갔는가, 였다. 그들은 옆자리의 빈자리 앞에 가서 잠시 섰다. 거기 서서 천 부스러기를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보는 시간이 짧았다. 짧게 본 뒤에 그들은 옆 행각으로 옮겨 갔다.
그중 한 사람이 내게도 묻고 갔다. 그가 무엇을 물었는지 나는 적지 않는다. 그가 묻는 동안 나는 천장 쪽을 보고 있었다. 천장이라기보다 행각 지붕의 안쪽 결이었다. 그 결을 옆자리의 사람이 서른여덟 해 동안 보아 왔다. 그 결은 같은 결이었다. 누가 그 결을 보아 왔는가에 따라 결의 무엇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한 마디였다. 그 한 마디가 무엇이었는지도 적지 않는다. 적기 시작하면 내가 그 자리에서 어느 편을 들었는지가 한가운데로 올라온다. 그 자리는 편의 자리가 아니다.
그들은 옆 행각으로 갔고, 그다음 행각으로 갔고, 나중에는 행각 바깥으로 나갔다. 그들의 말이 행각 안에 한 차례 더 퍼졌다 가라앉았다. 가라앉은 뒤의 행각은 다시 행각이었다.
옆자리의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를 나는 묻지 않았다. 그가 어디로 갔든 그가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어나서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 나간 사람의 자리는 그 자리에 다시 놓이지 않는다. 천 조각은 한 장이고, 그 한 장은 그의 손에 들려 갔다.
해가 천천히 올라왔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기둥의 그림자가 행각 안쪽으로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끝이 행각의 돌바닥 위로 한 박자씩 한 박자씩 옮겨 왔다. 옮겨 오는 동안 그림자는 자기 모양을 한 번씩 살짝 바꿨다. 기둥은 똑같은 기둥이었지만 햇살의 각도가 달라지면 그림자의 가장자리가 한 자리에서 한 자리로 옮겨진다. 그 옮김을 나는 누워서 안다.
그림자의 끝이 내 자리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내 무릎의 한 뼘쯤 위, 허벅지의 가운데보다 조금 아래쪽에 닿았다. 닿은 자리에서 그림자의 끝이 잠시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정오였다.
정오의 빛은 행각 안쪽으로 더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오는 자리까지 들어오고 그다음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오지 않는 자리에 사람들이 누워 있다. 누워 있는 자리는 바뀌지 않는다.
옆자리의 빈 자리 위로도 정오의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자리는 행각의 안쪽이었으므로 그날 정오에도 그늘이었다. 그늘 위에 천 부스러기가 그대로 있었다. 그 부스러기들은 그날 오후에도 그 자리에 있었고, 그날 저녁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가 행각을 청소할 때까지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행각의 청소는 한 달에 한 번 있다. 다음 청소까지는 아직 며칠이 남아 있었다.
내 왼쪽 엉덩이뼈 아래의 자리는 정오에 돌판의 온도와 같았다. 같은 온도가 된 자리는 더 이상 시리지 않았다. 시리지 않은 자리를 나는 가만히 두었다. 가만히 두는 것이 그 자리의 방식이다.
그다음 날 아침에도 돌판의 냉기가 왼쪽 엉덩이뼈 아래의 그 자리로 스며들었다.
스며들기를 다 마치자 옆구리 전체가 돌판의 온도가 되었다. 같은 온도가 된 자리는 시리지 않았다. 시리지 않은 자리를 나는 가만히 두었다.
옆자리는 그날도 비어 있었다. 천 부스러기는 어제보다 한 자리 옆으로 조금 옮겨져 있었다. 밤사이에 행각으로 들어온 바람이 그 부스러기를 한 자리 옮겼을 것이다. 어느 바람인지는 모른다. 동쪽에서 온 바람일 수도 있고 서쪽에서 온 바람일 수도 있다. 옮겨진 자리에서 부스러기들은 그날 아침에도 그대로 있었다.
행각에는 평소대로의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누군가의 기침 소리, 누군가의 낮은 신음, 누군가의 마른 입맛 다시는 소리, 누군가의 빵을 들고 들어오는 사람의 발소리. 그 소리들은 어제 아침의 소리와 같았고 한 달 전 아침의 소리와 같았고 일 년 전 아침의 소리와 같았다. 한 자리만이 그 소리들 중에서 빠져 있었다. 빠진 자리에서는 박자가 없었다.
그 박자가 없는 자리의 옆에서 내 박자는 평소대로 있었다. 평소대로의 박자가 평소가 아닌 자리의 옆에 있는 것이 그날 아침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한 박자 한 박자 흘러갔고, 흘러가는 동안 평소가 아닌 자리도 평소의 자리가 되어 갔다. 평소가 아닌 것이 평소가 되는 데에 정확히 얼마가 걸리는지는 그 자리에 누워 있는 자의 박자에 달려 있다.
누이의 며느리가 빵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녀는 평소처럼 짧게 인사를 하고, 평소처럼 빵을 내 손 옆에 놓아두고, 평소처럼 행각 입구 쪽으로 다시 나갔다. 그녀가 옆자리의 빈자리를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녀가 그 자리에 대해 무엇을 물었다 해도 나는 적지 않을 것이다. 적지 않는 것이 그 자리의 방식이다.
빵은 평소의 빵이었다. 평소의 빵의 결이 평소대로의 결이었다. 결이 매끈하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그저 빵의 결이었다.
며칠이 지나갔다.
며칠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그 자리에서 날짜를 헤아리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정오의 그림자가 내 다리의 그 자리에 닿는 것을 그 사이에 몇 번 보았다. 닿은 횟수를 헤아려 보면 며칠이 된다. 헤아려 본 적은 없다.
어느 날 정오 무렵이었다. 그림자의 끝이 내 다리의 그 자리에 닿아 있었다. 닿아 있는 동안 내 안의 한 자리에서 한 마디가 떠올랐다. 떠올랐다는 말이 정확하지 않다. 떠오른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었다. 거기에 있던 것을 그날 정오에 내가 한 번 의식했다.
그 한 마디는 — 왜, 라는 한 마디였다.
왜 그였는가. 왜 그가 일어났고 나는 누워 있는가. 왜 외지의 발이 그의 자리 앞에 멈췄고 내 자리 앞에 멈추지 않았는가. 왜 한 마디가 그에게 갔고 나에게는 가지 않았는가.
이 한 마디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답이 없는 한 마디가 정오의 그림자 끝에 잠시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나는 그 한 마디에 어떤 답을 붙이려 하지 않았다. 답을 붙이려 하면 답이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 다니다가 결국 어느 자리에도 가닿지 않는다는 것을 그 자리에 누워 본 자는 안다. 가닿지 않는 답은 답이 아니다. 답이 아닌 것을 답이라고 부르는 일은 그 자리의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 한 마디를 그대로 두었다.
그대로 둔 한 마디 위로 정오의 그림자가 한 박자 더 머물렀다. 그러고는 그림자의 끝이 행각 안쪽으로 한 박자 더 들어갔다. 들어가는 동안 한 마디는 그림자와 함께 옮겨졌다. 옮겨진 자리에서 한 마디는 더 이상 한 마디가 아니었다. 그저 행각의 공기였다.
행각의 공기는 평소의 공기였다. 평소의 공기 안에 한 마디가 들어 있다는 것이 평소가 아니었지만, 평소가 아닌 것은 평소가 된다.
오늘이다.
아침에 돌판의 냉기가 왼쪽 엉덩이뼈 아래의 그 자리로 스며들었다. 스며드는 방향은 어제와 같았다. 엉덩이뼈의 옆쪽에서 시작해 안쪽으로, 그다음에 허리뼈 아래까지 천천히 올라왔다. 올라오기를 다 마치자 옆구리 전체가 돌판의 온도가 되었다. 같은 온도가 된 자리는 시리지 않았다.
해가 양문 위로 올라왔다. 햇살이 기둥의 동쪽 면에 닿았다. 닿은 자리에서 햇살이 기둥의 결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행각에는 평소대로의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누군가의 기침 소리, 누군가의 낮은 신음, 누군가의 마른 입맛 다시는 소리, 누군가의 빵을 들고 들어오는 사람의 발소리. 그 소리들은 한 달 전의 소리와 같았다. 한 달 전의 소리도 한 해 전의 소리와 같았다. 한 해 전의 소리도 그보다 더 전의 소리와 같았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천 부스러기는 한 달 전 청소 때 누군가가 쓸어 갔다. 빈자리는 비어 있는 자리로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난 빈자리는 평소의 빈자리였다. 평소의 빈자리는 평소의 자리다.
정오가 가까워졌다. 기둥의 그림자가 행각 안쪽으로 길어졌다. 그림자의 끝이 한 박자 한 박자 옮겨 왔다. 옮겨 와서 내 다리의 그 자리에 닿았다. 무릎의 한 뼘쯤 위, 허벅지의 가운데보다 조금 아래쪽이었다. 닿은 자리에서 그림자의 끝이 잠시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정오였다.
내 왼쪽 엉덩이뼈 아래의 자리는 돌판의 온도와 같았다. 같은 온도가 된 자리는 시리지 않았다. 시리지 않은 자리를 나는 가만히 두었다. 오른손은 평소처럼 옆구리 옆의 돌판 위에 놓여 있었다. 손바닥의 한쪽이 돌판에 닿아 있었다. 닿은 자리는 돌판의 온도였다.
기둥의 그림자가 한 박자 더 머무르다 행각 안쪽으로 한 박자 더 들어갔다.
저녁이 되면 나는 좌판의 천 끝을 한 번 안쪽으로 접는다.
가버나움 시장의 동쪽 줄, 끝에서 다섯 번째 좌판이다. 좌판은 나무틀 두 개에 굵은 천 한 장을 얹은 것이고, 그 위에 옷감 묶음을 늘어놓는다. 묶음은 일곱이다. 오른쪽부터 거친 갈색 모직, 그다음 회색 모직, 그다음 흰 무명, 그다음 푸른 물 들인 무명, 그다음 가는 아마 두 묶음, 끝에 붉은 물 들인 가는 천 한 묶음. 자리는 정해져 있다. 자리가 정해져 있으면 손님이 오른손을 어디로 뻗을지 미리 안다. 어느 손님이든 같은 자리를 같은 박자로 짚는다.
저녁에 묶음을 거두어 광주리 둘에 옮긴 뒤, 좌판의 천을 안쪽으로 한 번 접는다. 접는 자리는 천의 가장자리에서 손가락 두 마디쯤 들어간 곳이다. 두 마디 안쪽으로 접어 무게가 실리는 자리는 닳지 않게 하고, 가장자리만 닳게 한다. 닳은 가장자리는 일 년에 한 번 잘라 내고 새 단을 댄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일이다.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일일 것이다.
나는 쉰몇이다. 정확한 햇수는 모른다. 큰애를 낳은 해가 아버지가 죽은 해 다음 해였다는 것을 어머니가 말해 주었고, 큰애가 지금 서른넷이라 했으므로, 그쯤이다. 묻는 사람이 없으므로 헤아릴 일이 없다. 좌판에 앉아 있는 동안 나이를 헤아리는 일은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편은 칠 년 전에 갔다. 큰애 둘은 결혼했고, 막내딸이 시장 끝에서 옷가게의 안쪽 일을 한다. 막내딸이 하루걸러 한 번씩 점심을 가지고 나온다. 그 점심을 받는 것 외에 나는 시장의 다른 일에 끼지 않는다.
오늘 저녁에도 좌판의 천 끝을 안쪽으로 한 번 접었다. 닳은 자리가 평소대로 닳아 있었다. 다음 단을 대기까지 두 달쯤 더 갈 결이었다.
내 좌판에서 시장 입구의 우물길까지는 쉰 걸음쯤이다.
쉰 걸음 사이에 모퉁이가 두 개 있다. 첫 모퉁이는 생선 좌판 줄이 끝나는 자리에서 한 번 왼쪽으로 꺾인다. 두 번째 모퉁이는 그 다음 줄, 향료 좌판 셋이 끝나는 자리에서 한 번 더 왼쪽으로 꺾인다. 두 번째 모퉁이를 지나면 우물길이 보인다.
내 발은 두 번째 모퉁이에서 한 박자 먼저 안쪽으로 꺾인다.
먼저라는 말은, 모퉁이가 꺾이기 전에 이미 내 왼발이 안쪽으로 한 뼘쯤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그 한 뼘이 무엇을 비켜 가는 한 뼘인지를 발이 안다. 머리가 아니라 발이다. 발이 한 박자 먼저 꺾이고 그다음에 어깨가 따라가고 그다음에 광주리의 끈이 어깨의 한쪽으로 옮겨진다. 광주리의 끈을 옮기는 자리는 모퉁이를 다 돌고 나서 세 걸음쯤 뒤다. 그 자리에서 광주리는 향료 좌판 쪽 어깨에서 우물길 쪽 어깨로 넘어간다.
이 동선을 나는 십이 년쯤 한다. 십이 년이라고 적었지만 정확한 햇수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 해 봄에 시장의 한쪽 차양이 무너져 내려 좌판 두 자리가 옆으로 옮겨졌고, 그 뒤로 두 해 더 봄이 왔고, 그러는 사이에 큰애가 결혼했고, 그 뒤로도 봄이 여러 번 왔다.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면 대략 십이다. 정확하게 헤아려 본 적은 없다.
향료 좌판이 끝나는 그 모퉁이의 안쪽 — 그 자리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정확히는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누워 있는 것도 아니고, 앉아 있는 것에 가까운 자세로 자기 무릎 위에 자기 천을 한 장 덮고 있다. 그 천의 색은 분간이 어렵다. 한때는 다른 색이었을 것이고 지금은 그 모퉁이의 흙 색깔에 가깝다. 자기 천을 덮은 사람이 어느 쪽 어깨를 벽 쪽으로 두고 있는지에 따라 그날 그 사람의 박자를 대강 안다. 안다는 말은 보아서 안다는 뜻이 아니다. 발이 안다.
발이 안다는 자리에서 발이 더 안쪽으로 꺾인다. 그 한 뼘이다.
한 뼘이 무엇을 위한 한 뼘인지를 적자면 한 줄로 끝나지 않는다.
한 줄로 끝나지 않는 일은 적는 사람의 일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 그 모퉁이에 앉은 사람의 천 자락이 시장의 흙 위로 한 뼘쯤 흘러 나와 있다. 흘러 나온 자락에 광주리의 천 끝이 한 번이라도 닿으면 그날의 광주리가 어느 자리로 가는지가 한 박자 어긋난다. 그 한 박자를 다시 맞추는 데 시간이 든다. 시간이 들면 그날 저녁의 빵이 한 박자 늦어진다. 빵이 한 박자 늦어지면 다음 날 새벽의 반죽이 한 박자 늦어진다. 박자는 한 번 어긋나면 며칠을 간다.
이 셈은 십이 년 전에 누가 가르쳐 준 셈이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셈이 아니다. 시장의 발이 자기 동선을 만들어 가는 동안 자기 안에서 정해 가는 셈이다. 시장의 어떤 발도 자기 동선이 있다. 어느 좌판 앞에서 한 박자 멈추고, 어느 좌판 앞을 한 박자 빠르게 지나고, 어느 모퉁이의 어느 쪽으로 어깨를 비키고. 그 동선이 하루의 박자를 만든다. 박자가 만들어진 동선은 그 동선의 사람이 자기에게 가지는 사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그 한 뼘이 무엇을 위한 한 뼘인지를 적기 시작하면 그것은 그 한 뼘의 일이 아니라 적는 사람의 일이 된다. 나는 적지 않을 것이다. 발이 그 자리에서 한 박자 먼저 꺾인다는 것만 적는다.
먼저 꺾인 발이 모퉁이를 돌면, 그다음에 우물길의 햇살이 보인다. 우물길의 햇살은 시장 줄들의 차양 사이로 한 자리만 비스듬히 들어온다. 그 한 자리에서 햇살이 우물의 두레박 줄에 부딪혀 잠시 흩어졌다가 흙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흩어지는 자리를 나는 안다. 매일 보지는 않지만 발이 향료 좌판 모퉁이를 돌고 세 걸음쯤 뒤에 광주리를 어깨에서 어깨로 옮길 때, 시야의 가장자리에 그 흩어진 자리가 들어온다. 들어오면 우물길에 거의 다 왔다는 뜻이다.
그날 아침의 일을 나는 거의 다 기억한다.
기억하는 것은 그날의 일이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날의 일은 그 전날 아침의 일과 거의 같았고, 그다음 날 아침의 일과도 거의 같다. 그러므로 그날 아침을 기억한다고 적는 것은, 모든 아침을 기억한다고 적는 말과 거의 같다. 모든 아침이 같으므로.
새벽에 일어나 큰 광주리에 옷감 묶음 일곱을 차례로 담았다. 담는 순서는 늘어놓는 순서의 거꾸로다. 거꾸로 담아야 좌판에서 꺼낼 때 다시 늘어놓는 순서가 된다. 가장 먼저 담는 것이 붉은 가는 천 한 묶음이고, 가장 나중에 담는 것이 거친 갈색 모직이다. 가장 무거운 것이 위에 가야 광주리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광주리를 등에 졌다. 끈을 어깨의 한 자리에 걸었다. 그 자리는 끈이 십이 년 동안 닳게 한 자리다. 닳은 자리에 끈이 들어맞는다.
마당을 나서고 골목을 한 번 꺾었다. 시장으로 가는 길은 마을의 동쪽 길과 우물길의 갈래에서 한 번 더 꺾인다. 갈래에서 꺾일 때 막내딸의 시어머니가 골목에서 항아리를 엎어 놓고 있었다. 우리는 짧게 인사를 했다. 짧게 인사하는 사이에 광주리가 어깨에서 살짝 미끄러졌다. 나는 갈래를 꺾으면서 끈을 한 번 추슬렀다.
추스르는 동안 시장 줄의 첫 모퉁이가 보였다. 생선 좌판들의 비린 냄새가 평소대로 올라왔다. 비린 냄새는 시장의 동쪽 줄로 들어가는 사람에게 처음 올라오는 냄새다. 그다음에 향료 좌판의 진한 냄새가 올라오고, 그다음에 우물길 쪽의 흙 냄새가 옅게 섞인다. 냄새의 박자가 시장의 박자다.
첫 모퉁이를 한 번 꺾었다. 두 번째 모퉁이가 다섯 걸음쯤 앞이었다. 내 왼발이 한 박자 먼저 안쪽으로 한 뼘 꺾였다.
꺾이는 동안 발은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했다. 어깨가 따라갔고, 광주리의 끈이 어깨의 한쪽으로 옮겨졌다. 옮겨지는 자리에서 끈이 평소대로 십이 년 동안 닳은 자리에 들어맞았다. 끈이 들어맞은 자리에서 광주리는 향료 좌판 쪽 어깨를 비웠다.
발이 두 번째 모퉁이를 다 돌았다.
도는 동안 시야의 가장자리에 그 모퉁이의 안쪽이 들어왔다. 들어왔지만 그 자리에 평소의 자세가 없었다.
빈자리라고 적기에는 정확하지 않다.
천 자락이 흙 위로 한 뼘쯤 흘러 나와 있어야 했다. 자기 천을 덮은 사람의 어느 쪽 어깨가 벽 쪽으로 가 있어야 했다. 그것이 그날 아침의 평소의 자세였다. 그러나 그날의 모퉁이의 안쪽에는 그 자세가 없었다. 흙 위에 흙만 있었고, 벽에는 벽만 있었다.
내 왼발은 이미 한 박자 먼저 한 뼘 안쪽으로 꺾여 있었다. 꺾인 발이 거기에 닿을 무엇이 없는 자리를 헛돌았다. 헛돌았다는 말이 정확하지 않다. 발은 자기 동선을 끝까지 수행했다. 한 뼘 안쪽으로 들어가고, 어깨가 따라가고, 광주리의 끈이 어깨의 한쪽으로 옮겨지고. 그 동작 전체가 평소대로 한 박자 한 박자 끝까지 갔다. 끝나고 보니 그 끝이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끝의 한 박자를 나는 분간하지 않았다. 분간하려면 멈춰야 했다. 멈추는 것이 시장에 들어가는 발의 박자가 아니다. 첫 좌판 앞을 지나는 발은 그날 좌판을 펼치기까지의 시간을 알고 있고, 그 시간은 한 박자도 어긋나면 안 된다. 어긋나면 옷감 묶음 일곱을 늘어놓는 순서가 한 박자 어긋나고, 그 어긋남이 첫 손님의 손이 짚는 자리를 한 박자 어긋나게 한다. 첫 손님의 박자가 그날 시장의 박자다. 첫 박자가 어긋난 시장은 저녁까지 어긋난 채로 간다.
그러므로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은 채로 광주리의 끈이 어깨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졌고, 향료 좌판의 진한 냄새가 옅어지면서 우물길의 흙 냄새가 올라왔고, 우물길의 햇살이 두레박 줄에 부딪혀 흩어지는 자리가 시야의 가장자리에 들어왔다. 평소대로의 자리였다.
좌판에 도착해 광주리를 내려놓았다. 옷감 묶음 일곱을 차례로 꺼내 좌판의 천 위에 늘어놓았다. 오른쪽부터 거친 갈색 모직, 그다음 회색 모직, 그다음 흰 무명. 늘어놓는 순서가 평소대로였다. 첫 손님이 와서 회색 모직을 짚었다. 회색 모직은 그날 아침의 평소의 첫 손님의 자리였다. 박자가 어긋나지 않았다.
그 한 박자에 대해 나는 어떤 자리도 마련하지 않았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막내딸이 점심을 가지고 나왔다.
막내딸은 점심을 가지고 나올 때 시장의 우물길을 지나서 들어온다. 들어오면서 모퉁이 두 개를 거꾸로 꺾는다. 두 번째 모퉁이를 거꾸로 꺾을 때 막내딸의 발이 안쪽으로 한 뼘 들어가는지 들어가지 않는지를 나는 그 자리에서 보지 못한다. 좌판에서는 그 모퉁이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막내딸의 광주리가 좌판 앞에 도착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안다. 그 시간이 평소보다 한 박자 짧으면 막내딸의 발이 모퉁이의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고, 한 박자 길면 들어간 것이다. 십이 년의 어느 해부터 막내딸의 시간은 늘 한 박자 길었다. 그 한 박자가 모녀에게 가르쳐 준 셈이다.
그날 정오의 막내딸의 시간은 평소대로 한 박자 길었다. 길어진 한 박자가 좌판 앞에 도착해서 광주리를 내려놓았다. 막내딸이 빵 두 개와 절인 물고기 한 마리와 무화과 셋을 꺼냈다. 무화과는 어제 옆 좌판에서 받은 것이었고, 빵은 새벽에 막내딸이 구운 것이었다.
“엄마, 그 모퉁이에서—”
막내딸이 말을 시작했다 멈췄다. 멈춘 자리에서 막내딸이 빵을 한 번 더 가지런히 놓았다. 한 번 더 놓을 필요가 없는 빵이었다. 멈춘 이유를 나는 묻지 않았다. 묻는 자리가 아니었다. 첫 손님 다음의 둘째 손님이 좌판 앞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손님은 푸른 물 들인 무명을 짚었다. 평소의 둘째 손님의 자리였다. 박자가 어긋나지 않았다.
막내딸이 짧게 인사를 하고 갔다. 우물길 쪽으로 다시 모퉁이 두 개를 꺾어 갔다. 갈 때 막내딸의 발이 두 번째 모퉁이의 안쪽으로 한 뼘 들어가는지 들어가지 않는지를 나는 보지 못했다.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빵의 결이 평소대로였다. 평소대로의 결이 평소대로 입의 한 자리에서 한 자리로 옮겨지는 동안 입은 자기 일을 했다. 무화과 한 알을 더 먹었다. 단맛이 평소대로였다.
오후의 어느 시각에 옆 좌판의 향료 상인이 그 옆 좌판의 사람과 말을 하고 있었다.
옆 좌판은 거리는 가깝지만 시장의 줄이 다른 줄이다. 향료 좌판 줄과 옷감 좌판 줄이 시장의 안쪽에서 한 번 부딪힌다. 부딪히는 자리에서 두 좌판이 등을 맞대고 있다. 등을 맞댄 좌판의 말소리는 좌판 너머로 옮겨 온다. 옮겨 와도 분간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날 오후 그 좌판의 말소리에 한 단어가 끼어 있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들린 것이 그 한 마디였는지, 그 한 마디만 골라 들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람은 자기가 들을 수 있는 것만 듣는다. 그 한 마디 앞에 다른 말이 있었을 것이고 뒤에도 다른 말이 있었을 것이다. 앞뒤의 다른 말은 그날의 시장 소리에 섞여 옷감 좌판 줄로 옮겨 오지 않았다.
그 한 마디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내야 할 자리가 아니었다. 손님 셋이 그 시각에 좌판 앞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회색 모직 한 자를 사 갔고, 둘째는 흰 무명을 만져만 보고 갔고, 셋째는 가는 아마를 한 자 반 사 갔다. 셋이 동전을 내고 받는 동안 나는 동전 셈을 한 번 한 번 손바닥에 옮겼다. 가는 아마 한 자 반은 두 데나리온 반. 두 데나리온 반의 거스름은 반 데나리온. 반 데나리온은 청동 두 개. 청동 두 개를 손님의 손에 옮겼다. 손님이 갔다. 박자가 어긋나지 않았다.
옆 좌판의 두 사람의 말은 그 뒤로도 한참 더 이어졌다. 한참 이어지는 동안 한 단어가 한 번 더 한 단어가 한 번 더 옷감 좌판 줄로 옮겨 왔다. “옷자락”이라는 단어가 한 번 옮겨 왔고, “열두 해”라는 단어가 한 번 옮겨 왔다. 두 단어가 옷감 좌판 줄에 닿을 때 나는 마침 가는 아마 묶음의 매듭을 다시 묶고 있었다. 매듭의 각도가 평소대로였다. 옷감의 결이 평소대로였다.
해가 시장의 서쪽 차양 너머로 거의 다 넘어갔다.
저녁이 되면 시장은 자기 박자를 거꾸로 푼다. 옷감 묶음 일곱을 광주리에 거꾸로 담는다. 가장 먼저 담는 것이 거친 갈색 모직이고, 가장 나중에 담는 것이 붉은 가는 천 한 묶음이다. 거꾸로 담은 광주리를 등에 졌다. 끈을 어깨의 한 자리에 걸었다. 닳은 자리에 끈이 들어맞았다.
좌판의 천 끝을 안쪽으로 한 번 접었다. 두 마디 안쪽으로. 닳은 자리가 평소대로 닳아 있었다. 다음 단을 대기까지 두 달쯤 더 갈 결이었다.
좌판을 떠나 시장의 줄을 거꾸로 걸었다. 향료 좌판 줄의 진한 냄새가 평소대로 옅어지면서 생선 좌판 줄의 비린 냄새가 다시 올라왔다. 두 번째 모퉁이가 앞이었다.
내 왼발이 한 박자 먼저 안쪽으로 한 뼘 꺾였다.
꺾인 발이 모퉁이를 돌았다. 도는 동안 시야의 가장자리에 그 모퉁이의 안쪽이 들어왔다. 흙 위에 흙만 있었고, 벽에는 벽만 있었다. 발은 자기 동선을 끝까지 수행했다. 한 뼘 안쪽으로 들어가고, 어깨가 따라가고, 광주리의 끈이 어깨의 한쪽으로 옮겨졌다. 끝나고 보니 그 끝이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끝의 한 박자를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그대로 두는 것이 그날 저녁의 일이었다.
첫 모퉁이를 한 번 더 꺾었다. 시장 입구를 빠져나왔다. 골목을 한 번 꺾었다. 마당으로 들어갔다. 광주리를 마당의 한쪽 자리에 내려놓았다. 옷감 묶음 일곱을 거꾸로 다시 거꾸로 꺼내 다음 날 아침의 자리로 옮겼다. 옮긴 자리가 평소대로의 자리였다.
며칠 뒤 사라가 좌판 앞을 지나다 멈췄다.
사라는 시장 동쪽 끝에서 무화과를 파는 사람이고, 무화과를 사는 손님보다 옆 좌판의 일을 더 잘 아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기는 일이 그래서 자연히 따라온다. 옮길 때 자기 의견을 한 번 더 보태는 것도 그 일의 한 부분이다.
사라가 말했다. “그 모퉁이의 그 사람—”
나는 가는 아마 묶음의 매듭을 다시 묶고 있었다. “그래.”
“호숫가에서 그 사내의 옷자락을 만졌다더라. 사람이 많아서 자기는 보지도 못했는데 손만 뻗었다는 거야. 손이 옷자락에 닿자마자 피가 멎었대.”
“그래.”
“사내가 군중 한가운데서 멈춰서 누구냐고 물었다더라. 제자들이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누가 만졌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했는데도 사내가 한참을 둘러보고 있었대. 결국 그 여자가 떨면서 나와서 다 말했고, 사내가—”
사라는 한 박자 멈췄다. 멈춘 자리에서 사라가 자기 의견을 한 번 더 보태려 했지만, 그날따라 보태지 못하고 그다음 한 마디만 그대로 옮겼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매듭의 첫 번째 끝이 두 번째 끝을 누르는 자리에 있었다. 누르는 힘이 평소대로였다. 너무 세면 천이 찢어지고 너무 약하면 풀린다. 그 힘은 손목이 익혀서 안다. 매듭이 다 묶였다. 사라의 말 위에서 한 박자가 지났다.
“그래서 어디로 갔어?”
내가 그렇게 물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내가 한 말은 “그래”였다. 사라는 자기 말을 한참 더 했고, 그 말 가운데 “그 모퉁이에” “더 이상” 같은 단어들이 끼어 있었다. 그 단어들 사이의 다른 단어들은 그 시각의 시장 소리에 섞여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오지 않은 단어들은 들어오지 않은 채로 두었다.
“그래.”
사라가 갔다.
사라가 간 뒤에 나는 매듭을 다시 한 번 만졌다. 풀리지 않을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풀리지 않았다. 매듭은 두 번이면 충분하다. 어머니가 그렇게 했고, 나도 그렇게 한다.
다음 날 아침에도 새벽에 일어나 큰 광주리에 옷감 묶음 일곱을 차례로 담았다.
거꾸로 담는 순서가 평소대로였다. 광주리를 등에 졌다. 끈을 어깨의 한 자리에 걸었다. 닳은 자리에 끈이 들어맞았다.
마당을 나서고 골목을 한 번 꺾었다. 갈래에서 한 번 더 꺾었다. 시장 줄의 첫 모퉁이가 보였다. 생선 좌판들의 비린 냄새가 평소대로 올라왔다. 향료 좌판의 진한 냄새가 그 뒤로 올라왔다. 첫 모퉁이를 한 번 꺾었다. 두 번째 모퉁이가 다섯 걸음쯤 앞이었다.
내 왼발이 한 박자 먼저 안쪽으로 한 뼘 꺾였다.
꺾인 발이 모퉁이를 돌았다. 흙 위에 흙만 있었고, 벽에는 벽만 있었다. 어깨가 따라갔고 광주리의 끈이 어깨의 한쪽으로 옮겨졌다. 평소대로였다.
좌판에 도착해 광주리를 내려놓았다. 옷감 묶음 일곱을 차례로 꺼내 좌판의 천 위에 늘어놓았다. 첫 손님이 와서 회색 모직을 짚었다. 평소의 첫 손님의 자리였다.
오후에 옆 좌판의 말소리는 다른 단어들로 옮겨 가 있었다. 호숫가의 일은 며칠 전의 일이고, 며칠 전의 일은 시장 소리의 며칠 전의 자리에 가 있다. 그 자리는 그날 오후의 자리가 아니다. 그날 오후의 자리는 새 단어들의 자리였다. 어느 마을에 누가 어떻게 했고 어느 사내가 어디로 갔다는 단어들. 새 단어들은 새 단어들대로 옷감 좌판 줄로 옮겨 왔다 옮겨 갔다.
저녁이 되었다. 시장의 줄을 거꾸로 걸었다. 두 번째 모퉁이가 앞이었다. 내 왼발이 한 박자 먼저 안쪽으로 한 뼘 꺾였다. 꺾인 발이 모퉁이를 돌았다. 비어 있는 끝의 한 박자를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첫 모퉁이를 꺾었다. 시장 입구를 빠져나왔다.
한 달이 지나갔다.
한 달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시장에서 날짜를 헤아리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안식일이 네 번 지나갔다. 안식일이 네 번이면 한 달이다. 헤아려 본 적은 없다. 헤아려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 사이에 내 왼발은 두 번째 모퉁이에서 한 박자 먼저 안쪽으로 한 뼘 꺾이는 일을 매일 두 번씩 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꺾이는 동안 발은 자기 동선을 끝까지 수행했다. 어깨가 따라갔고 광주리의 끈이 어깨의 한쪽으로 옮겨졌다. 끝나고 보면 그 끝에 흙이 있었다. 흙 위에 흙만 있는 자리에 발의 동선이 매일 두 번씩 닿았다 떨어졌다.
며칠이 지나면서 한 뼘이 한 뼘보다 조금 짧아진 듯했다. 짧아졌다는 말이 정확하지 않다. 발은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했다. 다만 그 일을 마치는 박자가 한 박자 안에 들어가는 박자에서 그 한 박자보다 한 호흡 작은 박자로 옮겨 갔다. 옮겨 가는 동안 발이 그 옮김을 분간했는지 분간하지 않았는지를 나는 적지 않는다. 적지 않는 것이 그 자리의 방식이다.
매듭은 평소대로 두 번이었다. 동전 셈은 평소대로 한 손님 한 손님 손바닥에 옮겼다. 좌판의 천 끝은 저녁마다 두 마디 안쪽으로 접었다. 닳은 자리가 닳은 자리대로 닳았다.
옆 좌판 너머의 말소리에서 호숫가의 한 마디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 한 마디는 시장 소리의 그 자리에 며칠을 머물렀다 옅어졌고, 옅어진 자리로 다른 한 마디들이 옮겨 들어왔다. 그것이 시장 소리의 일이다. 한 마디는 한 자리에 머물렀다 옅어지고, 옅어진 자리는 다음 한 마디의 자리가 된다.
한 달의 어느 저녁에 막내딸이 점심이 아닌 저녁을 가지고 나왔다. 무화과 다섯과 빵 한 개. 무화과의 단맛이 평소대로였다. 빵의 결이 평소대로였다. 막내딸이 짧게 인사를 하고 갔다. 우물길 쪽으로 모퉁이 두 개를 꺾어 갔다. 갈 때 막내딸의 발이 두 번째 모퉁이의 안쪽으로 한 뼘 들어가는지 들어가지 않는지를 나는 보지 못했다.
오늘 저녁이다.
저녁이 되면 좌판의 천 끝을 한 번 안쪽으로 접는다. 접는 자리는 천의 가장자리에서 손가락 두 마디쯤 들어간 곳이다. 닳은 자리가 평소대로 닳아 있다. 다음 단을 대기까지 한 달쯤 더 갈 결이다.
옷감 묶음 일곱을 광주리에 거꾸로 담았다. 거친 갈색 모직이 가장 먼저 들어갔고, 붉은 가는 천 한 묶음이 가장 나중에 들어갔다. 광주리를 등에 졌다. 끈을 어깨의 한 자리에 걸었다. 닳은 자리에 끈이 들어맞았다.
좌판을 떠나 시장의 줄을 거꾸로 걸었다. 향료 좌판 줄의 진한 냄새가 평소대로 옅어지면서 생선 좌판 줄의 비린 냄새가 다시 올라왔다. 두 번째 모퉁이가 앞이었다.
내 왼발이 모퉁이를 꺾었다.
발은 한 박자 먼저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간 한 뼘이 그 한 뼘의 자리에 없었다. 발이 모퉁이를 도는 박자가 한 박자 안에 다 들어갔다. 한 박자 안에 다 들어간 동작은 그 동작의 시간이 한 박자다. 한 박자의 동작이 한 박자에 끝나는 것은 시장의 다른 모퉁이의 평소의 박자다. 두 번째 모퉁이의 박자가 다른 모퉁이의 박자가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를 나는 분간하지 않았다.
분간하지 않은 채로 모퉁이를 다 돌았다. 어깨가 따라갔고 광주리의 끈이 어깨의 한쪽으로 옮겨졌다. 닳은 자리에 끈이 들어맞았다. 들어맞은 자리는 십이 년 동안 닳은 자리다. 그 자리에는 다음 한 자리가 따로 없다.
첫 모퉁이를 한 번 더 꺾었다. 시장 입구를 빠져나왔다. 우물길의 햇살은 이 시각에는 거의 다 들어와 있지 않다. 두레박 줄에 부딪혀 흩어지는 자리는 비어 있다. 비어 있는 자리에 흙 냄새가 평소대로 옅게 섞여 있다.
골목을 한 번 꺾었다. 마당으로 들어갔다. 광주리를 마당의 한쪽 자리에 내려놓았다. 옷감 묶음 일곱을 거꾸로 다시 거꾸로 꺼내 다음 날 아침의 자리로 옮겼다. 옮긴 자리가 평소대로의 자리였다.
마당의 한쪽 돌에 잠시 앉았다.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손바닥의 한 자리에서 매듭을 묶을 때의 결이 평소대로 한 자리에 있었다. 그 자리에 다른 결이 따로 없었다.
해가 마당의 서쪽 담 너머로 다 넘어갔다.
저녁이 되면 나는 동전 한 닢을 손바닥 위에 올려 한 번 더 뒤집는다.
여리고 세관의 안쪽 방이다. 방이라기보다 칸막이가 둘 있는 좁은 자리. 가운데에 낮은 책상이 하나 있고, 책상 위에 장부가 펼쳐져 있고, 장부의 오른쪽에 동전을 담는 청동 함이 하나 있다. 함의 안쪽은 셋으로 나뉘어 있다. 데나리온, 반 데나리온, 청동 작은 닢. 자리가 정해져 있다. 자리가 정해져 있으면 손이 어느 자리로 가는지 미리 안다. 손이 매번 같은 자리를 같은 박자로 짚는다.
저녁에 그날의 셈을 마치고 함의 뚜껑을 닫기 직전, 나는 동전 한 닢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린다. 그날 들어온 동전 중에서 마지막에 받은 한 닢이다. 손바닥 위에 잠시 올렸다가 한 번 뒤집는다. 앞면이 뒷면이 되고 뒷면이 앞면이 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동전의 무게가 손바닥 한가운데에 잠시 머문다. 머문 무게가 평소대로면 그날의 셈은 평소대로 끝난다. 머문 무게가 평소보다 가볍거나 무거우면 한 번 더 뒤집는다. 두 번째 뒤집을 때 다시 무게가 잡히지 않으면 그 동전은 함의 한쪽 구석에 따로 둔다. 다음 날 윗자리의 사람에게 보여 줄 동전이 된다.
이 동작을 나는 십이 년쯤 한다. 정확한 햇수는 모른다. 처음 세관에 들어온 해부터 헤아리면 그쯤이다. 헤아려 본 적은 없다. 헤아려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오늘 저녁에도 동전 한 닢을 손바닥 위에 올려 한 번 뒤집었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함의 한쪽 구석에 따로 둘 동전은 그날 없었다. 평소대로의 저녁이었다.
세관의 일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갈릴리에서 내려오는 길과, 페레아에서 요단강을 건너오는 길과, 남쪽 사해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한자리에서 만난다. 만나는 자리에 세관이 있다. 세관은 그 길들을 지나는 모든 짐에 세를 매긴다. 향유, 발삼, 무화과, 대추야자, 가축, 옷감, 가죽, 곡물 — 짐의 종류와 수량과 무게에 따라 세가 다르다. 세는 정해져 있다. 정해져 있는 세를 매기는 일이 우리의 일이다.
세관의 안쪽에는 윗자리의 사람이 있고, 그 밑에 셈을 보는 우리 셋이 있고, 바깥에는 짐을 검사하는 사람 둘이 있다. 안쪽과 바깥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다. 칸막이 너머로 짐의 종류와 수량이 적힌 표가 넘어오고, 우리는 그 표를 받아 장부에 옮기고 세를 계산한다. 계산한 세는 다시 칸막이 너머로 넘어가 짐 주인에게 전달된다. 주인이 세를 내면 동전이 칸막이 안쪽으로 들어와 함의 셋으로 나뉜 자리에 들어간다.
이 동선을 나는 십이 년쯤 한다. 동선이라는 말은 발의 동선이 아니라 손의 동선이다. 표가 들어오는 자리에서 장부의 한 줄로, 장부의 한 줄에서 셈의 결과로, 셈의 결과에서 영수증으로, 영수증에서 칸막이 바깥으로. 손의 박자가 한 박자도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이 셈꾼의 일이다. 한 박자가 어긋나면 다음 짐 주인의 박자가 어긋나고, 그 어긋남이 그날의 세관 전체의 박자를 어긋나게 한다.
윗자리의 사람은 그 모든 박자의 위에 앉아 있다. 그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리에서 우리 일을 한다. 그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우리 일의 전제다. 그 전제가 흔들리면 셈도 흔들린다. 그러나 그 전제가 흔들린 적은 없었다. 십이 년 동안 한 번도.
나는 셋 중 가장 어린 쪽이다. 마흔 가까운 둘은 십오 년 이상 이 자리에 있었고, 나는 십이 년쯤이다. 다른 둘의 이름은 적지 않는다. 적으면 둘이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올라오는데, 그 자리는 둘의 자리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 우리 셋은 셈을 마치고 동전 한 닢을 손바닥 위에 올려 한 번 뒤집는 동작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셋 다 한다. 셈꾼의 손이 자기 안에서 정해 가는 동작이다.
윗자리의 사람의 이름은 — 이름이 있다. 이름이 있지만 우리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윗자리의 사람이고, 그 칭호 외의 호명은 우리 일에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세관의 셈꾼들이 그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지는 우리가 알 일이 아니다.
그날 아침의 일은 평소대로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빵 한 조각을 먹고 세관으로 걸어왔다. 세관까지는 골목 셋을 꺾는다. 첫 골목에서 빵 굽는 냄새가 평소대로 올라왔고, 두 번째 골목에서 누군가의 집 앞에 항아리가 평소대로 엎어져 있었고, 세 번째 골목에서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평소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골목의 박자가 평소대로의 박자였다.
세관에 도착해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장부를 펴고, 함의 뚜껑을 열고, 인장을 잉크에 한 번 적셨다. 인장을 적시는 일은 매일 아침의 첫 동작이다. 잉크의 농도가 그날의 도장의 진하기를 정한다. 너무 묽으면 영수증의 표시가 흐려지고 너무 진하면 다음 영수증으로 잉크가 번진다. 한 번 적시고 종이 끝에 한 번 시험 도장을 찍어 본다. 그날 아침 시험 도장의 진하기가 평소대로였다.
다른 두 셈꾼이 거의 비슷한 시각에 들어왔다. 우리는 짧게 인사를 했다. 짧게 인사하는 사이에 첫 표가 칸막이 너머로 넘어왔다. 발삼 두 통, 페레아에서 올라오는 짐. 세는 정해져 있다. 두 통이면 데나리온 둘. 나는 장부에 한 줄을 적고, 영수증에 도장을 찍고, 칸막이 너머로 넘겼다. 그 사이에 두 번째 표가 넘어왔다. 그 사이에 세 번째 표가 넘어왔다. 박자가 어긋나지 않았다.
윗자리의 사람은 그 시각에 자기 자리에 있었다. 자기 자리라는 것은, 우리 안쪽 방의 더 안쪽에 있는 작은 방이다. 그가 그 방에서 자기 일을 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방에서 우리 일을 한다. 그의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들려도 우리는 분간하지 않는다. 분간하는 것이 셈꾼의 일이 아니다.
그날 아침의 어느 시각에 그가 우리 방을 한 번 지나갔다. 그것이 평소와 달랐는지 같았는지를 나는 그 자리에서 분간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 옆을 지나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에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보지 못했다. 안쪽 방에서는 칸막이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나간 직후에 네 번째 표가 넘어왔다. 곡물 다섯 자루, 갈릴리에서 내려오는 짐. 자루당 반 데나리온, 다섯이면 데나리온 둘에 반. 나는 장부에 한 줄을 적었다. 적는 동안 손이 평소대로의 박자로 움직였다.
정오 무렵에 바깥에서 사람이 많아진다는 기척이 있었다.
기척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안쪽 방에서는 바깥의 사람 수를 직접 보지 못한다. 다만 표가 넘어오는 박자가 한 박자 느려지면 바깥에 사람이 많이 모여 검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날 정오 무렵 표의 박자가 한 박자 느려졌다. 둘째 셈꾼이 자기 영수증을 마치고 다음 표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내 장부의 빈 줄에 손가락 끝을 한 번 댔다 떼었다. 빈 줄을 그렇게 한 번 만지는 것은 다음 표가 오기까지의 박자를 손에 알려 주는 일이다.
그 시각에 칸막이 바깥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어왔다. 평소에 들리는 짐 주인들의 단조로운 소리가 아니라, 군중의 소리였다. 군중의 소리는 단어가 아니라 무게로 들어온다. 어떤 집단의 발걸음이 한 자리에 모여 멈추면 그 무게가 칸막이의 나무 결까지 옮겨 온다. 그날 정오의 무게는 평소보다 무거웠다.
둘째 셈꾼이 입을 열었다. “오늘 무슨 — ”
말을 마치지 않았다. 그도 마치지 않은 채로 다음 표를 기다렸다. 우리 자리는 묻는 자리가 아니다. 표가 오면 받아 적고 영수증을 내준다. 표가 늦어지면 빈 줄에 손가락을 한 번 댔다 뗀다. 그것이 우리 일이다.
그 사이에 다섯 번째 표가 넘어왔다. 향유 한 작은 통, 예리코 안쪽에서 나가는 짐. 한 통이면 청동 작은 닢 셋. 나는 장부에 한 줄을 적고, 영수증에 도장을 찍었다. 도장의 진하기가 평소대로였다.
영수증을 칸막이 너머로 넘기는 동안 바깥의 군중의 무게가 한 번 더 무거워졌다. 짐 주인이 영수증을 받는 손이 평소보다 한 박자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짐 주인의 시선이 영수증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 다른 곳이 어디인지 나는 칸막이 안쪽에서 보지 못했다.
여섯 번째 표가 와야 할 시각에 표가 오지 않았다.
표가 오지 않는 동안 나는 빈 줄에 손가락 끝을 한 번 더 댔다 떼었다. 한 번 더 댔다 떼었다. 세 번째에 이르러 손가락의 박자가 빈 줄의 박자가 되었다. 빈 줄의 박자는 셈의 박자가 아니다. 셈의 박자가 아닌 박자가 길어지면 손가락이 자기 자리를 잊는다.
표가 오지 않은 채로 한 박자가 더 갔다.
표 대신 들어온 것은 한 마디였다.
한 마디라고 적기에는 정확하지 않다. 칸막이 너머에서 군중의 무게가 한 번 더 옮겨 가는 소리가 났고, 짐 검사를 보던 사람 중 하나가 칸막이 안쪽으로 고개를 한 번 들이밀었다 뺐고, 그 들이밀었다 빼는 사이에 한 마디가 안쪽 방으로 흘러들었다. 흘러들었다는 것은, 그 한 마디가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를 안쪽 방의 우리 셋이 그 자리에서 분간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그 한 마디가 나무 결을 통해 안쪽 방으로 들어오는 동안 나는 마침 함에서 동전 한 닢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리고 있었다. 그 시각에 셈을 위한 동작이 아니었다. 그 시각에 함을 열어 동전을 꺼낼 일이 없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손이 그렇게 했다. 빈 줄의 박자가 길어진 동안 손이 자기 자리를 잊어 함 쪽으로 갔던 것이다.
손바닥 위의 동전이 데나리온 한 닢이었다. 그날 아침에 받은 동전 중 하나였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그러나 나는 한 번 뒤집었다. 뒤집은 뒤의 무게도 평소대로였다. 그러나 한 번 더 뒤집었다. 두 번째 뒤집은 뒤의 무게도 평소대로였다.
그 한 마디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내야 할 자리가 아니었다. 가려내려면 멈춰야 했고, 멈추는 것은 셈꾼의 일이 아니다. 다만 그 한 마디 안의 한 단어 — “사 배” — 손바닥 위의 동전의 무게로 옮겨 들어오는 짧은 시간이 있었다. 사 배라는 단어는 셈의 단어다. 셈의 단어가 셈의 자리가 아닌 자리에서 들리면 셈꾼의 손은 그 단어의 무게를 자기 손바닥 위에서 한 번 가늠한다. 데나리온 한 닢에 사 배면 데나리온 넷. 절반이라면 반. 합치면 데나리온 사 점 오. 이 셈은 의식이 한 셈이 아니다. 손이 한 셈이다.
손이 그 셈을 마친 직후에 두 번째 셈꾼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들이켜고 멈췄다. 멈춘 자리에서 그가 자기 장부의 빈 줄에 손가락 끝을 한 번 댔다 떼었다. 한 번 더 댔다 떼었다. 세 번째에서 그가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세 번째 셈꾼은 동작이 없었다. 그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 자리에 있었다. 그것이 그의 평소의 자리였다.
나는 손바닥 위의 동전을 함의 한쪽 구석에 따로 두지 않았다. 따로 둘 동전이 아니었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평소대로의 동전을 함의 셋으로 나뉜 자리 중 데나리온 자리에 다시 넣었다. 함의 뚜껑을 닫지 않았다. 닫지 않은 이유는 다음 표가 곧 들어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음 표는 그날 오후의 어느 시각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오지 않은 박자가 한 박자 두 박자 길어지는 동안 우리 셋은 자기 자리에서 자기 자리에 있었다.
자기 자리에 있다는 것은, 빈 줄에 손가락을 댔다 떼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둘째 셈꾼은 세 번째에서 떼지 않은 손가락을 한참 만에 떼었고, 다시 한 번 댔다 떼었다. 셋째 셈꾼은 자기 자리에서 한 번도 동작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함의 뚜껑이 열린 채로 두고 동전 한 닢을 다시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 동전의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그 사이에 칸막이 바깥에서 군중의 무게가 다른 자리로 옮겨 갔다. 옮겨 갔다는 것은, 군중이 세관 앞을 떠나 다른 자리로 갔다는 뜻이다. 어디로 갔는지 나는 안쪽 방에서 보지 못했다. 다만 그 무게가 옮겨 가는 동안 칸막이 너머의 짐 검사를 보던 사람 둘이 짧게 무슨 말을 주고받았다. 단어 둘이 안쪽 방으로 흘러들었다. “집으로” 그리고 “윗자리의” 두 단어였다. 두 단어 사이의 다른 단어들은 그 시각의 칸막이의 두께에 막혀 안쪽 방으로 옮겨 오지 않았다.
“집으로” 그리고 “윗자리의” — 이 두 단어를 합치면 한 가지 사실이 된다. 윗자리의 사람이 자기 집으로 갔다는 사실. 자기 집은 세관에서 골목 다섯을 꺾어 가는 자리에 있다. 그 집에 그가 가는 것은 평소대로의 일이다. 다만 평소에는 저녁의 일이고, 그날은 정오 직후의 일이었다. 그 차이를 나는 그 자리에서 분간하지 않았다.
분간하지 않은 채로 동전을 손바닥 위에서 한 번 더 뒤집었다.
오후의 어느 시각에 짐 검사를 보던 사람 중 하나가 칸막이 안쪽으로 들어와서 우리 셋에게 짧게 말했다. “오늘은 그만.” 그 말의 끝에 다른 단어들이 더 있었지만 그 단어들은 그가 말하지 않았다. 그가 말하지 않은 단어들은 그 자리에 그 자리대로 두었다.
우리 셋은 자기 장부를 닫았다. 인장을 잉크에서 떨어뜨렸다. 함의 뚜껑을 — 나는 그제야 함의 뚜껑을 닫았다. 닫는 동안 손바닥 위의 동전 한 닢이 마지막으로 한 번 무게를 손바닥 한가운데에 올려놓았다 떼어 갔다. 평소대로의 무게였다. 그 동전을 함의 데나리온 자리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것이 그날 오후의 마지막 동작이었다.
세관을 나서면서 둘째 셈꾼이 골목의 갈래에서 나에게 짧게 말했다.
“가 볼 텐가.”
가 볼 곳이라고 적기에는 정확하지 않다. 그가 어디로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어디로 가는지를 나는 알았다. 윗자리의 사람의 집이었다. 그가 그 집으로 가는 이유를 그는 적지 않았고, 적지 않은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셋째 셈꾼은 자기 골목 쪽으로 이미 꺾어 가고 있었다. 그가 가는 길은 우리와 다른 길이었다. 그것이 그의 평소의 길이었다.
나는 둘째 셈꾼을 따라가지 않았다. 따라가지 않은 이유는 적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 — 그날 저녁에 윗자리의 사람의 집 앞에 사람이 모여 있을 것이고,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 외지의 사내가 있을 것이고, 그 외지의 사내가 어떤 한 마디를 더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자리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짐작은 셈이 아니다. 셈이 아닌 것은 셈꾼의 일이 아니다.
나는 둘째 셈꾼이 골목의 다른 쪽으로 꺾어 가는 뒷모습을 보고 나서, 내 길로 꺾었다.
내 길은 골목 셋을 거꾸로 꺾는 길이다. 세 번째 골목의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평소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두 번째 골목의 항아리가 평소대로 엎어져 있었고, 첫 번째 골목의 빵 굽는 냄새가 — 그 시각에는 빵 굽는 냄새가 없다. 저녁의 첫 골목은 빵 굽는 냄새 대신 저녁밥 짓는 냄새가 옅게 올라온다. 그 냄새의 박자가 저녁의 박자다.
내 집의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의 한쪽에 빈 항아리 둘이 있다. 한 항아리에는 물이 절반쯤 들어 있고, 다른 항아리는 비어 있다. 마당을 가로질러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안쪽 방에는 낮은 책상 하나와 등잔 하나가 있다. 책상 위에 오늘 받은 동전 중 한 닢을 — 세관에서 가지고 나오면 안 되는 동전이지만,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다. 내 집 책상 위의 동전은 내 것이다. 내 동전 중에서 한 닢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오늘 저녁의 동전이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한 번 뒤집었다. 평소대로였다. 한 번 더 뒤집었다. 평소대로였다.
평소대로의 동전을 책상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 한 마디를 한 번 더 들었다.
한 번 더 들었다는 것은, 칸막이 너머에서 흘러들었던 그 한 마디가 내 안쪽의 어느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발음되었다는 뜻이다. 누가 발음했는지는 모른다. 내 입은 아니었다. 내 귀의 안쪽 어딘가에서 그 한 마디가 다시 흘렀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이 한 마디 안의 한 단어 — “절반” — 의 무게가 손바닥 한가운데에 잠시 머물렀다. 데나리온 한 닢의 무게의 절반이 손바닥 한가운데에 머무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데나리온 한 닢은 한 닢이고, 그것을 절반으로 나누려면 동전을 둘로 쪼개야 한다. 동전을 둘로 쪼개는 일은 셈꾼의 일이 아니다. 동전을 둘로 쪼개려는 사람은 — 나라면 하지 않을 일이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짧은 한 줄이 그 자리에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가라앉는 동안 내 손은 책상 위의 동전을 다시 한 번 손바닥 위에 올렸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한 번 뒤집었다.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이 한 마디 안의 한 단어 — “사 배” — 의 무게가 손바닥 위에 다시 한 번 올라왔다. 데나리온 한 닢에 사 배면 데나리온 넷. 우리 세관의 한 해 셈에 사 배를 곱하면 — 곱하지 않는다. 곱하면 셈의 자리가 아닌 자리로 셈이 옮겨 간다. 셈의 자리가 아닌 자리로 옮겨 간 셈은 셈이 아니다. 셈이 아닌 것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없다.
다만 한 가지가 손바닥 위에 잠시 올라왔다. 윗자리의 사람이 그 자기 셈을 자기 자리에서 자기 입으로 한 마디로 발음한다는 사실. 한 마디로 발음하는 동안 그 자리의 셈의 전제가 — 윗자리의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전제, 그 전제가 우리의 손의 박자를 만든다는 전제 — 한 번 흔들렸다는 사실. 흔들렸다는 사실이 손바닥 위의 동전의 무게에 한 호흡 작은 어긋남으로 옮겨 들어왔다.
그 어긋남이 무엇인지를 나는 그 자리에서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내려면 멈춰야 했다. 멈추는 것은 셈꾼의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동전을 한 번 더 뒤집었다. 두 번째 뒤집은 뒤의 무게도 평소대로였다. 평소대로의 동전을 책상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평소대로의 동전이 평소대로의 자리에 평소대로 놓였다.
다음 날 새벽에도 빵 한 조각을 먹고 세관으로 걸어왔다.
골목 셋을 꺾었다. 첫 골목의 빵 굽는 냄새가 평소대로 올라왔고, 두 번째 골목의 항아리가 평소대로 엎어져 있었고, 세 번째 골목의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평소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골목의 박자가 평소대로의 박자였다.
세관에 도착해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둘째 셈꾼이 이미 자기 자리에 있었다. 셋째 셈꾼은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 우리 셋은 짧게 인사를 했다. 둘째 셈꾼의 얼굴을 나는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 보면 분간해야 할 무엇이 거기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분간하는 것은 셈꾼의 일이 아니다.
윗자리의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라고 적기에는 정확하지 않다. 자리는 자리고, 그가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그가 앉아 있지 않다는 것이 어제까지의 십이 년의 어떤 아침과 다른 것인지 같은 것인지를 나는 그 자리에서 분간하지 않았다. 분간하지 않은 채로 장부를 펴고, 함의 뚜껑을 열고, 인장을 잉크에 한 번 적셨다. 시험 도장의 진하기가 평소대로였다.
첫 표가 칸막이 너머로 넘어왔다. 발삼 한 통, 페레아에서 올라오는 짐. 한 통이면 데나리온 한 닢. 나는 장부에 한 줄을 적고, 영수증에 도장을 찍고, 칸막이 너머로 넘겼다. 짐 주인의 손이 영수증을 받는 박자가 평소대로였다.
두 번째 표가 넘어왔다. 곡물 세 자루, 갈릴리에서 내려오는 짐. 자루당 반 데나리온, 셋이면 데나리온 한 닢에 반. 장부에 적었다. 영수증에 도장. 칸막이 너머로.
박자가 평소대로였다.
세 번째 표가 들어오기 직전에 둘째 셈꾼이 짧게 입을 열었다.
“어제 — ”
말을 마치지 않았다. 마치지 않은 자리에서 그가 자기 장부의 빈 줄에 손가락 끝을 한 번 댔다 떼었다. 한 번 더 댔다 떼었다. 두 번째에서 손가락이 떨어졌고, 세 번째 표가 그 시각에 칸막이 너머로 넘어왔다. 옷감 두 묶음, 사해 쪽에서 올라오는 짐. 묶음당 청동 작은 닢 다섯, 둘이면 청동 작은 닢 열. 환산하면 반 데나리온. 그가 장부에 한 줄을 적었다. 영수증에 도장. 칸막이 너머로.
박자가 평소대로였다.
그가 마치지 않은 말이 그 자리에 그 자리대로 남았다.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내려면 멈춰야 했다.
윗자리의 사람의 자리는 그날 오전 내내 비어 있었다.
오후의 어느 시각에 윗자리의 사람이 안쪽 방을 한 번 지나갔다.
지나갔다는 것은, 그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리 방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는 뜻이다. 그가 우리 방을 지나가는 동안 그의 발소리는 평소와 같았는지 달랐는지 나는 분간하지 않았다. 분간하지 않은 채로 나는 그 시각에 받은 동전 한 닢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있었다. 그 동전의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그가 우리 방의 책상 옆을 지나갈 때 그의 시선이 — 그의 시선을 나는 보지 않았다. 보지 않은 이유는 보면 분간해야 할 무엇이 거기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분간하는 것은 셈꾼의 일이 아니다. 다만 그가 책상 옆을 지나가는 짧은 시간 동안 책상 위에 펼쳐진 장부의 한 줄에 — 내가 그 시각에 적고 있던 한 줄에 — 그의 시선이 한 박자 머물렀는지 머물지 않았는지를 나는 그 자리에서 분간하지 않았다.
그가 바깥으로 나갔다.
나간 자리에서 나는 손바닥 위의 동전을 한 번 뒤집었다. 평소대로의 무게였다. 함의 데나리온 자리에 넣었다. 다음 표가 곧 들어왔다. 향유 세 작은 통. 한 통이면 청동 작은 닢 셋, 셋이면 청동 작은 닢 아홉. 환산하면 거의 반 데나리온에 청동 작은 닢 둘. 장부에 한 줄. 영수증에 도장. 칸막이 너머로.
박자가 평소대로였다.
그날 오후 내내 윗자리의 사람은 안쪽 방의 자기 자리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나는 짐작할 수는 있었다. 짐작이 어디까지 가닿는지를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짐작은 셈이 아니다. 짐작이 길어지면 손가락이 자기 자리를 잊는다. 손가락이 자기 자리를 잊으면 다음 동전의 무게가 손바닥 한가운데에 머물지 못한다.
손바닥 한가운데에 머물지 못하는 무게는 셈꾼의 무게가 아니다.
며칠 뒤 둘째 셈꾼이 골목의 갈래에서 나에게 한 마디를 한 번 더 했다.
“갔다더라.”
갔다는 것은, 윗자리의 사람이 어디로 갔다는 뜻이다. 어디로 갔는지를 그가 적지 않았고, 적지 않은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다만 한 가지 — 며칠 사이에 우리 셋의 자리에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 윗자리의 사람의 자기 방의 문이 며칠째 닫혀 있었고, 닫혀 있는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짐 정리를 하는 소리가 한두 번 났다. 짐 정리의 박자가 떠나는 사람의 박자였다. 그 박자를 우리 셋은 분간했다. 분간했다는 것은, 그 박자가 우리 일에 직접 닿는 박자였다는 뜻이다. 윗자리의 사람의 자리가 그 자리대로 비면 그 자리 위에 새 윗자리의 사람이 앉을 것이다. 그것이 세관의 일이다.
“누가 자리를 받게 되나.”
내가 그렇게 물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내가 한 말은 “그래”였다. 둘째 셈꾼은 자기 말을 한참 더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골목 쪽으로 꺾어 갔다. 그것이 그의 평소의 길이었다.
나는 내 길로 꺾었다. 골목 셋을 거꾸로 꺾었다.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평소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항아리가 평소대로 엎어져 있었다. 저녁의 첫 골목에서 저녁밥 짓는 냄새가 옅게 올라왔다. 박자가 평소대로의 박자였다.
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의 동전 한 닢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한 번 뒤집었다. 평소대로였다. 한 번 더 뒤집었다. 평소대로였다.
그 한 마디가 다시 흘러들지 않았다. 흘러들지 않은 한 마디는 흘러들지 않은 채로 두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이 셈꾼의 한 가지 방식이다.
한 달이 지나갔다.
한 달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세관에서 날짜를 헤아리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안식일이 네 번 지나갔다. 안식일이 네 번이면 한 달이다. 헤아려 본 적은 없다. 헤아려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새 윗자리의 사람이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가 누구인지는 적지 않는다. 적으면 그가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올라오는데, 그 자리는 그의 자리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 새 윗자리의 사람이 앉은 뒤로 우리 셋의 손의 박자는 평소대로의 박자로 돌아갔다. 표가 들어오는 박자, 장부에 한 줄을 적는 박자, 영수증에 도장을 찍는 박자, 칸막이 너머로 넘기는 박자. 박자가 어긋나지 않았다.
그 한 달의 어느 오후에 칸막이 너머의 짐 검사를 보던 사람 하나가 안쪽 방으로 짧게 한 마디를 흘렸다. “그 사람들이 — ” 그 뒤의 단어가 우리 방으로 옮겨 오지 않았다. 옮겨 오지 않은 단어는 옮겨 오지 않은 채로 두었다. “그 사람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가려내지 않았다.
또 다른 어느 오후에는 그 한 마디 — 칸막이 너머에서 흘러들었던 그 한 마디 — 의 한 단어가 한 번 더 흘러들었다. “사 배”였다. 그 단어가 흘러든 시각에 나는 마침 동전 한 닢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있었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한 번 뒤집었다. 평소대로였다. 한 번 더 뒤집었다. 평소대로였다.
사 배라는 단어 안의 셈은 셈꾼의 셈이 아니다. 셈꾼의 셈은 한 닢에 한 닢, 두 닢에 두 닢. 곱하지 않는다. 곱하면 셈의 자리가 아닌 자리로 셈이 옮겨 간다. 셈의 자리가 아닌 자리에 셈꾼은 가지 않는다. 가지 않는 것이 셈꾼의 일이다.
나라면 하지 않을 일이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하지 않을 것이다.
이 한 줄이 그 한 달의 어느 자리에서 한 번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가라앉은 자리에 다음 동전이 손바닥 위에 올라왔다. 평소대로의 무게였다.
오늘 저녁이다.
저녁이 되면 그날의 셈을 마치고 함의 뚜껑을 닫기 직전, 동전 한 닢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린다. 그날 들어온 동전 중에서 마지막에 받은 한 닢이다. 손바닥 위에 잠시 올렸다가 한 번 뒤집는다. 앞면이 뒷면이 되고 뒷면이 앞면이 된다.
오늘 저녁의 동전은 데나리온 한 닢이다. 갈릴리에서 내려온 곡물 짐 주인이 마지막으로 낸 동전이다. 무게가 평소대로다. 한 번 뒤집었다. 평소대로다. 한 번 더 뒤집었다. 평소대로다.
함의 한쪽 구석에 따로 둘 동전은 오늘 저녁 없다. 평소대로의 동전을 함의 데나리온 자리에 다시 넣는다. 함의 뚜껑을 닫는다. 뚜껑이 평소대로의 박자로 닫힌다.
장부의 마지막 줄에 그날의 합계를 적는다. 데나리온 합계, 반 데나리온 합계, 청동 작은 닢 합계. 세 줄을 차례로 적는다. 적는 동안 인장을 잉크에 한 번 더 적신다. 합계 줄의 끝에 도장을 찍는다. 도장의 진하기가 평소대로다. 장부를 덮는다. 장부 표지의 매듭을 평소대로 두 번 짓는다.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세관을 나선다. 골목 셋을 거꾸로 꺾는다. 세 번째 골목의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평소대로 그 자리에 있다. 두 번째 골목의 항아리가 평소대로 엎어져 있다. 첫 번째 골목의 저녁밥 짓는 냄새가 옅게 올라온다. 박자가 평소대로의 박자다.
집 마당으로 들어간다. 안쪽 방으로 들어간다. 책상 위에 등잔을 켠다. 등잔의 불빛이 책상 위의 동전 한 닢에 닿는다. 내 동전이다. 손바닥 위에 올린다. 무게가 평소대로다. 한 번 뒤집는다. 평소대로다. 한 번 더 뒤집는다. 평소대로다.
내일 새벽에도 빵 한 조각을 먹고 세관으로 걸어갈 것이다. 골목 셋을 꺾을 것이다. 안쪽 방으로 들어갈 것이다. 장부를 펼 것이다. 함의 뚜껑을 열 것이다. 인장을 잉크에 한 번 적실 것이다. 시험 도장을 종이 끝에 한 번 찍을 것이다. 첫 표가 칸막이 너머로 넘어올 것이다. 발삼인지 곡물인지 향유인지 옷감인지를 받아 적을 것이다. 세는 정해져 있다. 정해진 세를 매기는 일이 우리의 일이다.
손바닥 위의 동전을 책상 위에 다시 내려놓는다.
능선에 서면 풀의 결을 한 번 손바닥에 비빈다.
가르멜 북쪽에서 헤르몬 남쪽 자락까지 능선은 길게 이어지고, 나는 그 능선의 한 자락에서 일을 한다. 약초꾼이다. 정확히 말하면 약초를 캐어 모으고, 묶고, 사흘에 한 번 산 아래 마을의 약장수에게 가져가는 사람이다. 약초의 종류는 여덟 가지쯤 된다. 우슬초, 박하, 들박하, 쓴쑥, 작은 쑥, 시리아 박하, 산자고, 그리고 이름이 없는 한 가지. 이름이 없는 한 가지는 마을 약장수가 “그 한 가지”라고만 부른다. 그 한 가지는 능선의 북쪽 비탈, 햇볕이 한나절 들고 한나절은 그늘이 되는 자리에만 자란다. 그 자리는 발로 가면 정오 직전까지 두 시간이 걸리고, 돌아오는 길이 다시 두 시간이다.
풀의 결을 손바닥에 한 번 비비는 동작은 약초 다발을 묶기 직전에 한다. 풀의 결이 한쪽으로 누워야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결이 서로 엇갈리면 매듭이 헐거워지고, 헐거워진 매듭은 마을로 내려가는 두 시간 동안 풀린다. 풀린 다발은 약장수가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묶기 직전에 결을 한쪽으로 한 번 비빈다. 손바닥의 안쪽이 풀의 결과 같은 방향으로 한 번 지나가면 결이 잡힌다. 그 동작은 짧고 정확하다. 그 동작을 어긋나게 하면 그날의 일이 어긋난다.
오늘도 능선에 섰다. 풀의 결을 한 번 비볐다. 매듭이 잡혔다.
사흘에 한 번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의 이름은 적지 않는다. 적으면 마을이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올라오는데, 그 자리는 마을의 자리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 그 마을의 약장수는 사흘에 한 번 내가 가져가는 다발을 받고, 그날의 시세에 따라 동전 몇 닢을 준다. 시세는 계절마다 다르다. 겨울에는 우슬초 한 다발에 청동 작은 닢 둘, 봄에는 셋, 여름에는 둘에 반, 가을에는 다시 셋. 이 시세를 나는 머리에 적어 둔 적이 없다. 손바닥의 무게로 안다. 다발의 무게가 손바닥 한가운데에 잠시 머물다 떨어질 때, 그 머문 시간이 시세를 알려 준다. 시세를 어긋나게 받은 적은 십 년쯤 한 번 있었다. 그때는 약장수가 새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고, 새 사람은 시세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다음 사흘에 새 사람은 다시 옛 시세로 돌아갔다.
내려가는 길은 능선에서 비탈을 따라 내려와 시내를 한 번 건넌다. 시내는 봄에는 무릎 아래까지 차고, 여름에는 발목까지, 가을에는 발등까지, 겨울에는 거의 마른다. 시내를 건너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정해진 자리의 돌 셋 위에 발을 차례로 짚으면 발이 젖지 않는다. 다른 자리로 건너면 발이 젖는다. 발이 젖으면 약초 다발의 아래쪽이 시내의 차가움에 닿고, 닿은 부분은 다음 날까지 빛깔이 어두워진다. 어두워진 부분을 약장수는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해진 돌 셋을 짚는다.
시내를 건너고 나면 비탈이 한 번 더 내려간다. 비탈의 끝에 마을의 첫 집이 있고, 첫 집의 옆을 돌면 약장수의 집이 있다. 약장수의 집의 마당에는 항아리가 셋 있다. 한 항아리에는 마른 약초가, 한 항아리에는 덜 마른 약초가, 한 항아리에는 젖은 약초가 들어 있다. 내가 가져간 다발은 그날의 햇볕에 따라 셋 중 한 자리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자리를 약장수가 정한다. 정해진 자리에 다발을 놓고, 약장수가 동전 몇 닢을 손바닥 위에 올려 준다. 그 동전을 받아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에 넣는다. 가죽 주머니의 매듭을 두 번 짓는다. 그것이 사흘의 마지막 동작이다.
사흘의 박자를 나는 십팔 년쯤 한다. 정확한 햇수는 모른다. 처음 약초꾼의 일을 받은 해부터 헤아리면 그쯤이다. 헤아려 본 적은 없다. 헤아려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능선의 위쪽으로는 가지 않는다.
위쪽은 약초가 자라지 않는다. 위쪽의 흙은 얕고, 얕은 흙 아래는 돌이고, 돌 사이에 자라는 풀은 약초가 아니다. 약장수가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쪽에는 가지 않는다. 위쪽에 가는 것은 양치기들이다. 능선의 위쪽 능선의 또 위쪽 — 정상에 가까운 자리에 짧은 풀이 자라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양 떼가 풀을 뜯는다. 양치기들은 봄과 여름에 위쪽으로 양 떼를 올리고, 가을에는 다시 아래로 내린다. 그들의 일은 그렇다. 내 일은 능선의 중간이다.
위쪽의 양치기들과 나는 사이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능선의 어느 자리에서 마주치면 짧게 손을 한 번 든다. 그들이 한 번 들고 내가 한 번 든다. 그것이 인사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 서로의 마을을 알지 못한다. 다만 능선에서 마주칠 때 한 번 손을 든다.
어떤 양치기는 양 한 마리에 표식을 새긴다. 표식은 귀의 안쪽에 작은 자국으로 새기거나, 털을 한 줌 한쪽 색으로 물들인다. 표식은 그 양이 그 양치기의 양임을 표시한다. 다른 양치기의 양과 섞이면 표식으로 가려낸다. 가끔 능선에서 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비탈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본다. 그 양의 귀를 보면 누구의 양인지 안다. 안다고 해서 내가 그 양을 데려가는 것은 아니다. 데려가는 것은 양치기의 일이다. 나는 약초꾼이다.
능선의 위쪽으로 가지 않으므로 위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나는 거의 모른다. 멀리서 본다. 멀리서 보는 것은 가까이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 멀리서 보면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능선 위쪽에 누가 올라가는지를 능선 중간의 약초꾼은 그 사람의 어깨와 걸음의 박자로만 안다. 어깨가 넓으면 짐꾼이고, 어깨가 좁으면 글 쓰는 사람이고, 걸음이 빠르면 젊은 사람이고, 걸음이 느리면 나이 든 사람이다. 그 정도다. 그 이상은 멀리서 보는 사람의 일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한 가지의 자리는 능선의 북쪽 비탈에 있다.
그 자리에 가는 길은 약간 까다롭다. 능선의 가운데에서 북쪽으로 한 번 꺾고, 작은 바위 셋을 지나고, 늙은 떡갈나무 한 그루의 옆을 지나면, 햇볕이 한나절 들고 한나절은 그늘이 되는 비탈이 나온다. 그 비탈의 가운데쯤에 그 한 가지가 자란다. 잎의 모양은 갈라진 손가락 같고, 잎의 가장자리에 붉은 빛이 옅게 든다. 캘 때는 뿌리째 캐지 않는다. 잎만 골라 따고, 줄기의 위쪽 한 마디만 자른다. 뿌리째 캐면 다음 해에 그 자리에 다시 자라지 않는다. 잎과 줄기 한 마디만 자르면 다음 해에 다시 자란다. 그 방식을 약장수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약장수의 아버지가 그 일을 했고, 그 아버지가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 그 한 가지가 계속 자랐고, 내가 그 자리에서 캐기 시작한 뒤로 나도 그렇게 한다. 그것이 그 자리의 약속이다.
그 한 가지의 시세는 다른 약초보다 높다. 한 다발에 데나리온 한 닢에 가깝다. 다른 일곱 가지의 다발 다섯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사흘에 한 번 가는 길에 그 한 가지의 다발이 들어가 있으면 그날 받는 동전이 무겁다. 동전이 무거우면 가죽 주머니의 매듭이 두 번에서 세 번이 된다. 매듭의 횟수는 무게에 따라 정해진다. 정한 사람은 없다. 손이 자기 안에서 정해 가는 동작이다.
그 한 가지를 캐러 가는 날은 보통 새벽에 출발한다. 새벽에 능선을 오르고, 정오 직전에 그 비탈에 닿고, 정오 무렵 잎을 따고, 오후의 첫 햇볕에 잎의 표면이 마르기 직전에 다발을 묶어 내려온다. 잎이 너무 마르면 다발의 무게가 줄어들고, 너무 젖어 있으면 다발의 안쪽이 상한다. 그 사이의 짧은 시간이 다발을 묶기에 알맞은 시간이다.
그날도 그 한 가지를 캐러 갔다.
새벽에 일어나 빵 한 조각을 먹고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멨다.
가죽 가방의 안쪽에는 약초를 묶을 노끈 한 묶음과, 잎을 자르는 작은 칼 하나와, 물 한 가죽 부대가 들어 있다. 노끈은 어제 저녁에 미리 잘라 길이를 맞춰 두었다. 한 다발에 한 끈, 한 끈은 팔 한 뼘 반 길이. 팔 한 뼘 반은 내 손목에서 팔꿈치까지의 거리에 손가락 셋의 길이를 더한 정도다. 그 길이가 다발 하나를 두 번 두를 정도의 길이다. 두 번 두르면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집을 나서면 능선의 길이 시작된다. 길은 비탈을 한 번 올라 능선의 첫 자락에 닿고, 첫 자락에서 두 번째 자락으로, 두 번째에서 세 번째로 이어진다. 세 번째 자락의 끝에서 북쪽으로 꺾으면 그 한 가지의 비탈이 나온다. 새벽에 능선을 걷는 동안 발끝의 풀에 이슬이 묻는다. 이슬은 샌들의 가죽을 한 번 적시고, 적신 가죽이 잠깐 검어졌다가 햇볕에 다시 마른다. 발이 마르는 동안 풀의 결이 발등의 안쪽을 한 번 스친다. 그 스침의 박자가 새벽 능선의 박자다.
그날 새벽의 박자가 평소대로의 박자였다.
세 번째 자락의 끝에서 북쪽으로 꺾었다. 작은 바위 셋을 지났다. 늙은 떡갈나무 한 그루의 옆을 지났다. 떡갈나무의 줄기에는 작년에 누군가가 새긴 자국이 있다. 자국은 가로 세 줄, 세로 두 줄. 누가 새겼는지 모른다. 양치기가 새겼을 수도 있고, 다른 약초꾼이 새겼을 수도 있고, 마을의 아이가 새겼을 수도 있다. 새긴 사람을 가려내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 다만 그 자국이 거기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그 자국을 지나면 그 한 가지의 비탈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 자국이 표지다.
비탈에 닿았다. 햇볕이 한쪽에 들고 한쪽이 그늘이었다. 그 한 가지의 잎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갈라진 손가락 같은 잎의 가장자리에 붉은 빛이 옅게 들어 있었다. 평소대로의 빛깔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작은 칼을 꺼냈다. 잎부터 따기 시작했다.
잎을 따는 동작은 단조롭다.
왼손으로 잎의 줄기를 살짝 잡고, 오른손의 칼로 잎의 아래쪽을 한 번 자른다. 자른 잎은 왼손의 손가락 사이에 차례로 쌓인다. 다섯 잎이 쌓이면 한 묶음의 절반이 된다. 열 잎이 쌓이면 한 묶음이 된다. 열 잎을 모은 손가락 사이에서 잎을 빼내어 가방 옆의 천 위에 올려 둔다. 그리고 다시 다섯, 다시 열. 그 박자로 잎을 모은다.
그날 잎이 평소보다 조금 두터웠다. 두터운 잎은 무게가 더 나가지만 마르는 시간이 길다. 마르는 시간이 길면 다발을 묶는 시간이 늦어진다. 그 차이를 손이 알아챈다. 손이 알아채면 동작의 박자가 한 박자 길어진다. 한 박자 길어진 박자에 맞춰 칼의 움직임도 한 박자 길어진다. 그렇게 박자를 맞추면 잎이 잘리는 면이 깨끗해진다.
정오가 가까워지는 동안 능선의 위쪽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평소에는 정오 가까이 위쪽 능선에서 양 떼의 소리가 한 번씩 흘러내려 온다. 양들이 풀을 뜯다 한 마리가 다른 자리로 옮겨 가면 무리가 한 박자 따라 움직이고, 그 움직임의 소리가 비탈 아래로 옅게 흘러내려 온다. 그날은 그 소리가 늦었다. 양치기 한 명이 양 떼를 다른 비탈로 옮겼을 수도 있고, 그날 위쪽 능선에 양 떼가 올라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평소보다 늦게 올라왔을 수도 있다. 그 까닭을 가려내는 것은 약초꾼의 일이 아니다. 양치기의 일이다.
그 시각에 위쪽 능선 쪽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한 번 보았다. 보았다기보다 시야의 한쪽 끝에 잠시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사람은 넷이었다. 한 사람이 앞에 가고 셋이 따라가는 형태였다. 앞의 한 사람의 어깨는 좁지도 넓지도 않았다. 셋 중 둘은 어깨가 비슷했고, 한 사람은 조금 더 단단해 보였다. 걸음의 박자는 평소의 능선을 오르는 사람의 박자였다. 빠르지 않았고 느리지도 않았다. 그들이 위쪽으로 올라가는 동안 나는 잎을 다섯 더 잘랐다.
그들이 능선의 더 위쪽으로 사라지고 나서, 비탈에 다시 정오의 빛이 평평하게 깔렸다. 그 빛은 그 시각의 그 비탈에 마땅한 빛이었다. 빛이 마땅한 자리에 있을 때 그 빛은 보이지 않는다. 빛이 마땅한 자리에서 한 번 어긋날 때 비로소 빛이 보인다. 그 박자가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약초꾼은 알지 못한다. 약초꾼이 아는 박자는 잎의 박자다.
잎 다섯을 더 잘랐다. 다섯이 한 묶음의 절반이었다.
정오 무렵 위쪽 능선에서 그림자가 한 번 짧아졌다.
그림자가 짧아졌다는 것은, 발치의 풀의 그림자가 한 박자 동안 평소보다 짧아졌다는 뜻이다. 평소의 정오의 그림자는 풀의 길이의 절반쯤이다. 그 한 박자 동안 풀의 길이의 사분의 일에 가까웠다. 사분의 일에 가까운 그림자는 정오 무렵의 그림자가 아니다. 정오를 한 번 더 지난 시각의 그림자, 혹은 정오 직전을 한 번 더 거꾸로 간 시각의 그림자에 가깝다. 그러나 그날의 시각은 정오였다. 정오에 정오의 그림자가 아닌 그림자가 잠시 있었다.
그것을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내려면 멈춰야 했고, 멈추는 것은 약초꾼의 일이 아니다. 다만 손이 칼을 한 박자 멈추었다.
위쪽에서 흰빛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흰빛이었다. 구름이 아니었다. 안개도 아니었다. 햇빛의 반사가 아니었다. 그 비탈의 어느 풀잎에서도 그런 빛이 반사된 적이 없었다. 흰빛은 능선의 위쪽 어느 자리에서 시작해 비탈의 중간까지 한 박자 흘러내려 왔다가 그 자리에서 끊겼다. 끊긴 자리는 내가 잎을 따던 자리에서 스무 걸음쯤 위였다. 스무 걸음쯤 위에서 흰빛이 끊겼고, 끊긴 자리에서 더 아래로는 오지 않았다.
그 흰빛이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한 박자였을 수도 있고 한 호흡이었을 수도 있다. 흰빛이 끊긴 뒤에 비탈의 빛이 다시 정오의 빛이 되었다. 정오의 빛이 마땅한 자리에 다시 깔렸다.
그 시각에 위쪽 능선의 양 떼 — 보이지 않는 양 떼 — 가 한 박자 멈췄다. 멈췄다는 것은, 그 시각까지 옅게 흘러내려 오던 양들의 풀 뜯는 소리가 한 박자 사라졌다는 뜻이다. 한 박자 뒤에 그 소리가 다시 흘러내려 왔다. 평소의 박자였다.
칼이 다시 잎을 한 번 잘랐다. 다섯이 한 묶음의 절반이었다. 다섯을 더 잘라야 한 묶음이었다.
잎 다섯을 더 잘라 한 묶음을 채웠다.
채운 묶음을 가방 옆의 천 위에 올렸다. 그 위에 다음 묶음을 시작했다. 칼의 동작이 평소의 박자로 돌아갔다. 칼의 동작이 평소의 박자로 돌아간다는 것은, 손이 평소의 일을 평소대로 한다는 뜻이다. 약초꾼의 손이 평소의 일을 평소대로 하면 그날의 일이 어긋나지 않는다.
다음 묶음의 다섯을 잘랐다. 다섯이 한 묶음의 절반이었다. 한 박자 쉬고 다섯을 더 잘랐다. 한 묶음이 채워졌다. 두 묶음을 천 위에 나란히 두었다.
세 번째 묶음을 시작하기 전에 가죽 부대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맛이 평소대로였다. 떠난 자리에서 물을 떠 와서 새벽에 가죽 부대에 담은 물이었다. 물맛은 부대의 가죽 냄새가 옅게 섞인 물맛이다. 그 가죽 냄새가 어제도 오늘도 같은 농도였다.
다시 잎을 잘랐다. 다섯, 한 박자, 다섯. 한 묶음. 천 위에 셋이 나란히 놓였다.
그 사이에 위쪽 능선 쪽에서 어떤 소리가 한 번 흘러내려 왔다. 정확히는 소리가 흘러내려 왔다기보다, 공기가 한 번 무겁게 능선을 타고 내려왔다. 무거운 공기는 비탈의 풀잎 위를 한 번 지나갔다. 풀잎이 한 박자 눕고 한 박자 다시 일어섰다. 그 한 박자 동안 풀잎의 결이 한쪽으로 누워 있었다. 누운 결의 방향은 능선의 아래 방향이었다.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무엇이 한 번 지나갔다는 뜻이다.
그것이 바람이었는지 다른 무엇이었는지를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가려내는 것은 약초꾼의 일이 아니다. 다만 다음 묶음을 묶기 전에 풀의 결을 손바닥에 한 번 비볐다. 결이 한쪽으로 누웠다. 매듭이 잡혔다.
네 번째 묶음을 천 위에 두었다. 다섯 묶음, 여섯 묶음, 일곱 묶음. 일곱 묶음이 그날의 몫이었다.
일곱 묶음이 채워지면 묶는다.
묶기 전에 풀의 결을 손바닥에 한 번 비빈다. 그 동작은 다발마다 한 번씩 한다. 일곱 다발이면 일곱 번. 첫 다발의 결을 비비고, 노끈을 두 번 두르고, 매듭을 두 번 짓는다. 두 번째 다발의 결을 비비고, 노끈을 두 번 두르고, 매듭을 두 번 짓는다. 그 박자로 일곱 다발을 묶는다.
다섯 번째 다발을 묶고 있을 때 위쪽 능선 쪽에서 소리가 한 번 났다. 소리는 멀었다. 멀어서 단어가 단어로 들리지 않았다. 능선의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가 무엇을 말한 것 같았고, 그 말이 능선의 결을 따라 한 번 흘러내려 오다가 비탈의 어느 자리에서 흩어진 것 같았다. 흩어진 자리에서 그 소리는 천둥의 끝자락 같은 소리가 되어 비탈 아래로 옅게 깔렸다. 깔린 소리에는 단어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았다. 형태가 없는 소리는 소리가 아닌 것에 가깝다.
그 소리가 천둥이었는지를 나는 가려내지 않았다. 그날 하늘에 구름이 없었다. 구름이 없는 하늘에서 천둥이 나는 일은 드물다. 드물지만 없지는 않다. 가르멜 능선의 옛 사람들은 구름 없는 하늘에서 한 번씩 큰 소리가 나는 것을 알았다고 들었다. 들었지만 내가 본 적은 없었다. 본 적이 없는 것을 가려내는 것은 약초꾼의 일이 아니다. 다만 다섯 번째 다발의 매듭을 두 번째로 지을 때 노끈이 한 박자 헐거워지는 것을 손이 알아챘다. 알아챈 손이 매듭을 한 번 더 단단히 조였다. 매듭이 잡혔다.
여섯 번째 다발의 결을 비볐다. 매듭을 지었다. 일곱 번째 다발의 결을 비볐다. 매듭을 지었다.
일곱 다발을 가방의 안쪽 천에 차례로 넣었다. 큰 다발이 아래, 작은 다발이 위. 그 순서를 어긋나게 하면 다발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고, 쏠린 무게는 어깨의 한쪽을 더 빨리 피로하게 한다. 어깨의 한쪽이 더 빨리 피로해지면 마을까지 두 시간의 길이 길어진다. 그러므로 큰 것이 아래, 작은 것이 위.
가방의 끈을 어깨에 메었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평소대로의 무게가 어깨의 양쪽에 고르게 실렸다.
비탈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비탈에서 능선의 세 번째 자락으로 돌아오는 길은 처음의 길을 거꾸로 가는 길이다.
늙은 떡갈나무 한 그루의 옆을 지났다. 줄기의 자국 — 가로 세 줄, 세로 두 줄 — 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작은 바위 셋을 지났다. 세 번째 자락의 끝에 닿았다. 세 번째 자락에서 두 번째 자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었다. 능선에서 풀의 결을 한 번 손바닥에 비볐다. 이 동작은 약초를 묶는 동작이 아니다. 능선에 서면 풀의 결을 한 번 비비는 약초꾼의 동작이다. 비빌 풀이 없는 자리에서는 비비지 않는다. 비빌 풀이 있는 자리에서 한 번 비빈다.
위쪽 능선 쪽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위쪽 능선의 정상 부근은 평소의 모습이었다. 돌의 색이 평소의 색이었고, 풀의 결이 평소의 결이었고, 하늘이 평소의 하늘이었다. 정오를 지난 오후의 첫 시각의 능선이었다.
내려오는 길의 두 번째 자락에서 양치기 한 명을 마주쳤다. 그는 비탈의 위쪽에서 양 한 마리를 비탈의 아래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 양은 무리에서 떨어진 양이었다. 귀의 안쪽에 작은 자국이 있었다. 그가 한 번 손을 들었다. 내가 한 번 손을 들었다. 그가 다시 양을 따라 비탈을 내려갔다. 그의 걸음의 박자는 평소의 양치기의 박자였다. 평소의 박자가 평소대로 흘러갔다.
첫 번째 자락의 끝에서 시내가 시작되는 자리가 보였다. 시내의 정해진 돌 셋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그 돌 셋 위에 발을 차례로 짚었다. 발이 젖지 않았다.
시내를 건너고 비탈을 한 번 더 내려왔다. 마을의 첫 집이 보였다. 첫 집의 옆을 돌면 약장수의 집이다.
약장수의 집의 마당에 항아리 셋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마른 약초의 항아리, 덜 마른 약초의 항아리, 젖은 약초의 항아리. 약장수가 마당의 한쪽에 앉아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 짧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다발을 차례로 꺼냈다. 첫 다발의 결이 한쪽으로 누워 있었다. 매듭이 풀리지 않았다. 두 번째 다발의 결이 한쪽으로 누워 있었다. 매듭이 풀리지 않았다. 일곱 다발 모두 매듭이 풀리지 않았다.
약장수가 다발을 한 번씩 손바닥 위에 올렸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일곱 다발을 차례로 마른 약초의 항아리 옆에 두었다. 그 한 가지의 다발은 따로 천 위에 두었다. 그 한 가지의 다발의 무게가 약장수의 손바닥 한가운데에 잠시 머물다 떨어졌다. 머문 시간이 평소대로였다.
그가 동전 몇 닢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 주었다. 데나리온 한 닢, 반 데나리온 셋, 청동 작은 닢 일곱. 평소대로의 시세였다. 동전을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매듭을 두 번 지었다.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동작이었다.
그 다음 사흘 동안 능선에 일곱 번 올랐다.
새벽에 일어나 빵 한 조각을 먹었다. 능선의 첫 자락을 올랐다. 우슬초의 자리에 갔다. 박하의 자리에 갔다. 들박하의 자리에 갔다. 쓴쑥의 자리에 갔다. 작은 쑥의 자리에 갔다. 시리아 박하의 자리에 갔다. 산자고의 자리에 갔다. 일곱 번의 능선 오름에 잎을 따고, 줄기의 위쪽 한 마디를 자르고, 다발을 묶었다. 묶기 전에 풀의 결을 손바닥에 한 번 비볐다.
그 사흘 동안 위쪽 능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마을의 어느 자리에서도 듣지 못했다. 마을의 우물가에 여인 둘이 모여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한 번 보았다. 그들의 이야기 중 한 단어가 능선의 어느 방향에 관한 단어 같았다. 그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가까이 가서 듣지 않았다. 듣는 것은 약초꾼의 일이 아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 마을의 모퉁이에서 외지의 사람 둘이 한 사람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외지의 사람 둘은 갈릴리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 같았다. 옷자락에 호숫가의 비늘 같은 것이 옅게 남아 있었다. 그들과 마주 선 사람은 마을의 사람이었다. 그들 셋의 이야기 중 한 단어가 능선의 어느 시각에 관한 단어 같았다. 그 단어 뒤의 다른 단어들이 그들의 입에서 나왔지만 나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가까이 가는 것은 약초꾼의 일이 아니다. 다만 그 셋이 잠시 후 한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방향은 마을의 바깥, 능선의 반대 방향이었다.
그들이 걸어간 뒤에 나는 약장수의 집으로 갔다. 그날의 다발을 내려놓고 동전을 받았다. 매듭을 두 번 지었다. 평소대로의 박자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능선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능선의 위쪽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정상의 부근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비탈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늙은 떡갈나무 한 그루가 멀리서 작은 점으로 보였다. 그 점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그 다음 사흘에도 능선에 일곱 번 올랐다. 그 다음 사흘에도, 또 그 다음 사흘에도.
여러 사흘이 지난 어느 오후에 마을의 약장수의 집 마당에서 한 단어가 흘러들었다.
마당의 한쪽에 약장수가 앉아 있었고, 다른 한쪽에 다른 마을에서 온 약장수의 친구가 앉아 있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다발을 꺼내고 있었다. 둘이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이야기의 한 끝이 마당의 가운데로 옅게 흘러들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 한 마디가 그들 중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나는 분간하지 않았다. 분간하려면 멈춰야 했고, 멈추는 것은 약초꾼의 일이 아니다. 다만 그 한 마디 안의 한 단어 — “들으라” — 가 마당의 가운데에 잠시 머물렀다. 머문 자리에서 나는 다음 다발을 천 위에 올려놓고 결을 한쪽으로 한 번 비볐다. 결이 누웠다. 매듭이 잡혔다.
그 한 마디 뒤에 다른 단어들이 그들 사이에서 더 오갔다. 그 단어들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듣지 않았다.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들으면서 가려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가려내려면 멈춰야 했고, 멈추는 것은 약초꾼의 일이 아니다.
다발 일곱을 차례로 약장수의 마당의 천 위에 올렸다. 약장수가 한 다발씩 손바닥 위에 올렸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동전을 받았다. 가죽 주머니의 매듭을 두 번 지었다.
그 한 마디가 다시 흘러들지 않았다. 흘러들지 않은 한 마디는 흘러들지 않은 채로 두었다. 그 자리에 그 자리대로 두는 것이 약초꾼의 한 가지 방식이다.
다음 사흘에도 능선에 올랐다.
새벽에 일어나 빵 한 조각을 먹었다.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능선의 첫 자락을 올랐다. 풀의 결을 한 번 손바닥에 비볐다.
그날은 우슬초의 자리에 갔다. 우슬초는 능선의 남쪽 비탈에 자란다. 그 한 가지의 비탈과는 반대편이다. 우슬초의 잎은 작고 둥글고 줄기가 짧다. 잎 열을 모으면 한 묶음의 절반이고, 스물을 모으면 한 묶음이다. 잎을 따고, 줄기의 위쪽 한 마디를 잘랐다. 묶기 전에 풀의 결을 손바닥에 한 번 비볐다. 결이 한쪽으로 누웠다. 노끈을 두 번 두르고 매듭을 두 번 지었다. 매듭이 잡혔다.
다음 묶음을 묶었다. 그다음 묶음을 묶었다.
일곱 묶음이 채워졌다. 가방의 안쪽 천에 큰 것이 아래, 작은 것이 위. 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비탈을 내려오는 동안 능선의 위쪽 — 그 한 가지의 비탈의 더 위쪽, 정상의 부근 — 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 자리는 자기 자리에 있었다. 풀의 결이 자기 결이었고, 돌의 색이 자기 색이었고, 하늘이 자기 하늘이었다. 정오를 지난 오후의 빛이 평소대로 평평하게 깔렸다.
마을로 내려오는 길의 시내의 정해진 돌 셋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발을 차례로 짚었다. 발이 젖지 않았다.
약장수의 집의 마당에 항아리 셋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다발 일곱을 천 위에 차례로 올렸다. 약장수가 한 다발씩 손바닥 위에 올렸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동전을 받았다. 가죽 주머니의 매듭을 두 번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능선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능선이 능선의 자리에 있었다.
내일 새벽에도 빵 한 조각을 먹고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멜 것이다. 능선의 첫 자락을 오를 것이다. 박하의 자리에 갈 것이다. 잎을 따고, 줄기의 위쪽 한 마디를 자를 것이다. 묶기 전에 풀의 결을 손바닥에 한 번 비빌 것이다. 결이 한쪽으로 누울 것이다. 노끈을 두 번 두르고 매듭을 두 번 지을 것이다. 매듭이 잡힐 것이다.
집의 마당에 들어왔다. 마당의 한쪽에 빈 항아리 둘이 자기 자리에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죽 주머니의 매듭을 한 번 풀어 동전을 책상 위에 옮겼다. 옮긴 동전 중 한 닢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청동 작은 닢이었다. 무게가 평소대로였다.
손바닥 위의 동전을 책상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