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제 1 권 · 수난 가장자리에서

1. 저녁

그날 저녁 나는 대제사장의 집 뒤뜰에 앉아 있었다. 무화과나무의 그림자가 돌담 위로 길게 누워 있었고, 누군가가 안쪽에서 불을 때는 냄새가 뜰까지 내려왔다. 여자들이 유월절 음식을 정리하고 있었다. 양고기 기름 냄새가 물그릇에 뜬 기름처럼 공기의 표면에 얇게 떠 있었다.

나는 무릎을 세워 앉아 왼쪽 샌들의 가죽끈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끈이 조금 늘어져 있었다. 아침에 묶을 때는 몰랐는데 저녁이 되어 보니 알 수 있었다. 내일 고쳐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작은 것들을 잊지 않으려면 생각의 순간에 붙잡아두어야 한다.

나는 종이다. 대제사장의 뜰에서 문을 열고 닫는 일을 하고, 때때로 주인의 심부름을 나른다. 아침에는 물을 길어 오고 저녁에는 돌계단을 쓸어 내린다. 스물넷쯤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죽었고, 어머니는 예루살렘 남쪽 마을에서 형의 집에 살고 있다. 나는 일 년에 두어 번 그곳에 간다. 가면 어머니는 내 얼굴을 오래 본 뒤에 빵을 굽는다. 그것이 내가 아는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그날 저녁 주인이 앞마당 쪽에서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듣지 않으려 했지만 뜰의 구조 때문에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왔다. “오늘 밤에”, “사람을 모아서”, “조용히” 같은 단어들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그 단어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나는 몰랐다. 주인의 말은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들렸고, 부분적으로 듣고 전체를 이해하려 하는 것은 종의 일이 아니었다.

해가 졌다. 밤공기가 돌담의 온기를 천천히 빼앗아 갔다. 나는 뜰 한쪽의 항아리에서 물을 한 잔 떠 마셨다. 물맛이 조금 미지근했다. 그러고 나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말고, 횃불을 준비해라.”

2. 키드론

우리는 열두어 명이었다. 어쩌면 열다섯이었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숫자를 나는 세지 않았다. 대부분은 병사였고, 몇은 성전 관리인이었고, 나처럼 따라나선 종이 두셋 있었다. 횃불은 일곱 개였다. 앞쪽에 네 개, 중간에 두 개, 뒤쪽에 하나. 나는 뒤쪽 횃불 옆에서 걸었다.

주인은 이 무리에 끼지 않았다. 주인은 집에 남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밤이 주인에게 중요한 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요한 일은 언제나 자기 집 안쪽에서 기다리는 법이다.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종과 병사들의 일이다.

성문을 나서자 키드론 골짜기가 아래쪽으로 열렸다. 달이 거의 둥글었다. 유월절은 만월 가까이에 걸리기 때문에 달은 둥글었지만 완전히 둥글지는 않았다. 그 한 귀퉁이의 어둠이 이상하게 내 시선을 붙잡았다. 나는 걸으면서 그 귀퉁이를 몇 번 올려다보았다.

다리를 건너는 돌이 차가웠다. 낮 동안 해가 데워 놓은 열을 밤공기가 이미 다 가져간 뒤였다. 횃불에서 떨어진 송진이 돌 위에 짧게 붙었다가 꺼졌다. 그 꺼지는 소리가 “칙” 하는 짧은 음절로 들렸다. 평소에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날 밤의 어떤 공기가 그 소리를 들리게 만들었다.

병사들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디쯤에 있다고 했지.” “동산 안쪽이래.” “제자들이 몇 명이나 되지.” “그건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듣지 않으려고 했다. 종은 듣지 않는 것이 일이다. 그러나 나의 귀는 듣고 있었다.

우리는 올리브나무가 빽빽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올리브 잎의 은색 뒷면이 달빛을 받아 한꺼번에 반짝였다 사라졌다 했다.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 그 반짝임이 물결처럼 언덕 전체를 가로질렀다. 나는 잠시 멈추어 그 물결을 올려다본 적이 있다. 그 물결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3. 동산

우리는 어느 좁은 길의 굽이에서 멈추었다. 앞쪽에서 성전 관리인 하나가 “여기다” 하고 짧게 말했다.

나무들 사이로 사람 몇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횃불이 아래쪽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은 위쪽이 어둡고 턱 아래만 희미하게 밝았다. 그중 한 사람이 먼저 앞으로 나왔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횃불의 원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 나는 그 발걸음을 지금도 설명할 수 없다. 그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잡히러 나오는 사람의 발걸음은 언제나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 그것이 종의 경험이다. 두려움 때문이든, 체면 때문이든, 마지막 희망 때문이든 사람은 잡히기 직전에 한 번은 멈춘다. 그러나 그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물었다. 누구를 찾느냐고.

그 목소리를 나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낮았고 평평했고 추궁당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목소리에는 병사들이 예상하지 못한 종류의 평정이 있었다. 병사들 중 몇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 뒷걸음질을 보았다. 나중에 돌이켜 봐도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람이다.” 하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리고 병사들이 앞으로 움직였다.

그때 나는 왼쪽 어깨 뒤쪽에서 어떤 움직임을 느꼈다. 정확히는 움직임이라기보다 공기의 이동이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앞으로 튀어나오는 기척. 나는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고개를 다 돌리기 전에, 공기 중에 은빛 한 줄기가 스쳤다.

그다음은 소리였다. 내 머리의 한쪽에서 어떤 소리가 사라졌다. 세상의 소리가 갑자기 절반만 남았다. 그 갑작스러운 절반 상태를 나는 설명할 말이 없다. 그것은 아프다기보다 먼저 이상했다. 세상이 이상해졌고, 그다음에 뜨거움이 왔다.

뜨거움은 내 목을 따라 흘렀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다음에는 빠르게. 나는 손을 올려 만져 보고 싶었지만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릎이 먼저 꺾였다. 돌바닥이 내 무릎을 받았다. 나는 내가 떨어지는 것을 먼 곳에서 보는 것 같았다.

소리가 절반만 들리는 세계에 내가 떨어져 있는 동안, 모든 사람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횃불이 흔들리는 것도, 병사들이 숨 쉬는 것도, 모두가 한 박자씩 어긋나 있었다. 내 왼쪽 귀로는 횃불의 탁탁거리는 소리가 여전히 들렸지만, 오른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른쪽은 이제 세계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옆에 다가왔다. 나는 그 기척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누구인지 보지 못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때 내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이것까지 참으라.”

그 한 마디가 공기 중에 놓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손이 내 오른쪽 얼굴에 닿았다.

그 손의 온도를 나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려고 해서 기억한 것이 아니다. 그 온도는 내 살에 찍혀 버렸다. 그것은 사람의 손 온도보다 아주 약간 따뜻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정확히 같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조금 서늘했을지도 모른다. 세 가지 가능성 중 어느 하나를 나는 고를 수가 없다. 온도란 비교를 위한 기준이 필요한데, 그 순간 나에게는 기준이 없었다.

손가락이 귓불의 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다음에 뜨거움이 멎었다. 목을 따라 흐르던 것도 멎었다. 사라졌던 쪽의 소리가 아주 천천히 돌아왔다. 처음에는 횃불의 탁탁거리는 소리가, 그다음에 누군가의 숨소리가, 그다음에 바람이 올리브 잎을 지나가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손이 떠났다. 발소리들이 그 사람을 둘러쌌다. 쇠사슬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그 사람의 팔을 묶었다. 나는 바닥에 혼자 남겨졌다.

병사 하나가 나를 일으켜 세우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나는 답하지 못했다. 나는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내 오른쪽 귀로 가져갔다.

귓불이 거기 있었다. 피가 말라 있지 않았다. 피가 아예 없었다. 손가락 끝에 솜털이 닿았다. 연골의 작은 굴곡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매끄럽게 지나갔다. 귓바퀴의 안쪽 곡선까지 그대로였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천천히 확인했다. 확인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손을 내렸다. 일어섰다. 무리를 따라 성으로 돌아갔다.

4. 앞마당

대제사장의 집 앞마당에 숯불이 피워져 있었다. 새벽 세 시쯤이었을 것이다. 별의 위치로 보아 그 정도 시각이었다.

집 안쪽에서는 심문이 시작되고 있었다. 목소리들이 돌담을 지나 앞마당까지 흘러나왔다. 어느 것이 질문이고 어느 것이 대답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중간중간 누군가가 주먹으로 무언가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살을 치는 소리이기도 했고 벽을 치는 소리이기도 했다. 나는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앞마당에는 종들이 예닐곱 서 있었다. 여자 하나가 숯불에 장작 한두 개를 더 얹었다. 불은 낮게 타올랐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고, 불 가까이에 서면 앞쪽만 따뜻하고 등은 여전히 차가웠다. 모두가 그런 상태로 서 있었다.

나는 종들 사이에 끼어 불 옆에 섰다. 불빛이 사람들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숯의 냄새가 올라왔다. 그 냄새 안에는 나무가 타는 냄새와, 나무가 타다 만 냄새와, 뜨거워진 돌의 냄새가 함께 섞여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다시 귀를 만졌다. 두 번째였다.

내 맞은편에 낯선 얼굴 하나가 서 있었다. 남자였고, 수염이 덥수룩했고, 옷자락에 물고기 비늘 같은 것이 말라붙어 있었다. 갈릴리 사람이라고 나는 추측했다.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은 옷 아래쪽에 언제나 비늘이나 소금이 남아 있다. 그는 불을 쬐려고 손을 앞으로 내밀었지만 그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불가의 여자 하나가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당신도 저 사람과 함께 있던 사람이오.”

남자는 잠시 침묵한 뒤에 “아니오” 하고 대답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그는 눈을 피하며 불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불이 그의 얼굴을 더 밝게 비추었다. 나는 그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 얼굴은 어쩌면 ― 동산에서 칼을 빼 들었던 그림자의 얼굴과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같은 얼굴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동산에서의 일은 너무 빨리 일어났고, 그때 나는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어깨의 폭과 서 있는 자세가 비슷했다. 그런 것들은 사람이 기억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동시에 사람이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왜 말을 걸지 않았는지 나는 설명할 수 없다. 그를 고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이 무너졌다. 무너진다는 말 말고는 다른 말이 없다. 그는 돌연 몸을 돌려 앞마당의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나가는 방향을 나는 눈으로 따라갔다. 그의 뒷모습은 절반쯤 그림자에 먹혔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성문 쪽으로 간 것 같았다.

집 안쪽에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 흐느낌은 앞마당을 떠난 남자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내 귀를 다시 만졌다. 오른쪽 귀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5. 아침

아침은 천천히 왔다.

예루살렘의 아침은 언제나 천천히 온다. 성 안쪽에서는 해가 성벽 위로 올라오기 전까지 거리가 회색빛이다. 그 회색이 천천히 옅어지면서 돌담의 색이 드러나고, 상점의 나무문이 드러나고, 사람들의 옷 색깔이 드러난다. 그날 아침도 그렇게 왔다. 다만 그날은 다른 아침보다 조금 더 느렸다.

나는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모른다.

주인의 밤일은 끝났고, 나는 내 몫을 다했다.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고, 오후에는 어제 늘어진 샌들 끈을 갈고, 저녁에는 물을 길어 와야 했다. 그것이 나의 하루였다. 그러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내 발은 군중을 따라가고 있었다. 군중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거리에 사람이 많았다. 유월절이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네 배쯤 많았다. 사람들은 서로 밀며 앞으로 걸어갔고, 그 밀림 속에서 나는 떠밀리듯 앞으로 나갔다. 어떤 남자가 내 어깨에 자기 어깨를 부딪쳤다. 어떤 여자가 내 발을 밟았다. 내 발이 밟힌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앞만 보고 있었다.

총독의 법정 앞 돌계단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밧줄이 손목을 묶고 있었다. 밤새 맞은 자국이 얼굴에 있었다. 입술 한쪽이 조금 찢어져 있었다. 그는 밤새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밤새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의 얼굴과 어딘가가 달랐다. 무엇이 다른지 나는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총독이 무언가를 물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어떤 이들은 한쪽을, 어떤 이들은 다른 쪽을 원했다. 그 소리들이 하나의 거대한 소음으로 뭉쳐져 법정의 공기를 채웠다.

그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군중의 고함 한가운데 돌처럼 놓여 있었다. 고함은 그 돌의 표면에 부딪혀 흩어질 뿐 그 안으로 스며들지 못했다. 나는 그 돌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 돌의 안쪽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돌이 거기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없었다. 군중 뒤쪽에 서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정면으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곁눈으로 보았다.

그의 시선은 총독을 향해 있지 않았다. 군중을 향해 있지도 않았다. 나는 그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고 싶었다. 시선의 선을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선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선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귀를 만졌다. 세 번째였다.

6. 언덕으로

사형이 정해졌다.

군중의 한쪽이 이겼고 다른 쪽이 졌다. 어쩌면 어느 쪽도 이기거나 지지 않았을 것이다. 판결이 내려진 순간 앞쪽에서 환호 비슷한 것이 짧게 올라왔다. 그러나 뒤쪽의 어떤 구역은 환호하지 않았다. 환호하는 구역과 하지 않는 구역의 경계가 이상하게 선명했다. 그 경계는 돌계단에서 대략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곳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경계의 바깥쪽에 서 있었다.

총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병사들이 그 남자를 다시 움직였다. 움직이기 전에 한 백부장이 앞으로 나와 무언가를 확인했다. 그는 피곤해 보였다. 매일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침에 아내와 밥을 먹었을지도 모르고 어린아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얼굴. 그러나 지금은 자기 일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얼굴.

그들은 그의 어깨에 커다란 나무 기둥을 걸쳤다. 기둥은 조잡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한쪽 끝에 가로대가 덧대여 있었다. 가로대의 나무 결이 거칠었다. 쇠 고리가 박혔던 자리가 군데군데 검게 남아 있었다. 오래된 핏자국이 나무의 결 사이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 나무는 그 남자의 것만이 아니었다. 그 나무는 수십 번 사용된 나무였다.

기둥의 무게가 실리는 순간 그의 다리가 한 번 꺾였다. 그는 다시 섰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느렸고, 한 걸음을 내딛는 데 평소의 두 배쯤 되는 시간이 걸렸다. 한 걸음, 그리고 숨, 그리고 한 걸음, 그리고 또 숨. 그런 방식이었다.

같은 행렬에 사형수가 두 명 더 있었다. 나는 그들을 그때 처음 보았다. 한 명은 젊었고 한 명은 중년이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고 두 사람 모두 나무를 지고 있었다. 젊은 쪽은 계속 욕을 하고 있었고 중년 쪽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구분은 이상하게 분명했다. 같은 형을 받는 두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은 끝까지 소리를 내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무리는 성문 쪽으로 움직였다. 나도 움직였다.

좁은 골목을 지나는 동안 거리의 일상이 이상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모퉁이의 빵 가게에서는 아직 화덕에 불이 있었다. 빵 굽는 냄새가 올라왔다. 어떤 집 앞에는 물 파는 사람이 항아리를 내려놓고 있었다. 어떤 여자는 자기 문 앞에 빗자루를 세워 놓고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손에는 아직 빗자루가 쥐여 있었다. 구경을 마치면 그녀는 다시 돌바닥을 쓸 것이다. 오늘의 거리가 그녀에게는 어제의 거리와 거의 같은 거리였다.

몇몇 여인이 행렬의 옆에서 함께 걸으며 울고 있었다. 그들은 소리 내어 울었다. 소리 내어 우는 종류의 울음이었다. 그 울음은 행렬을 따라 한동안 이어지다가 어느 지점에서 멀어졌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누가 누구였는지 나는 모른다.

도중에 병사 한 명이 군중 속에서 누군가를 끌어냈다. 그가 지목한 사람은 피부가 짙고 체격이 큰 남자였다. 옷자락에 먼 곳의 먼지가 배어 있었다.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올라온 사람 같았다. 병사는 그에게 아람어와 그리스어를 섞어 명령했다. 나무를 지라고. 남자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가 잠시 후에 이해했고, 그다음에는 당황했다. 그러나 당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기둥을 받았다. 기둥이 가로대부터 그의 어깨 위로 옮겨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기둥이 돌바닥에 한 번 내려앉았다가 다시 올려지는 것을 보았다. 기둥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났다. 먼지가 조금 날렸다. 사내의 옷깃이 기둥의 무게에 눌려 한쪽으로 주름졌다. 그는 비틀거렸지만 다시 중심을 잡았다.

그 남자의 두 어린 아들이 사람들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큰아이는 겁먹은 얼굴이었다. 작은아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은 아이에게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얼굴이지만 동시에 가장 나중에 잊히는 얼굴이다. 나중에 나는 그 아이들 중 한 명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그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나무를 빼앗긴 쪽은 다시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등은 비어 있었다. 빈 등으로 그는 성문을 향해 걸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걸었다. 빈 등은 나무를 진 등보다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나는 설명할 수 없다.

성문을 지나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성벽 바깥의 공기에는 성벽 안쪽의 냄새가 없었다. 사람의 냄새, 음식의 냄새, 짐승의 냄새가 없었다. 대신 바람이 있었다. 바람에는 먼지가 섞여 있었고, 그 먼지는 언덕 쪽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골고다로 가는 길은 돌이 많고 경사가 조금 있었다. 발걸음마다 샌들 아래의 작은 돌이 미끄러졌다. 그런 작은 돌들은 보통 거리를 걸을 때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은 그 작은 돌 하나하나가 발바닥에 느껴졌다. 왼쪽 샌들의 늘어진 끈이 계속해서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어젯밤에 고치겠다고 생각했던 그 끈이었다. 어젯밤은 아주 먼 옛날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왜 골고다로 따라가는가.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머니가 다음 주에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형네 집에 가서 어머니의 빵을 먹어야 한다. 그것이 내 다음 주의 일이다. 그러나 내 발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내 발의 방향을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귀를 만졌다. 네 번째였다.

7. 세 시

언덕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가 조금 안 된 시각이었다.

그곳은 옛날 누군가가 처형되고 그 뒤로도 계속 사람이 처형되어 온 자리였다. 돌 사이에 풀이 드문드문 있었고, 풀은 밟혀 있었고, 바람에 말라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이미 구덩이 몇 개가 파여 있었다. 구덩이들은 깊지 않았다. 기둥을 세울 정도의 깊이였다.

나는 언덕 아래쪽에서 멈추었다. 위로는 올라가지 않았다. 올라가야 할 이유가 없었고 올라가고 싶지도 않았다. 나보다 가까이 서 있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더 멀리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나름의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거리들이 어떤 원리로 정해졌는지는 모른다.

기둥이 세워지는 소리가 위쪽에서 몇 번 났다. 나무가 구덩이에 박히는 소리, 흙이 다져지는 소리, 쇠가 나무에 닿는 소리. 나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발치의 풀을 보았다. 풀은 그때까지 아직 초록이었다. 짙은 초록은 아니었지만 초록이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소리쳤다. 어떤 이들은 손가락질을 했다. 어떤 이들은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병사들 중 몇몇은 한쪽에 모여 앉아 무언가로 제비를 뽑고 있었다. 거리가 있어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옷처럼 보이는 것이 그들의 손 사이를 오갔다. 어떤 여인은 서 있었고 어떤 여인은 앉아 있었다. 서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울음이 없었고, 앉아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울음이 있었다. 그 구분이 다시 이상하게 분명했다.

정오 무렵까지는 모든 것이 정오 무렵에 맞는 상태였다. 해가 높이 있었고, 빛이 강했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발밑에 짧게 눌려 있었다. 나는 한 번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림자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그 직후였다.

빛이 조금 약해졌다. 처음에는 구름이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없었다.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림자가 조금 옅어져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구름이 없었다. 그런데 빛이 또 조금 약해졌다. 주변의 누군가가 “해가……” 하고 말했다. 그 “해가” 뒤에 이어져야 할 말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빛은 그 뒤로 계속해서 약해져 갔다.

색이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풀의 초록이 먼저 회색에 가까워졌다. 사람들의 옷 색깔이 다음이었다. 돌의 색은 원래 거의 회색이었지만 그 회색마저 더 깊은 회색이 되었다. 해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해가 없었다. 구름이 없는 하늘이 천천히 먹빛이 되었다. 색이 있으면서 색이 없는 그런 상태를 나는 처음 보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멀리 서 있던 사람들부터였다. 그들은 어둠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갔고, 뒷모습이 어둠에 천천히 먹혔다. 조금 지나자 가까이 있던 사람들도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뜬 것은 아니었다. 어떤 여인들은 남았다. 어떤 병사들도 남았다. 로마 병사 하나가 언덕 위에서 긴 창을 들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그는 매일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그는 보통 날의 그와 어딘가가 달랐다.

어둠이 완전해지자 시간이 달라졌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로 천천히 흘렀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시간이 그렇게 천천히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 호흡이 세 호흡처럼 길었다. 한 걸음이 열 걸음처럼 길었다. 모든 것이 늘어져 있었고, 그 늘어짐 속에 모두가 서 있었다.

나는 한참 서 있다가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밤새 잠을 못 잤고, 새벽에 귀가 잘렸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가 고파야 했는데 배고픔이 멀게 느껴졌다. 배고픔이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근처의 낮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위가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다리에서 올라와 등까지 천천히 전해졌다.

내 옆에 어떤 노인이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십자가 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지팡이가 돌바닥에 꽂혀 있었다. 지팡이 끝의 작은 금속 장식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났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한 시간일 수도 있었고 두 시간일 수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시간을 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까마귀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나는 알아챘다. 유월절 무렵 성 밖의 이 시각에는 보통 까마귀가 몇 번씩 울었다. 그러나 그날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날아다니는 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채자 그 사실이 갑자기 나의 어딘가를 눌렀다.

십자가 쪽에서 간헐적으로 무언가 들렸다. 목소리인 것 같았고 목소리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거리가 멀었다. 바람이 소리를 흩어 놓았다. 나는 듣지 않으려 했고 동시에 들으려 했다. 그 둘이 동시에 가능한 상태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어느 순간 남아 있는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 달라진 것이 분명했다. 공기의 질감이 달라졌다. 어떤 종류의 긴장이 어둠 사이로 퍼져 나갔다. 나는 그 긴장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고 빛도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을 느꼈다.

세 시가 되었다.

언덕 위에서 큰 소리가 났다. 그것이 한 마디였는지 여러 마디였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그 말의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다. 거리가 멀었고, 바람이 그 소리를 흩어 놓았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런 뜻으로 들었고 어떤 사람은 저런 뜻으로 들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그저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끝났다는 것만 기억한다.

소리가 끝난 직후에 땅이 움직였다.

나는 주저앉지 않았다.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발 아래 돌들이 움직인 것을 분명히 느꼈다. 바위 자체도 짧게 흔들렸다. 내 옆의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해 한 걸음 물러섰다. 어떤 여인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어떤 병사가 창을 떨어뜨렸다. 창이 돌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 선명하게 들렸다. 다른 모든 소리 사이에서 그 하나의 소리만이 뚜렷했다.

그 순간 내 오른손이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손은 내 오른쪽 귀를 향했다. 내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손이 먼저 움직였고, 나는 나중에 그것을 알았다.

귓불은 거기 있었다. 연골의 작은 굴곡은 매끄러웠다. 피는 없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다시 손끝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한 번 더 확인했다. 확인한다는 것은 무엇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냥 손이 거기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손을 내리지 못했다.

제2편

연회장의 잔

가나의 연회장
요 2

1. 저녁

나는 이제 더 이상 연회에 나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잔을 평가한 것이 몇 년 전인지 정확히 모른다. 아마 7년 전쯤일 것이다. 어느 상인 집안의 혼인잔치였다. 내가 가서 포도주를 맛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주인이 만족한 얼굴로 내 손에 은전 몇 닢을 쥐여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은전을 손바닥 안에서 두 번 뒤집어 보았다. 그런 동작을 나는 그날 이후 다시 한 적이 없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일이었다.

지금 나는 갈릴리 남쪽의 작은 집에 혼자 산다. 창이 두 개 있고, 그중 하나는 무화과나무 쪽을 바라본다. 아침에 물을 한 번 길어 오고, 낮에는 햇볕에 앉아 있고, 저녁이 되면 잔을 하나 꺼낸다. 잔은 언제나 같은 잔이다. 오래된 토기 잔이고, 가장자리가 살짝 이가 나가 있다. 이 잔으로 나는 저녁마다 포도주 한 잔을 마신다.

오늘도 잔이 내 앞에 놓여 있다.

매일 저녁 내가 하는 동작이 시작된다. 나는 오른손으로 잔을 든다. 잔을 눈높이까지 올린다. 빛이 잔의 가장자리에 닿는다. 잔 안의 포도주 표면이 아주 살짝 흔들린다. 나는 잔을 기울인다. 포도주가 잔 벽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진다. 냄새를 맡는다. 입가로 가져간다. 입술에 닿는 순간 ―

나는 멈춘다.

매일 이 자리에서 멈춘다. 마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마신다. 그러나 마시기 직전의 이 멈춤이 매일 있다. 멈춤은 짧고, 나 자신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 멈춤을 가지고 산 지 벌써 30년쯤 되었다.

30년 전에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말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잃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결론이 없다. 그저 일어난 일이다.

2. 연회장이라는 일

나는 30년 동안 연회장이었다.

연회장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번역된다. 주례, 혹은 식탁의 주관자, 혹은 연회의 관리인. 히브리 전통에서는 이 일이 원래 신랑의 친구가 맡는 명예로운 직분이었다. 그러나 유월절 즈음의 예루살렘과 갈릴리에서는 외부 전문가를 고용해 이 일을 맡기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관습이 되었다. 나는 그 외부 전문가 중 하나였다.

내 아버지도 연회장이었다. 아버지는 갈릴리 동쪽 끝 작은 마을 출신이었고, 포도주 맛을 구분하는 법을 어느 늙은 상인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혼인잔치에 나가 있었다. 집에 있을 때는 나에게 잔 쥐는 법을 가르쳤다. “엄지손가락으로는 절대 잔을 누르지 마라.” 아버지는 말했다. “엄지의 열이 포도주의 맛을 바꾼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열네 살 무렵부터 나는 아버지를 따라 연회에 나갔다. 처음에는 잔을 나르는 일만 했다. 열여덟이 되자 아버지가 나에게 포도주를 먼저 맛보게 시켰다. 스물두 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일을 그만두었고, 나는 아버지의 고객들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연회장의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포도주의 품질을 판단하고, 몇 잔째에 어떤 포도주를 내놓을지 결정하고, 신랑과 신부 양가의 체면을 조율하고, 손님들의 취기 상태를 보며 물을 얼마나 섞을지 가늠하는 일. 이 모든 일이 한 저녁에 동시에 이루어진다. 실수는 용서받지 않는다. 특히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 — 그것은 가장 큰 수치였다. 유대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부족했다는 소문이 나면 그 집안의 평판에 평생 금이 갔다.

나는 이 일을 잘했다. 잘했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다. 갈릴리 전역에서 혼인이 있으면 내 이름이 자주 불렸고, 멀리 티베리아스에서까지 사람이 나를 부르러 왔다. 나는 맛을 구분하는 데 자부심이 있었다. 포도주 한 모금을 혀에 올려놓으면 나는 그 포도가 자란 비탈이 북향인지 남향인지, 수확이 일렀는지 늦었는지, 통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 이런 것들을 대략 알 수 있었다. 대략, 이라고 말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의 완벽에 가깝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고, 내 고객들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30년 전의 나였다.

3. 가나의 아침

가나는 그렇게 큰 마을이 아니었다. 나사렛에서 한 시간 반쯤 걸리는 언덕 마을이었고, 올리브나무가 많았다. 내가 가나에 간 것은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마 네 번째나 다섯 번째였을 것이다. 가나에는 큰 포도밭이 없었으므로, 혼인이 있을 때면 주인들은 언제나 바깥에서 포도주와 연회장을 불렀다.

그날의 신랑은 젊었다. 스물 몇 살쯤 되는 청년이었고, 얼굴은 내가 기억하기에 별로 특별할 것이 없었다. 가구 만드는 집안의 장남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신랑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직업윤리였다. 나는 그들의 혼인을 평가하러 간 것이 아니라 포도주를 관리하러 간 것이었고, 이름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나는 아침 일찍 도착했다. 혼인은 보통 저녁에 시작해 사흘 동안 이어진다. 연회장은 첫날 아침부터 현장에 가서 준비를 총괄한다. 그날 내가 처음 한 일은 집 안의 모든 그릇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잔은 몇 개인가. 물병은 어디 있는가. 포도주 항아리는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가. 정결례용 항아리는 올바른 자리에 있는가.

그날 가나의 그 집에는 정결례용 돌 항아리가 여섯 개 있었다. 내가 숫자를 기억하는 것은 그 숫자가 조금 많았기 때문이다. 보통 유대인 집은 두세 개, 많으면 네 개를 둔다. 여섯은 풍족한 집안이거나, 손님이 많이 올 것을 예상한 집안이거나, 둘 다였다.

돌 항아리는 석회암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갈릴리 산 것이었다. 갈릴리 석회암은 특유의 살짝 달짝지근한 냄새가 있다 ― 정결례용으로는 그 냄새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약 포도주를 담는 용도라면 적합하지 않다. 돌 항아리는 금이 가지 않아야 하고, 내부가 매끄러워야 한다. 나는 그것을 손으로 훑어보며 확인했다. 여섯 개 모두 상태가 좋았다. 용량은 각각 메트레테스 둘 셋 정도였다. 환산하면 한 항아리에 여든에서 백이십 리터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여섯 개를 다 합치면 대략 육백 리터쯤 되는 셈이지만 ― 이것들은 물을 담는 용도였으므로 나는 그저 숫자만 머리에 남겨 두고 넘어갔다.

나는 포도주 항아리 쪽을 확인하러 갔다. 주인이 준비한 포도주는 괜찮은 품질이었다.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중하품 이상은 되었다. 나는 잔 두 개에 각각 한 모금씩 따라 맛을 보고, 주인에게 “괜찮소” 하고 말했다. 주인은 안도한 얼굴이었다. 주인들은 언제나 내 한마디에 안도하거나 절망한다. 그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리고 저녁이 왔다.

4. 포도주가 떨어지다

혼인은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손님은 예상보다 조금 많았다. 예순 명쯤 될 줄 알았는데 여든 명 가까이 왔다. 이런 일은 종종 있다. 마을 사람들은 초대받지 않아도 와서 축하하는 풍습이 있고, 연회장은 그 풍습을 거절할 수 없다. 나는 처음 한 시간 동안 포도주를 빠르게 내지 말라고 하인들에게 일러두었다. 잔을 너무 자주 채우면 취기가 빨리 올라오고, 취기가 빨리 올라오면 손님들이 더 마시고 싶어 하고, 그러면 준비한 것이 일찍 떨어진다.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그러나 나도 결국 어쩔 수 없는 때가 있다.

두 시간쯤 지났을 때 하인 하나가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을 나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이 얼굴은 내가 30년 동안 가장 많이 본 얼굴 중 하나였다. 혼인잔치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하인이 연회장에게 다가올 때의 얼굴. 말하고 싶지 않은데 말해야 하는 얼굴.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 일렀다. 내가 계산을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 손님이 더 많이 왔고, 주인이 준비한 양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회장의 잘못인지 주인의 잘못인지는 손님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손님들은 그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 집안의 평판에 평생 남을 것이다.

나는 신랑을 부를 준비를 했다. 이 상황에서 연회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신랑에게 가서 상황을 알리고, 체면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함께 논의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방법은 없다.

하인이 나를 멈춰 세웠다.

“기다려 주십시오. 저쪽에서 다른 항아리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나는 하인을 보았다. 그의 눈이 이상했다. 겁먹은 것 같기도 했고, 뭔가 알 수 없는 것에 사로잡힌 것 같기도 했다.

“다른 항아리? 주인이 다른 곳에서 구해 왔소?”

하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입을 반쯤 벌리고 있다가 그대로 돌아서서 안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깐 보고는, 잔을 다시 받치고 일어섰다.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5. 한 모금

나는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그 집 부엌은 안뜰 뒤편에 있었고, 부엌과 안뜰 사이에 돌 항아리 여섯 개가 놓인 좁은 공간이 있었다. 내가 아침에 확인한 그 돌 항아리들이었다. 정결례용의, 갈릴리 석회암으로 만든, 여섯 개의. 하인 몇이 그 항아리들 주변에 모여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들이 길을 비켰다.

한 하인이 질그릇 주전자에 항아리의 내용물을 따르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잠시 보았다. 정결례용 항아리에서 무언가를 따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항아리 안에 있는 것은 보통 물이다. 손을 씻는 물이다. 잔치의 포도주가 되기 전까지는 물이었을 그것을 — 그런데 왜 하인은 그것을 주전자에 따르고 있는가?

나는 묻지 않았다.

물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았다. 내가 연회장이라는 직분으로 30년을 산 사람이라는 것이 그 순간 나를 막았다. 연회장은 현장의 논리를 흐트러뜨리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연회장은 가져온 포도주를 맛보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사람이다. 그것이 내 일이었다.

하인이 주전자를 내게 내밀었다.

“맛을 보십시오.”

나는 잔을 꺼냈다. 내가 평생 사용한 맛보기용 잔이었다. 토기 잔이고, 가장자리가 살짝 이가 나가 있었다 ― 지금 내 집에 있는 그 잔이다. 그때 이미 그 잔은 10년을 나와 함께 다녔고, 그 잔의 이 빠진 자리에 내 엄지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들어맞았다. 나는 주전자를 받아 잔에 천천히 따랐다.

나의 의식 중 어떤 부분은 이미 실패를 예상하고 있었다. 정결례용 항아리의 물이 포도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든, 그것은 내가 평생 맛본 포도주의 범주 바깥일 것이었다.

나는 잔을 눈높이까지 올렸다. 빛이 잔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잔 안의 액체는 포도주의 색을 하고 있었다. 짙은 붉은 빛이었고, 약간의 보랏빛이 섞여 있었다. 빛이 잔을 통과할 때 보이는 그 보랏빛은, 좋은 포도주에서만 나오는 빛이었다.

나는 잔을 기울였다. 액체가 잔 벽을 따라 미끄러졌다. 벽에 남는 얇은 막의 두께는 ― 포도주가 얼마나 숙성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지표였다. 이 막은 두꺼웠다. 오래된 포도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오래된 포도주는 갈릴리 어느 집에도 많지 않다.

나는 냄새를 맡았다.

냄새는 포도였다. 그러나 포도 이상이었다. 나는 그 냄새 안에서 몇 가지 것들을 동시에 맡았다 ― 여름 끝의 햇볕, 밤에 식어 가는 올리브 잎, 젖은 돌, 그리고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것. 이 마지막 것이 나를 멈추게 했다. 내가 30년 동안 수천 잔의 포도주에서 맡아 본 어떤 것과도 다른 것이었다.

입에 가져갔다.

입술에 닿는 순간, 나는 ― 여기서부터 나는 말이 어렵다. 나는 지금도 이 순간을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30년을 찾았다. 없다.

단순히 “훌륭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된다. 그 포도주는 훌륭했지만, 훌륭함은 그 포도주의 가장 작은 부분이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 내 혀가 그 액체를 맞이한 순간, 내가 지금까지 혀로 맛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름을 잃었다. 단맛, 쓴맛, 신맛, 떫은맛 ― 이 모든 이름들이 그 한 모금 안에서 동시에 존재했다가 동시에 무의미해졌다. 혀가 하는 일이 갑자기 혀가 할 수 있는 일 이상이 되었다.

나는 입 안에 그것을 잠시 머물게 했다. 연회장이라면 그렇게 한다. 혀의 앞, 옆, 뒤, 목구멍 바로 위 ― 포도주는 각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한 모금은 모든 자리에서 같은 것을 말했다. 모든 자리에서 같은 하나를 말하는 포도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존재했다.

삼켰다.

목구멍을 지나가는 동안, 내 몸의 어느 부분이 아주 짧게 떨렸다. 그 떨림이 어디서 났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그것은 놀람이 아니었다. 기쁨도 아니었다. 내가 아는 어떤 감정의 이름으로도 그것을 부를 수 없다.

나는 잔을 내렸다.

나는 내 손이 아주 약간 떨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30년의 경력에서 맛을 볼 때 내 손이 떨린 적은 없었다. 나는 그 손의 떨림을 기억하기 위해 잠시 그 자리에 멈추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잊지 않으려 할 필요는 없었다 ― 이 떨림은 내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6. 신랑을 부르다

나는 잔을 다시 내려놓고 안뜰 쪽으로 걸어갔다.

잔치는 계속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은 포도주가 떨어질 뻔한 것도, 부엌 뒤의 돌 항아리에서 무언가가 주전자로 옮겨진 것도 몰랐다. 그들은 앞에 있는 잔을 들고 있었고, 그 잔에 무엇이 담겨 있든 계속 마시고 있었다.

신랑은 식탁의 상석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신호를 보냈다. 그는 잠시 일어나 나를 따라 벽 쪽으로 왔다. 우리는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섰다.

나는 할 말을 정리하려 했다. 30년 동안 나는 연회장으로서 신랑에게 수백 번 비슷한 말을 했다. “포도주가 충분합니다” 혹은 “이 포도주를 먼저 내시지요” 같은 말들. 그러나 그때 내가 해야 할 말은 그런 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신랑에게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30년의 직업적 습관이 나 대신 말한 것이었다.

“흔히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었군요.”

신랑은 내 말을 듣고도 금방 반응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 의문이 지나갔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곧 웃음 비슷한 것을 지어 보였고,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갔다. 그 잔치 동안 그는 내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역시 자기 잔치의 주인공이라는 자기 일로 바빴다.

나는 그때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신랑의 집안이 자기 포도주 재고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좋은 것을 나중에까지 남겨 두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 있었다. 순서가 틀렸다는 것이 내 말의 요지였다. 연회장이라면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고, 손님들의 입이 둔해졌을 때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직업의 기본이다. 이 기본조차 모르는 집안이 나를 왜 불렀는가 하는 원망 섞인 감정이 내 말의 밑바닥에 있었다.

나중에, 훨씬 나중에 나는 그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한 말은 이 집안이 그 포도주를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포도주는 이 집안의 것이 아니었다. 그 포도주가 어디서 왔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부엌 뒤의 하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말해 주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그날 밤 그 자리에서 물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았다. 잔치가 계속되고 있었고, 나는 연회장이었고, 연회장은 현장의 논리를 흐트러뜨리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일이었다.

7. 그 뒤의 30년

나는 그 잔치에서 받은 보수를 챙겨 그 다음 날 가나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한 모금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의 나는 그것이 지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몇 달이 걸렸다.

가나 이후 첫 번째 연회는 유월절이 지나고 나서 티베리아스 근처에서 있었다. 제법 큰 혼인잔치였고, 주인이 자랑하는 꽤 좋은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맛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내 안의 어딘가가 ― 맛을 저장하는 기관이 있다면 그 기관이 ― 이 포도주를 이전의 무언가와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교 대상이 무엇인지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 다만 비교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그리고 그 비교의 결과로, 이 포도주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내 몸이 판단하고 있었다.

나는 그 판단을 의심하려 했다. 객관적으로 이 포도주는 좋은 포도주였다. 내가 “좋다”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말했다. “좋소.” 그러나 말하는 순간 나는 그 말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날 이후 매번 같은 일이 일어났다.

두 번째 잔치에서도, 세 번째 잔치에서도, 열 번째 잔치에서도 같았다. 나는 맛을 보았고, 고개를 끄덕였고, 말했고, 그러나 그 모든 동작 안에 작은 유보가 들어 있었다. 그 유보는 처음에는 나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내 고객들도 그 유보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의 칭찬은 이전만큼 무게가 없어졌다. 나의 판단이 조금씩 덜 확신에 찼다. 고객들은 내가 어디가 변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나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한때 그 맛을 찾으러 다녔다.

가나 이후 5년째 되는 해에 나는 일부러 티로스까지 갔다. 티로스에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가져오는 희귀한 포도주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상인 한 명을 찾아가 가장 비싼 포도주를 맛보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나에게 세 가지를 내놓았다. 나는 세 가지를 모두 맛보았다. 좋은 포도주들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가나의 그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음 날 돈을 지불하고 돌아왔다.

그 뒤로도 나는 여러 번 여러 곳을 갔다.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집안에서도, 헤롯의 궁정에서도 가장 좋은 포도주를 맛볼 기회가 있었다. 좋았다. 귀했고, 향이 복잡했다. 그러나 가나는 아니었다.

나는 결국 포기했다.

포기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찾는 것을 멈추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멈춘 뒤에도 그 맛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는 맛이 내 직업을 천천히 망가뜨렸다. 나는 스물두 살에 시작한 이 일을 50대 중반에 접었다. 접기 1년 전쯤, 나는 이미 내가 맛을 본 포도주에 대해 고객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어려워졌다. 고개를 젓는 일도 어려워졌다. 가운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일을 마친 그 날, 은전 몇 닢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그 은전을 손바닥 안에서 두 번 뒤집어 보았다. 그런 동작을 나는 그날 이후 다시 한 적이 없다. 그것이 내 마지막 동작이었다.

8. 다시 저녁

잔은 아직 내 손에 있다.

내가 매일 하는 동작이 끝나지 않았다. 나는 잔을 입술까지 가져왔고,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지금 나는 그 멈춤 안에 있다. 멈춤은 30년 동안 매일 저녁마다 있었다. 짧고, 의식되지 않는 멈춤이었다.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멈춤 자체를 들여다보았다. 30년 동안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멈춤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것은 한 모금이다. 오래 전의 한 모금이다. 그 한 모금이 매일 저녁 이 자리에서 내 입술에 닿으려는 다른 모든 포도주를 먼저 지나간다. 지나간 뒤에 나는 마신다. 마시는 것은 습관이므로, 마신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오늘도 나는 마실 것이다. 오늘의 잔에는 갈릴리 남쪽의 작은 포도원에서 온 포도주가 들어 있다. 나는 이 포도원을 알고, 이 주인을 알고, 이 포도의 품질을 안다. 이 포도주는 중하품이다. 어떤 날은 나쁘지 않고, 어떤 날은 그저 그렇다. 오늘이 어느 쪽인지는 마셔 봐야 알 것이다.

나는 잔을 마저 입가로 가져온다.

마신다.

삼킨다. 잔을 탁자에 내려놓는다. 탁자의 나무 위에 잔이 짧게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평소와 같다. 창밖에서 무화과나무가 저녁 바람에 한 번 흔들린다. 나는 고개를 들어 창을 본다. 잎사귀의 뒷면이 어슴푸레한 빛을 반사한다. 나는 잠시 그 반사를 본다.

오늘도 나는 그 한 모금이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30년을 살았지만 모른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끝내 얻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내 안에 있고, 매일 저녁 이 자리에서 내 입술을 잠시 멈추게 한다는 것만 안다.

창밖이 조금 더 어두워진다. 나는 탁자 위의 빈 잔을 본다. 잔의 이 빠진 자리가 빛을 받아 아주 살짝 반짝인다. 나는 그 자리에 엄지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엄지가 그 자리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30년 전과 같다.

제3편

비어 있는 자리

시몬의 아내
막 1

1. 아침

해가 떠오른 지 한 시간쯤 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부엌에 나와 있었다.

가버나움의 아침은 언제나 바다 냄새로 시작된다. 마을이 갈릴리 호수의 북쪽 끝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남쪽에서 불면 그물의 냄새와 생선 비늘 냄새가 마을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바람이 북쪽에서 불면 산의 먼지 냄새가 내려온다. 그날 아침은 남쪽에서 불고 있었다.

그녀는 물 항아리를 허리에 끼고 우물 쪽으로 걸었다. 우물까지는 스무 걸음이었다. 이 스무 걸음을 그녀는 지난 10년 동안 하루에 서너 번씩 걸었다. 돌바닥의 어느 돌이 조금 기울어 있고, 어느 지점에서 왼발을 약간 돌려야 하는지 그녀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았다. 다리가 몸보다 먼저 알고 있는 길이었다.

물을 채워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문 옆에 걸려 있는 남편의 겉옷을 보았다. 그 옷은 네 밤 동안 거기 그렇게 걸려 있었다. 네 밤 전에 남편이 집을 나갔고,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옷에는 아직 생선 냄새가 남아 있었다. 빨아야 할 때를 놓치면 그 냄새가 천에 박힌다. 그녀는 오늘은 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말은 그녀 안에서 무게를 잃은 지 오래였다. 네 날 동안 그녀는 매일 오늘은 빨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매일 빨지 않았다.

부엌으로 돌아와 그녀는 반죽을 시작했다. 밀가루를 한 움큼 덜어 낸다. 물을 조금씩 붓는다. 손가락 끝에 가루가 뭉치기 시작한다. 반죽의 처음은 언제나 손가락 끝이다. 손바닥이 움직이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며칠 전의 그 저녁이 다시 떠올랐다. 남편이 돌아와 그녀에게 그 한 마디를 전했던 저녁.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녀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말을 전한 뒤 남편이 저녁 식탁에 앉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부엌문 쪽에 서서 마당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날 저녁을 차렸지만 그는 먹지 않았다. 그녀는 그릇을 치우지 못하고 한참 그대로 두었다. 밥이 식었다. 그녀는 식은 밥을 혼자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은 집을 나갔다.

2. 어머니의 방

어머니는 앓고 있었다.

열병이 시작된 것은 남편이 집을 나간 날 아침이었다. 처음에 어머니는 별것 아닌 감기라고 했고, 그녀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틀째부터 어머니는 말이 없어졌다. 사흘째부터는 물도 거의 넘기지 못했다. 열은 낮에는 조금 내렸다가 밤이 되면 다시 올랐다.

그녀는 반죽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의 공기가 탁했다. 열이 오를 때 나는 특유의 짙은 냄새가 있다. 그녀는 문 옆의 작은 창을 조금 열었다. 빛이 방 안으로 들어와 어머니의 침상 끝에 가늘게 떨어졌다. 어머니는 자고 있지 않았다. 눈을 반쯤 뜨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침상 옆에 앉았다. 이불을 어머니의 가슴까지 끌어 올렸다. 어머니의 손이 이불 위에 놓여 있었다. 왼손이었다.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떨림은 일정하지 않았다. 네 손가락 중 집게손가락이 가장 많이 떨렸고, 약지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 떨림을 한참 보았다. 그 떨림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손을 잠시 잡았다. 손은 뜨겁기도 했고 서늘하기도 했다. 열병의 손은 언제나 그렇다. 어느 부분이 뜨겁고 어느 부분이 서늘한지를 구분하려 하면 그 구분이 흐트러진다. 그녀는 어머니의 손을 다시 이불 속에 넣었다. 어머니의 눈이 한 번 그녀를 향했다가 다시 천장으로 돌아갔다.

곧 나아지실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3. 오후

정오가 지났을 때 그녀는 빵을 두 번 굽고 있었다.

첫 번째 빵은 이미 화덕에서 나와 식고 있었고, 두 번째 반죽이 화덕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빵이 필요한 이유를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남편이 집에 없으므로 식구는 둘뿐이었고, 어머니는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두 번째 반죽을 만들었다. 손이 혼자 움직이는 날들이 있다.

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었다. 다섯이거나 여섯이었다. 그녀는 처음에 그 발소리가 자기 집 쪽으로 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버나움은 좁은 마을이라 어느 집 앞이든 사람이 지나갔다. 그러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어느 순간 그녀는 그 발소리들이 그녀의 집 앞에서 멈추는 것을 알았다.

문이 열렸다.

그녀의 눈은 먼저 남편의 얼굴을 찾았다. 네 밤 만이었다. 시몬은 문 안쪽으로 들어서고 있었지만, 그의 자세는 어딘가 한 박자 뒤에 있었다. 평소의 시몬이라면 가장 먼저 부엌 쪽으로 성큼 걸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한 사람 뒤에 서서 걷고 있었다. 그 한 사람은 이미 집 안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나중에 보았다.

그 사람은 낯선 사람이었다. 키는 특별히 크지 않았다. 옷은 평범한 순회 선생의 옷이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 곁눈으로 보았다. 얼굴은 평범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이 그 사람의 뒤에 서 있는 방식이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식이었다. 시몬은 그녀의 남편이었고, 그녀는 15년 넘게 그를 보아왔다. 남편이 누군가의 뒤에 서 있을 때의 자세를 그녀는 전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그 자세를 모르는 것으로 보았다.

낯선 사람의 뒤로 안드레가 들어왔고, 그 뒤로 두 사람이 더 들어왔다. 그녀는 나중에 그들을 야고보와 요한이라고 알게 될 것이었다. 다섯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다섯 사람의 중심에 있는 것은 분명히 낯선 사람이었다. 시몬은 그녀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녀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네 밤 동안 돌아오지 않은 남편에게 먼저 할 말이 그녀에게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말이 지금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나올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 안드레였던 것 같다 ― 낯선 사람에게 어머니의 열병에 대해 말했다. 낯선 사람이 고개를 돌려 어머니의 방 쪽을 보았다. 그리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앞장선 자는 낯선 사람이었다.

4. 문턱

그녀는 부엌에 서 있었다.

낯선 사람이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녀는 등 뒤로 느꼈다. 정확히는 보지 않았다. 발소리로 알았다. 그 발소리 뒤에 시몬과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가 이어졌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 몇 사람이 들어가는 소리.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부엌의 다른 쪽을 보았다. 물 항아리가 거의 비어 있었다. 물을 길어 와야 했다. 그녀는 빈 항아리를 집어 들었다. 항아리의 나무 손잡이가 그녀의 손바닥에 익숙하게 들어맞았다.

그녀는 부엌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 ―

방에서 소리가 났다. 큰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소리였다. 손이 손에 닿는 소리. 그리고 그 뒤에 어머니의 숨소리가 ― 달라졌다. 얕고 거친 숨에서 고른 숨으로. 며칠 만이었다.

그녀는 문턱에 서 있었다. 한 발은 안에, 한 발은 밖에 있었다.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그녀에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항아리를 들고 서 있었다.

어머니의 방에서 누군가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이불을 젖히는 소리, 맨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 그리고 방문이 열렸다.

어머니가 방에서 걸어 나왔다.

어머니는 그녀를 보았다. 두 여인은 부엌의 양끝에서 서로를 보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녀 곁을 지나 부엌 한쪽의 선반으로 걸어갔다. 며칠 만에 어머니의 맨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였다. 그녀는 그 발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어머니의 평소 발소리였다.

어머니는 선반에서 나무 쟁반 하나와 포도주 주전자 하나를 꺼냈다. 쟁반 위에 아침에 구워 식어 가던 빵 몇 조각과 무화과 몇 알을 올려놓았다. 어머니의 손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해 오던 일을 오랜만에 다시 하는 손의 속도였다. 어머니는 쟁반을 들고 부엌문 쪽으로 걸어가 마당으로 나갔다.

그녀는 문턱에서 그 장면을 보았다. 마당의 낮은 돌상 쪽에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시몬, 안드레, 두 사람, 그리고 낯선 사람. 어머니는 그들 앞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 낯선 사람 앞에 빵 한 조각을 먼저 놓았다.

손님 중 한 사람에게 빵을 먼저 내는 것은 이 집안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주인이 하는 일이지 방금 열병에서 일어난 여자가 하는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왜 그 낯선 사람 앞에 먼저 빵을 놓았는지 ― 그 다섯 사람 중에 그 사람을 먼저 대접해야 할 사람으로 알아본 이유가 무엇인지 ― 그녀는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것이 그날은 많았다.

그녀는 여전히 항아리를 들고 문턱에 서 있었다. 그녀는 뒤늦게, 한 박자 늦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우물 쪽으로.

우물의 돌은 차가웠다. 그녀는 두레박을 내리고 물을 길었다. 두 번, 세 번 길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이었다. 오늘은 사람이 많으니까,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 생각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그녀 자신도 몰랐다.

5. 반죽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마당에서 부엌으로 돌아와 있었다.

빈 쟁반이 선반에 올려져 있었다. 마당 쪽에서는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의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말의 리듬만 들렸다. 어머니는 이제 나무 그릇을 꺼내고 밀가루를 덜어 내기 시작했다. 저녁 빵을 준비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항아리를 내려놓았다.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물을 조금씩 부어 주었다. 너무 많이 부으면 반죽이 질어지고, 너무 적게 부으면 마른다. 어느 순간에 손을 멈추어야 하는지는 반죽을 하는 사람만 안다. 그녀는 어머니의 손을 보며 물의 양을 조절했다.

어머니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도 말하지 않았다. 두 여인 사이에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었다. 말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그 자리를 채울 말이 두 사람 모두에게 없었을 뿐이다.

반죽이 한 덩어리로 뭉쳐지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그것을 치대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손바닥으로 누르고, 뒤집고, 다시 누르고. 그 리듬을 그녀는 듣고 있었다.

그 리듬은 그녀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리듬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어디에서 들은 리듬인지 즉시 떠올리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몸 안 어딘가가 그 리듬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멈춤. 그리고 다시 한 번, 두 번, 세 번.

그것은 남편이 그물을 끌어올릴 때의 박자였다. 그녀가 그것을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 박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박자는 어딘가로 멀어졌을 것이다.

밖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소리가 들렸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집 앞마당에 발소리들이 모이고, 목소리들이 오가고 있었다. 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부엌에서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도 부엌에서 나가지 않았다. 두 여인은 반죽을 계속했다.

6. 밤

해가 졌다.

가버나움의 해는 호수 위로 진다. 물 위에 붉은 선이 한 번 그어졌다가 사라지고, 그다음에 파랗게 어두워진다. 그녀는 부엌 창을 통해 그 파란 어둠을 한 번 보았다.

집 앞마당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온 동네가 온 것 같았다. 병자를 들것에 실어 온 사람도 있었고, 부축을 받아 걸어온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울고 있었고, 어떤 이는 그저 서 있었다. 그녀는 부엌의 창 옆에 서서 그 광경을 내다보았다. 창은 작았고, 창의 한쪽만 보였다.

낯선 사람이 마당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사람들이 그의 쪽으로 차례차례 나아갔다. 낯선 사람이 손을 얹거나, 무언가를 말하거나, 그저 보기만 하거나 했다. 그녀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보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시몬이 낯선 사람 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15년 넘게 보아왔다. 남편이 잠을 자는 얼굴, 일을 하는 얼굴, 배고플 때의 얼굴, 화날 때의 얼굴, 그녀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의 얼굴 ― 그녀는 그것들을 전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남편의 얼굴은 그 모든 얼굴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 얼굴은 그녀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창가에서 물러섰다. 그녀의 손은 부엌 선반의 가장자리를 잡고 있었다. 선반의 나뭇결이 그녀의 손바닥에 닿았다. 그녀는 그 나뭇결을 한참 느꼈다.

그녀는 부엌의 화덕 쪽으로 걸어갔다. 숯이 거의 다 타 있었다. 내일 아침에 빵을 구우려면 새 숯을 넣어 두어야 했다. 그녀는 숯 통에서 숯 세 개를 꺼내 화덕에 넣었다. 숯이 가라앉을 때 나는 작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매일 저녁 이 시각에 부엌에서 나는 소리였다. 오늘도 그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이미 방으로 돌아가 누워 있었다. 어머니는 몇 시간 전까지 열병으로 누워 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잠을 자고 있었다. 잠든 사람의 숨소리가 방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그 숨소리는 고르고 평화로웠다.

7. 새벽과 다음 날

닭이 한 번 울었을 때 그녀는 잠에서 깼다. 혹은 이미 깨어 있었다. 그녀 자신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새벽 첫 기운이 오기 전의 가장 짙은 어둠이었다. 그녀는 침상에 누워 있었거나, 혹은 일어나 앉아 있었거나, 혹은 부엌에 있었다. 그날 밤의 그 시각에 그녀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그녀도 나중에 확정하지 못했다. 어떤 기억은 확정되지 않는다.

발소리가 났다. 한 사람이었다. 맨발이거나 가벼운 신발이었다. 부엌을 지나 문 쪽으로 가는 발소리. 그 발소리는 최대한 조용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조용하려 애쓰는 발소리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들리는 법이다.

문이 열렸다. 아주 짧게. 바깥 공기가 잠시 들어왔다. 그리고 문이 다시 닫혔다.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 동안 자기 자신의 숨소리만 들었다.

그리고 다른 발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한 사람이 아니라 몇 사람이었다. 두 명, 어쩌면 세 명. 앞선 발소리를 따라가는 발소리였다. 그 중에 시몬의 발소리가 있었다. 그녀는 시몬의 발소리를 알았다. 15년 동안 그녀가 매일 들어 온 소리였다. 시몬은 그녀의 침상 곁을 지나갔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멈추지 않는 것을 알았다.

문이 다시 열렸다 닫혔다. 그리고 집이 조용해졌다.


아침이 왔다.

그녀는 일어났다. 혹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부엌으로 걸어가 물 항아리를 확인했다. 절반이 차 있었다. 우물에 갔다. 항아리를 마저 채워 왔다. 돌아와서 밀가루를 꺼내 반죽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방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이 밀가루 그릇 쪽으로 갔다. 두 여인은 부엌에 함께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물을 붓고, 한 사람은 반죽을 했다. 말은 없었다.

그녀는 한 번 창 쪽을 보았다. 창 너머로 갈릴리 호수의 일부가 보였다. 아침 안개가 옅게 떠 있었고, 그 안개 아래로 물결이 잔잔히 흔들렸다. 시몬의 배는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다른 어부들의 배가 몇 척 있었다. 시몬의 배가 아니었다.

그녀는 창에서 눈을 뗐다. 부엌 한가운데에서 어머니의 손은 이미 반죽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손가락 끝과 손바닥이 어제 저녁의 그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멈춤. 다시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나 그녀는 그 손을 보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는 보던 자리였다. 오늘 아침에는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그녀의 시선은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피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것들은 한 번 본 뒤에 다시 보아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필요가 없어진 것을 몸이 먼저 안다.

그녀는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식탁 위에 세 개의 그릇을 놓았다. 어머니의 자리, 자신의 자리, 그리고 남편의 자리. 남편의 자리의 그릇은 며칠째 거기 있었다. 그녀는 그 그릇에 빵 한 조각을 놓았다. 그 동작은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녀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창밖에서 호수의 물결이 한 번 더 쳤다. 그녀는 자기 빵을 한 조각 떼었다.

제4편

빌려준 하루

나귀 주인
눅 19

1. 매듭

벳바게의 아침은 바람보다 빛이 먼저 오는 아침이다.

나는 해가 동쪽 언덕 위로 반쯤 올라오기 전에 이미 마당에 나와 있었다. 우리 집은 벳바게의 북쪽 끝에 있고, 집 옆에는 올리브나무로 만든 말뚝이 박혀 있다. 말뚝은 내 아버지가 박았다. 아버지가 그것을 박을 때 나는 열한 살이었고, 아버지 옆에서 돌을 잡아 주었다. 말뚝의 위쪽에는 30년 동안 수없이 많은 밧줄이 매였다가 풀렸다. 매일 조금씩 닳아서 지금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가 움푹 파여 있다. 그 움푹 파인 자리가 내 밧줄이 가장 편하게 걸리는 자리다.

나는 나귀 두 마리를 그 말뚝에 맨다. 한 마리는 어미고, 한 마리는 새끼다. 어미는 올해로 다섯 해째 나와 함께 일한다. 새끼는 올봄에 태어났고, 아직 누구도 그 등에 앉아 본 적이 없다.

나는 먼저 어미를 맨다.

어미의 매듭은 단단하다. 어미 나귀는 자기 의지가 있어서, 매듭이 조금이라도 느슨하면 그 사실을 한 시간 안에 알아챈다. 알아채면 그는 목을 비틀어 밧줄을 당긴다. 당기기 시작하면 그 뒤의 모든 일은 나귀 마음이다. 그래서 어미의 매듭은 단단해야 한다. 나는 밧줄의 끝을 두 바퀴 감고, 한 번 안쪽으로 꺾고, 그 꺾인 부분을 다시 바깥쪽으로 통과시킨다. 이 방식은 아버지가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는 자기가 배운 대로 나에게 가르쳤고, 아버지도 자기 아버지에게서 이 방식을 배웠다고 했다. 나는 몇 대째인지 세어 본 적이 없다. 몇 대째라는 것이 이런 매듭에 붙을 수 있는 단어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음은 새끼다.

새끼의 매듭은 느슨하다. 느슨하게 매지 않으면 새끼는 겁을 먹는다. 어린 나귀에게 겁은 평생 그의 몸 안에 남는다. 한 번 겁을 먹은 새끼는 그 다음부터 사람을 의심하고, 의심하는 나귀는 일하는 나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새끼의 목줄을 아주 부드럽게 감는다. 새끼가 조금만 당겨도 밧줄이 약간 미끄러지도록. 당겼을 때 빠지지는 않지만, 저항이 거의 느껴지지 않도록. 이 경계의 묘한 지점을 찾는 것이 새끼의 주인이 배우는 첫 번째 일이다.

아침에 나는 이 두 개의 매듭을 맨다. 첫 번째 매듭이다.

손바닥에 밧줄의 섬유가 박힌다. 새끼 나귀용 밧줄은 낡아서 섬유가 많이 일어나 있다. 그 일어난 섬유의 끝이 손바닥의 가장자리를 작게 찔렀다가 빠진다. 찔림이라기보다는 눌림에 가깝다. 나는 그 눌림을 30년 가까이 알고 있다. 내 손바닥의 그 부분은 이제 그 눌림에 맞추어 살짝 굳어 있다.

2. 아내의 빵

매듭을 마치고 나는 집 안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화덕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어제 저녁에 반죽해 둔 덩어리를 화덕 안쪽 벽에 붙이는 중이었다. 우리 집 화덕은 낮고 입구가 좁아서, 빵을 붙일 때 아내는 몸을 반쯤 숙여야 한다. 아내의 어깨가 아침 햇빛 한 줄 아래에서 얇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은 밭에 가는 거예요.” 아내가 말했다. 묻는 말인지 확인하는 말인지 나는 구분하지 못했다. 그런 말투가 아내의 아침 말투다.

“응.” 내가 대답했다. “남쪽 밭의 돌을 치워야 해. 어제까지 반쯤 치워 놨어.”

“새끼도 같이 데려가요?”

“오늘은 안 데려가. 아직 일할 때가 아니야.”

아내는 대답하지 않고 화덕 쪽으로 몸을 더 숙였다. 빵이 벽에 붙는 작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아침마다 우리 집 부엌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식탁 쪽으로 가서 어제 저녁에 남긴 올리브 몇 알과 물 한 잔을 먼저 먹었다. 아침 빵은 아직 구워지지 않았다. 아침 빵이 구워지려면 한 식경쯤 더 기다려야 했다. 나는 오늘은 그 식경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밭에 가기 전에 아내가 구운 빵을 가방에 넣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때 마당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3. 두 사람

발소리는 두 사람이었다.

발소리는 말뚝 쪽에서 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웃집 사람이 뭔가를 빌리러 온 것인 줄 알았다. 벳바게는 작은 마을이라 이웃끼리 물건을 빌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물그릇 하나, 빵 한 덩이, 소금 한 줌 같은 것들이 매일 이 집과 저 집 사이를 오갔다.

그러나 발소리는 문 쪽으로 오지 않았다. 발소리는 말뚝 앞에 멈추었다.

나는 올리브를 씹다가 멈추었다. 아내도 화덕 앞에서 고개를 조금 돌렸다. 우리 둘 다 동시에 같은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부부가 한 집에서 오래 살면 이런 작은 일치가 생긴다.

나는 일어나 마당 쪽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나보다 키가 조금 작았고, 다른 한 사람은 비슷했다. 두 사람 모두 낯선 얼굴이었다. 벳바게는 작은 마을이라서 낯선 얼굴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두 사람은 벳바게 사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은 이미 어미 나귀의 매듭에 손을 대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새끼 나귀 쪽에서 밧줄을 풀려는 참이었다.

나는 멈추어 섰다.

“그걸 무엇에 쓰시려고요.” 내가 물었다.

내 목소리는 평소의 내 목소리였다. 마당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내는 평범한 목소리. 화난 소리도 아니고 놀란 소리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 소리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내 목소리는 평평했고, 그 평평함이 그 순간에 적절했는지 아닌지는 나도 판단할 수 없었다.

어미 나귀 쪽에 선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손을 매듭에서 떼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 끝으로 매듭의 안쪽을 더듬고 있었다. 내 매듭은 바깥에서 보면 단단해 보이지만, 안쪽에 아주 작은 고리가 하나 숨어 있다. 그 고리를 알고 있는 사람만 쉽게 풀 수 있다. 그 고리는 우리 집안 세 대가 써 온 방식이었고, 나는 이 방식을 바깥 사람에게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런데 그 남자의 손가락은 그 고리를 찾고 있었다. 정확히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찾고 있는 중이었다. 두 번째 매듭이었다. 나의 것이 아닌 손이 푸는 매듭.

남자가 대답했다.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

그 말이 공중에 짧게 놓였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이상함을 이상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라는 한 문장이 왜 그 순간 나에게 충분했는지 나는 지금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때 나의 의식이 향한 곳은 그 말이 가리키는 “주님”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내 의식은 그 남자의 손가락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매듭의 안쪽 고리를 찾고 있는 방식. 그 방식이 내가 30년 가까이 해 온 방식과 어딘가 조금 달랐다는 것. 그 작은 차이가 내 머릿속을 채웠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가서 내 손을 내밀었다.

“이쪽입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그 남자의 손가락을 살짝 옆으로 밀고, 내 엄지로 매듭의 안쪽 고리를 짚었다. 그 자리가 내 손에게는 너무 쉬웠다. 나는 고리를 당겼다. 매듭이 풀렸다. 어미 나귀의 목에서 밧줄이 한 번 흔들리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나는 새끼 나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른 남자가 비켜섰다. 나는 새끼의 느슨한 매듭을 풀었다. 새끼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원래 느슨한 매듭이었으니까.

두 남자가 밧줄의 끝을 잡았다.

그들은 나에게 감사의 말 같은 것을 길게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다른 한 사람은 나와 눈이 한 번 마주쳤다가, 그 눈을 나귀 쪽으로 돌렸다. 두 사람은 나귀 두 마리를 이끌고 마당을 지나 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새끼 나귀는 처음에 한 번 머뭇거렸지만 어미가 앞서 걷는 것을 보고 따라 걸었다. 새끼 나귀가 사람 앞에서 머뭇거림 없이 따라 걷는 것은 내 경험상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그 드묾을 나는 그때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날 아침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4. 빈 말뚝

마당에 혼자 남자 말뚝이 비어 있었다.

나는 말뚝 앞에 서 있었다. 두 개의 밧줄은 땅에 떨어진 그대로였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웠다. 어미 나귀 용 밧줄은 짧고 굵었고, 새끼 나귀 용 밧줄은 조금 더 가늘고 섬유가 일어나 있었다. 나는 두 밧줄을 손에 들고 잠시 그 무게를 느꼈다. 무게랄 것도 없는 무게였다. 그러나 그 무게가 갑자기 내 손에 분명했다.

나는 말뚝의 움푹 파인 자리를 손가락으로 한 번 훑었다. 손끝에 매끄러움이 닿았다. 오래 닳은 나무 특유의 매끄러움이다. 아무것도 매여 있지 않은 말뚝을 내가 이런 식으로 만진 적이 있었는지 나는 떠올리려 했다.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가 이 말뚝을 박은 날 이후로는 없었을 것이다. 그날도 나는 열한 살이었고 아버지 옆에서 돌을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내가 마당 쪽으로 나와 있었다. 손에 아직 굽지 않은 빵 반죽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누구예요.” 아내가 물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모르는 사람들인데 나귀를 준 거예요?”

“그렇게 됐어.”

아내는 잠시 나를 보았다. 그녀는 여러 말을 할 수 있었다. 왜 그랬냐고 물을 수도 있었고, 오늘 밭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었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중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부부로 산 14년 동안 아내는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한두 걸음 물러서는 법을 배웠다. 나도 그녀가 그런 일을 할 때 물러서는 법을 배웠다. 그 물러섬은 무관심이 아니었다. 물러섬에도 배움이 필요하다.

아내는 화덕 쪽으로 돌아갔다. 잠시 뒤 빵 굽는 냄새가 마당 쪽으로 나왔다. 나는 밧줄 두 개를 말뚝 옆 바닥에 걸쳐 두었다. 상자에 넣어 두려다가 말았다. 상자에 넣으면 저녁에 꺼낼 때 손이 한 번 더 가야 한다. 그게 왜 지금 중요한지는 나도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손이 상자 쪽으로 가지 않았다.

5. 오전

나는 밭에 가지 않았다.

밭에 가려면 어미 나귀가 필요했다. 남쪽 밭의 돌은 어미 나귀가 수레를 끌어야 치울 수 있는 크기였고, 수레가 없으면 내 어깨로 옮기는 데 하루로는 부족했다. 오늘은 돌을 치우는 날이 아니었다.

해가 올라왔다.

벳바게의 오전은 조용하다. 남자들은 대부분 밭이나 감람 동산으로 나가 있고, 마을 안에는 여자들과 아이들만 남는다. 멀리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한 번 났다가 금방 그쳤다. 어느 집 여자가 누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정도가 우리 마을 오전의 모든 소리다. 나는 평소 이 시각에 밭에 있었기 때문에 마을 안쪽의 오전 소리를 오랫동안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처음으로 오래 들었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멀리서 다른 소리가 들렸다.

벳바게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진 감람 산의 뒷자락에 있다. 감람 산이 사이에 있기 때문에 보통 예루살렘의 소리는 우리 마을까지 잘 올라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의 공기는 이상하게 얇았다. 바람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지 않고 그 반대로 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쪽에서 올라온 바람이 감람 산을 넘을 때 소리를 데리고 왔다.

사람들이 내는 큰 소리였다. 한두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수백 명이,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는 소리였다. 정확한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소리의 내용은 거리 때문에 녹아 있었고, 다만 그 리듬만 우리 마을까지 올라왔다. 리듬은 네 박자였다. 네 박자의 어떤 구호가 반복되고 있었다. 뒤로 갈수록 소리는 커졌고, 어느 순간 한 번 크게 올라갔다가 다시 잦아들었다.

나는 말뚝 옆에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무엇인지 나는 짐작하려 하지 않았다. 짐작은 종종 틀린다. 그리고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일은 그 순간 나에게 허락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다만 소리가 벳바게 쪽으로 올라오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는 것만 알았다. 그 소리는 우리 마을을 건드리지 않고 예루살렘 쪽에 머물러 있었다.

이웃집 노인이 지나가며 나를 보았다.

“밭에 안 나갔소?” 그가 물었다.

“오늘은 안 나갔습니다.”

“저 소리 들었소?”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아시오?”

“모르겠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자기 길을 갔다.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이 우리 마을의 오래된 예의였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나는 그 예의를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6. 무화과

오후에 나는 집 뒤쪽의 작은 무화과밭을 정리했다.

밭에 가지 못했지만 집에 있는 것도 잘 안 되어서, 손에 일을 붙이기 위해 가까운 것을 찾았다. 무화과밭은 집 뒤에 여섯 그루가 있다. 올해는 늦게 맺힌 나무가 두 그루 있고, 벌레가 한 그루를 먹고 있었다. 나는 벌레 먹은 나무의 가지를 가지치기했다. 가위를 쓰지 않고 손으로 꺾었다. 벳바게의 무화과 가지는 손으로 꺾기에 적절한 굵기다. 꺾는 소리가 맑게 났다. 맑게 난다는 것은 가지가 건강하다는 뜻이다. 건강한 가지에서 벌레가 먹는 일이 생기는 이유를 나는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건강한 것 안에 먼저 벌레가 들어가는 일이 세상에는 흔하다는 것을 아버지가 한 번 말한 적이 있다.

무화과 가지를 꺾는 동안 내 손은 계속 매듭을 그렸다. 엄지와 검지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손이 보이지 않는 밧줄을 쥐고 안쪽 고리를 당기는 흉내를 냈다. 나는 그것을 의식했을 때 손을 멈추었다. 손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내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손이 혼자 움직이는 날들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아내가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물을 마셨다. 물은 미지근했고, 미지근한 물이 목을 지나갈 때 나는 낮의 시간을 조금 더 분명하게 느꼈다.

“해가 많이 기울었어요.” 아내가 말했다.

“그러게.”

“저 소리는 이제 안 들려요.”

나는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오후 중반쯤부터 예루살렘 쪽의 소리는 잦아들어 있었다. 무슨 소리가 어떻게 끝났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끝났다는 것만 알았다. 끝나는 것은 시작되는 것보다 더 조용하다. 대부분의 큰 일들이 그렇다.

7. 돌아옴

해가 감람 산 너머로 기울기 시작했을 때, 마당 쪽에서 발소리가 다시 났다.

두 사람이었다. 아침의 그 두 사람이었다. 나는 얼굴로 알아본 것이 아니라 발소리로 알아보았다. 그들은 아침에 왔던 걸음걸이로 다시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사람 사이에 나귀 두 마리가 있었다.

어미 나귀는 땀에 젖어 있었다. 새끼 나귀의 등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등의 털이 한쪽으로 쓸려 있었다. 누가 그 위에 무언가를 놓았던 자리였다. 겉옷 같은 것이 얹혀 있었던 자국이었다. 그 자국을 나는 본 적이 있었다 ― 아버지가 처음으로 새끼 나귀에게 짐을 실었던 날의 자국과 비슷했다.

두 남자는 말뚝 앞에 나귀들을 세웠다.

“고맙습니다.” 한 남자가 말했다. 아침에 눈이 마주쳤던 그 남자였다. 그 말은 짧았다. 짧은 감사는 때때로 긴 감사보다 더 정확하다. 그는 그 말을 한 뒤에 나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고, 다른 한 사람도 같은 동작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길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의 뒷모습은 올 때와 비슷한 속도로 멀어졌다. 감람 산의 서쪽 길로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나귀 두 마리 앞에 섰다.

어미 나귀의 숨은 조금 거칠었다. 새끼 나귀의 숨은 의외로 고르다. 새끼 나귀는 고개를 낮추고 땅을 살짝 보고 있었다. 새끼 나귀들이 처음 큰 일을 하고 돌아오면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를 한다. 잔뜩 들떠서 귀를 쫑긋거리거나, 혹은 조용해진다. 이 새끼는 조용해져 있었다. 조용해진다는 것은 그 안에서 무엇이 지나갔다는 뜻이다. 무엇이 지나갔는지는 그 나귀만 알 것이다. 나는 그 무엇을 읽어 내려 하지 않았다. 새끼 나귀의 일은 새끼 나귀의 일이다.

나는 먼저 어미의 땀을 마른 천으로 닦았다. 어미는 가만히 서 있었다. 땀이 배에 몰려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꽤 걸은 것 같았다. 나는 어미의 옆구리에 손을 잠시 얹었다. 옆구리는 뜨거웠다. 뜨거운 것이 자연스러운 열기였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새끼 나귀의 등에 남은 쓸린 자국을 나는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털의 결을 원래대로 정돈하기 위해서였다. 털의 결이 한 방향으로 쓸려 있을 때 손바닥으로 반대쪽으로 한 번 쓸면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오늘 그 털은 쉽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쪽 방향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상태였다. 나는 손을 두 번 더 움직였고,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털이 조금씩 돌아왔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완전히 돌아오지 않는 것을 나는 억지로 돌리려 하지 않았다.

8. 저녁 매듭

나는 어미 나귀의 매듭을 다시 맸다. 세 번째 매듭이었다.

밧줄의 끝을 두 바퀴 감는다. 한 번 안쪽으로 꺾는다. 꺾인 부분을 바깥쪽으로 통과시킨다. 아침과 같은 방식이었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방식이고, 30년 가까이 매일 내 손이 해 온 방식이었다.

매듭이 완성되었을 때, 나는 그 매듭이 아침의 매듭보다 한 박자 더 단단해진 것을 보았다. 한 박자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매듭에 박자라는 것은 없다. 다만 내 손가락이 마지막에 꺾은 부분을 한 번 더 당긴 것 같았다. 그 한 번이 언제 더해졌는지 나는 몰랐다. 아침에는 그 한 번이 없었다. 저녁에는 있었다. 그 차이가 왜 생겼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물으려 했을 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입이 열리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날이 있다. 그 이유를 그날 밤에는 찾지 않는 것이 옳다고 나는 생각했다. 옳다는 말도 정확한 말은 아니다. 그저 그날 밤에는 그렇게 했다.

새끼의 매듭 차례였다.

나는 평소대로 새끼의 목줄을 느슨하게 감으려 했다.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이 평소의 지점에서 멈추지 않았다. 손이 한 번 더 감았다. 느슨함이 사라지고, 매듭이 어미의 매듭만큼 단단해졌다. 나는 손을 멈추고 그 매듭을 보았다.

이 매듭은 내가 새끼 나귀를 위해 만든 적이 없는 매듭이었다. 14년 동안 새끼 나귀 여섯 마리를 훈련시키며 나는 이 매듭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나는 그 매듭을 풀었다가 다시 느슨하게 맬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풀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풀고 싶지 않았다.

새끼 나귀는 당기지 않았다. 느슨하지 않은 매듭이 그의 목을 조이지 않는 것처럼 그는 가만히 서 있었다. 새끼는 겁을 먹지 않았다. 그의 눈은 잠깐 내 쪽을 향했다가 다시 정면의 어둠을 향했다.

나는 손을 내렸다.

9. 밤

밤이 되었다.

나는 집 안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아내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나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밥그릇에 숟가락이 닿는 소리, 빵을 찢는 소리, 물을 넘기는 소리가 우리 둘 사이에 있었다. 그 소리들은 14년째 저녁의 소리들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어미 나귀는 말뚝 옆에 서서 잠들어 있었다. 나귀는 자주 서서 잔다. 새끼는 앉아서 잠들어 있었다. 두 매듭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나는 말뚝 옆에 잠시 서 있었다. 바람이 감람 산 쪽에서 가볍게 내려왔다. 예루살렘 쪽의 하늘은 어두웠고, 한쪽 끝에 별이 두세 개 나와 있었다. 별 하나가 깜박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별은 깜박이지 않는다. 깜박이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이다.

나는 손바닥을 새끼 나귀의 콧등에 잠시 얹었다. 콧등은 따뜻했다. 나귀의 콧등은 언제나 사람의 손바닥보다 조금 더 따뜻하다. 그 온도를 나는 30년 가까이 알고 있다.

손을 내렸다. 매듭은 단단했다. 새끼 나귀가 숨을 한 번 고르게 내쉬었다. 그 숨소리는 말뚝 옆의 밤 공기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제5편

꿈을 꾼 여인

클라우디아 프로쿨라
마 27

1. 저녁

어머니께.

밤이 예루살렘 위에 내려앉았어요. 나는 관저 안쪽 방의 등잔 앞에 앉아 있습니다. 등잔의 심지가 조금 길어서 한 번씩 가늘게 흔들리면서 타고, 그럴 때마다 기름 냄새가 방 안에 얇게 쌓입니다. 이 편지를 내가 부칠지 부치지 못할지 나는 아직 모르겠어요. 부칠 수 있는 편지라는 확신이 없어서 내가 붓을 들기까지 한 시간쯤 머뭇거렸습니다. 머뭇거리다가 결국 들게 된 이유는, 지금 이 순간 내 손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내 손이 나를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였어요.

오른손 손바닥 안에는 작은 청동 열쇠가 있습니다. 관저에 온 다음 날, 내가 쓰는 방의 작은 상자 — 편지와 반지와 로마에서 가져온 말린 무화과를 담아두는 상자 — 의 열쇠로 받은 것입니다. 길이는 내 엄지손가락의 두 번째 마디쯤 되고, 손잡이 쪽이 작은 장미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어요. 예루살렘 장인이 만든 것인 듯합니다. 장미의 꽃잎이 다섯 개예요. 나는 이 열쇠를 보통 허리띠의 가죽 고리에 걸어 두는데, 지금은 손바닥 안에 꺼내 쥐고 있습니다. 왜 꺼냈는지는 나 자신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오늘 어느 순간부터 내 손이 자꾸 허리띠를 더듬었고, 더듬다가 열쇠를 풀어 손바닥으로 옮겼고, 그 뒤로는 옮겨진 채로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열쇠의 온도가 몇 번 변했어요. 그 변한 횟수를 내가 세어 두었다는 사실이 지금은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왜 세고 있었을까요. 왜 셀 수밖에 없었을까요.

어머니, 오늘 이상한 하루가 있었어요. 나는 그것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시작부터는 하지 못하고, 먼저 이 방의 이야기부터 쓸게요. 방과 관저와 요리사와 우유에 대해서요. 내가 어머니께 평소에 쓰는 편지는 언제나 그런 것들로 시작되잖아요. 오늘도 그렇게 시작해 볼게요. 그렇게 시작하면 진짜 쓰려던 이야기에 조금 천천히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요.

2. 이 도시에서의 우리

어머니는 아마 유월절의 예루살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실 거예요.

이 도시는 이 절기 동안 사람이 네 배가 됩니다. 성벽 안쪽은 골목이 막히고, 성벽 바깥의 언덕까지 순례자들이 천막을 치고, 양 냄새와 향신료 냄새와 어떤 날에는 피 냄새까지 공기에 섞여 있어요. 유대인들은 이 절기에 어린 양을 잡는다고 해요. 성전 쪽에서는 낮 동안 내내 짐승의 울음소리가 올라옵니다. 저녁이 되면 울음은 멎지만, 그 대신 가족 단위로 양을 구워 먹는 기름 냄새가 골목마다 퍼져요. 나는 처음에 그 냄새를 맡고 비위가 상해서 두 끼를 먹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익숙해졌어요. 익숙해진다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남편은 원래 이 절기에 카이사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유대 지방 총독부의 관례예요. 폭동이 일어나기 쉬운 시기에 총독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작년까지 나는 카이사레아에 남아 있었지만, 올해는 남편이 “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왜인지는 묻지 않았어요. 그 사람의 요청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고, 결혼한 지 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설명 없음을 어느 정도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혼자 있는 밤이 두려웠던 것 같아요. 두렵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런 부탁의 모양은 언제나 두려움의 모양이에요.

관저는 성 북쪽, 헤롯이 남긴 옛 궁궐의 한쪽에 있습니다. 방은 열다섯 개쯤 되고 정원은 두 개입니다. 바깥쪽 큰 정원에는 종려나무가 있고, 안쪽 작은 정원에는 분수가 있어요. 분수의 물은 위쪽 수도에서 공급돼요. 물맛은 로마의 우리 집 물보다 조금 떫어요. 어머니가 만약 이 물을 마시면 바로 얼굴을 찌푸리실 거예요.

요리사 — 그리스에서 온 마흔쯤의 남자인데, 이름은 네우마키오스입니다 — 는 매일 아침 나에게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줍니다. 나는 말린 무화과 두세 개와 함께 그 우유를 마셔요. 어머니가 내 결혼 전에 가르쳐 주셨던 그 습관이에요. “무화과는 아침에 세 개까지만 먹어라. 네 개부터는 속을 상하게 한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죠. 나는 아직도 그 말을 지켜요. 오늘 아침에도 나는 무화과 두 개까지만 먹었어요. 세 개째는 손끝에서 잠깐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상자에 넣었습니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쓰려고 해요.

결혼 전에, 어머니가 나에게 로마의 혼례식 전날 밤 해 주셨던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해요. “남편의 밤은 언제나 너의 낮보다 무겁단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시적인 비유인 줄 알았어요. 지금은 그것이 비유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밤에 종종 이를 갈고, 가끔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짧게 숨을 몰아쉬어요. 그러다가도 아침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관자놀이를 한 번 누르고, 나에게 따뜻한 아마포 물주머니를 받아서 나가요.

나는 어머니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이런 사소한 것들을 왜 쓰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유, 무화과, 요리사의 이름, 남편의 잠버릇, 관저의 방 개수. 나는 아마도 이런 것들부터 쓰지 않으면 진짜 쓰려던 이야기의 무게 앞에서 내 손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집을 떠나기 전에 의자를 가지런히 놓는 사람처럼, 나는 이 편지의 앞쪽에 사소한 것들을 가지런히 놓고 있는 거예요.

3. 그 꿈

어젯밤 나는 꿈을 꾸었어요.

꿈에 대해 나는 어머니께 자세히 쓸 수가 없어요. 자세히 쓸 만큼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것이 어떤 장면이었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장면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지금 내 머릿속에서 그 장면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있어요. 유리 조각 하나하나는 빛을 반사하지만, 그것들이 원래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나무 하나가 있었어요. 어떤 나무인지 모르겠어요. 잎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리브나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보다 줄기가 곧고 키가 큰 나무였어요. 그러나 그것도 확신할 수 없어요. 그 나무의 모양이 어떤 방식으로 내 가슴 안쪽에 찍혀 있고, 지금도 나는 가슴 쪽 어느 지점에 그 찍힌 자국을 느낍니다. 찍힌 자국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다른 말이 없으니까 이 말을 씁니다.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나는 꿈 안에서도 몰랐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 내 호흡을 가늘게 만들었어요. 얼굴이 없는데 어떻게 사람인 줄 알았느냐고 어머니가 물으신다면 나는 답할 수 없어요. 꿈 안에서 나는 그냥 알았어요.

피의 맛이 있었어요. 이것이 제일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에요. 나는 그것을 입 안에서 맛보았습니다. 쇠의 맛 같기도 했고, 짠맛 같기도 했고, 아주 오래된 잔의 바닥에 남은 찌꺼기의 맛 같기도 했어요. 꿈이 끝나고 깨어난 다음에도 그 맛이 한동안 혀에 남아 있었어요.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셔 보았는데 물맛 사이사이에 그 맛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 뒤로 한 시간쯤 지나서야 그 맛이 사라졌어요.

소리가 있었어요. 내 심장이 가슴 안쪽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꿈 안에서 들리다가, 꿈 바깥으로 넘어와서도 한동안 계속 들렸어요.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내 가슴 위에 손을 얹어 보았고, 손바닥에 그 박동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어요. 박동은 평소보다 빨랐어요. 빠르지만 흐트러지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너무 규칙적이어서 그 규칙성이 나를 무섭게 했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났어요. 방은 어두웠습니다. 옆에서 남편이 평소처럼 깊은 잠을 자고 있었고, 그의 숨소리는 고요했어요. 나는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놓인 등잔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 불이 붙는 동안 내 손이 조금 떨렸어요. 떨렸다는 사실 자체를 나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때는 떨리는 줄 몰랐어요. 떨리는 것과 떨리지 않는 것을 구분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불이 붙고, 방이 한 조각 희미해지고, 나는 침대 머리맡의 상자로 손을 뻗었어요. 그 상자에는 편지와 반지와 무화과가 들어 있는데, 나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상자에 달린 그 작은 청동 열쇠를 풀어, 허리띠 고리에서 분리해서, 손바닥 안에 쥐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어떤 것을 손에 쥐지 않으면 내 손이 나를 견디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열쇠는 그때 내 손보다 조금 차가웠어요. 그러나 한 호흡쯤 지나자 내 손의 열이 열쇠로 옮겨 가서 둘이 같은 온도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했어요. 도시의 소음이 평소보다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먼저, 그다음에 순례자들의 발자국 소리가, 그다음에 집 안쪽 요리사의 불 피우는 소리가 차례로 들려왔어요. 나는 그 모든 소리를 내 몸을 통과시키는 것처럼 들었습니다. 소리들이 귀로 들어와서 가슴 쪽으로 내려갔다가, 아까 그 찍힌 자국 근처에서 한 번 멎었다가, 다시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어요.

4. 아침의 전갈

아침에 남편은 재판이 있다고 말했어요.

남편은 아침에 말을 많이 하지 않아요. 아침은 그에게 가장 힘든 시간입니다. 두통 때문이에요. 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방을 나가곤 하는데, 나는 결혼 초에 그것을 위해 따뜻한 아마포 물주머니를 준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물을 데우고, 아마포를 적시고, 물기를 짜서, 그의 관자놀이에 얹어 주면 그는 한 호흡을 내쉰 뒤에 고맙다는 말 없이 나가요. 그 “고맙다는 말 없음”이 그의 감사의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오래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로 감사를 표현하면 그 감사가 줄어든다고 어딘가에서 믿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것은 그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그렇게 했어요. 아마포 물주머니를 그의 관자놀이에 얹어 주었고, 그는 한 호흡을 길게 내쉬었어요. 그리고 방을 나가려 했습니다. 그가 문에 손을 대는 순간 내가 물었어요.

“누구의 재판이에요?”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어요. 이런 질문을 내가 한 것은 드문 일입니다. 나는 보통 그의 일을 묻지 않아요. 묻는 것은 그에게 부담이 되고, 그 부담은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내 입이 먼저 움직였어요. 질문이 나온 뒤에야 나는 내가 질문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그는 문 쪽을 향한 채로 “나사렛 사람” 하고 짧게 말했습니다. 두 단어였어요. “나사렛.” “사람.” 그리고 그는 나갔어요.

나사렛 사람.

그 두 단어를 듣는 순간 내 손바닥 안의 청동 열쇠가 한 번 쥐어졌어요. 내가 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이 스스로 그렇게 했어요. 나는 열쇠가 손바닥의 살을 누르는 감각을 한참 뒤에야 알아차렸습니다. 장미 모양의 손잡이 끝이 새끼손가락 아래쪽에 작은 자국을 남겼습니다.

나는 네우마키오스를 불렀어요.

“가장 빠른 메신저를 불러 주세요.”

네우마키오스는 내 얼굴을 한 번 보았어요. 평소에 내가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부엌 쪽으로 나갔습니다. 얼마 뒤에 메신저가 왔어요. 열일곱쯤 된 아이였고, 맨발이었고, 얼굴에 아침 햇빛이 비스듬히 닿아 있었어요. 관저에는 언제나 대기 중인 메신저가 몇 있습니다. 그중 한 아이였어요.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어요.

“지금 바로 재판정으로 가세요. 총독께 직접 이 말을 전하세요.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외울 수 있겠어요?”

아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습니다.

나는 천천히 말했어요. 한 단어씩, 마치 그 단어들이 깨지기 쉬운 그릇이기라도 한 것처럼.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나는 이 말을 다시 한 번 아이에게 반복하게 했어요. 아이가 그것을 외운 것을 확인하고, 나는 그 아이의 어깨를 한 번 가볍게 잡았다가 놓았습니다. 그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나갔어요. 문이 열렸다가 닫혔습니다.

문고리가 평소보다 조금 뻑뻑했어요. 아이가 당기는 소리에 쇠가 긁히는 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나는 네우마키오스에게 말했어요.

“저 문고리에 기름을 쳐 주세요.”

그는 “알겠습니다” 하고 답했어요.

나는 그다음에 상 위의 말린 무화과를 한 개 집어 들었습니다. 내가 아침에 두 개까지만 먹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어머니. 세 개째는 만지작거리다가 상자에 넣었다고 앞에서 썼지요. 그러나 사실 그 아이가 나간 다음에 나는 다시 그 무화과를 꺼냈어요. 꺼내서 손가락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입에 넣지는 않았어요. 무화과는 손가락 사이에서 작고 건조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다시 상자에 내려놓았어요. 상자 뚜껑을 덮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작게 났습니다.

5. 정원

메신저가 나간 뒤 나는 작은 정원으로 갔어요.

작은 정원은 관저 안쪽에 있고, 가운데에 분수가 하나 있어요. 분수의 물은 계속 위에서 떨어져요. 떨어지면서 낮은 소리를 내고, 그 소리는 관저 안의 다른 소리들을 지워 주는 역할을 해요. 나는 자주 이 정원에 앉아 있습니다. 로마에 있을 때 어머니의 작은 정원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어머니의 정원에는 장미가 있었죠. 여기는 장미가 없고 대신 키가 낮은 월계수 몇 그루와 박하가 있어요.

그 아침에 나는 분수 옆의 돌 벤치에 앉았어요. 손바닥 안에서 열쇠를 느꼈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열쇠의 무게가 평소와 같았어요. 그러나 반 시간쯤 지났을 때, 나는 열쇠가 차가워진 것을 알았습니다. 내 손의 온도와 열쇠의 온도가 더 이상 같지 않았어요. 내 손이 그대로인데 열쇠만 혼자 식어 가는 것인지, 아니면 내 손이 조금씩 뜨거워진 것인지 나는 구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둘 다였을 거예요.

종들이 안뜰을 오갔어요. 네우마키오스는 점심 준비를 시작했고, 빨래를 하는 여자가 젖은 아마포를 안고 지나갔습니다. 물방울이 돌바닥에 몇 개 떨어졌어요. 그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분수의 물 소리 속에 섞여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어요. 한 종이 물통을 들고 정원의 작은 벤치 옆을 지나면서 나에게 목례를 했습니다. 나는 그 목례를 알아차렸지만 답하지 못했어요. 내 목의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종에게 미안해했는데, 그 미안함도 입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어요.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침의 재판은 보통 한 시간이면 끝나고, 길어야 두 시간입니다. 남편이 이 도시의 일 처리를 싫어해서 빠르게 끝내는 편이에요. 그런데 두 시간이 지나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나는 안뜰 쪽을 자주 쳐다보았습니다. 안뜰에서 누군가가 들어오면 그 발자국 소리가 정원까지 희미하게 들렸는데, 그 아침에는 발자국이 들어왔다가 이내 다시 나가는 소리만 여러 번 났어요. 병사들이 관저와 재판정 사이를 오가는 소리였습니다.

나는 그 발자국 소리를 세어 보려고 했어요. 다섯 번까지 세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세는 것이 내 상태를 좋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세는 동안에는 잠시 머릿속이 평평해지는데, 세기를 멈추면 그 평평함이 무너지면서 다시 가슴 쪽의 그 찍힌 자국이 욱신거렸어요.

정원의 박하 냄새가 코에 닿았어요. 어머니의 정원의 장미 냄새와는 아주 다른 냄새예요. 박하는 코의 안쪽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냄새입니다. 나는 박하를 오래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관저에 온 뒤로 매일 아침 이 정원에서 박하 냄새를 맡으면서 조금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날 아침에도 그 냄새는 거기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평소처럼 즐기지 못했습니다. 냄새가 내 코에서 가슴 쪽으로 내려가려다가 중간에서 막혀 있는 것 같았어요.

열쇠를 나는 한 번 더 손바닥 안에서 굴렸어요. 장미 모양의 손잡이가 새끼손가락 쪽으로 굴러갔다가 엄지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6. 정오의 어둠

정오 무렵에 하늘이 어두워졌어요.

처음에는 구름이 해를 가린 것인 줄 알았습니다. 예루살렘의 봄에는 가끔 그런 일이 있어요. 그러나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고, 구름이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름이 한 점도 없었어요. 구름이 없는데 해의 빛이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약해진다는 말은 맞지 않아요. 해는 거기 있는데, 해가 내보내는 빛이 이 도시 위에 도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빛이 중간 어디에선가 막힌 것 같았습니다.

네우마키오스가 부엌에서 나왔어요. 그는 손에 장작을 들고 있었습니다. 장작을 불에 얹으려다가 멈추었어요. 멈춘 상태로 하늘을 한동안 보았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둥글고 친근한 얼굴이었지만 그 안쪽 어딘가가 조금 내려앉아 있었어요.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고, 나는 그와 눈을 한 번 마주쳤습니다. 그 눈맞춤 안에 무슨 말이 있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는 장작을 든 채로 다시 부엌 쪽으로 들어갔고, 장작을 불에 얹었는지 얹지 않았는지 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뜰 저쪽에서 한 여자 종이 짧게 비명 같은 소리를 냈어요. 비명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짧은 소리였고, 놀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낮은 소리였어요. 그 소리가 한 번 났다가 바로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는 관저 안이 이상하게 조용해졌어요. 평소에 들리던 빨래하는 소리, 나무 자르는 소리, 그릇 부딪치는 소리 같은 것들이 한 겹씩 줄어들었습니다.

어머니, 나는 전조를 읽는 법을 배웠어요. 로마 귀족 집안의 딸이라면 누구나 배우는 것처럼요. 나는 새의 방향을 보는 법을 알고, 제물의 간이 어떻게 나왔을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조금 알고, 번개가 왼쪽에서 쳤을 때와 오른쪽에서 쳤을 때 그 차이를 알아요. 어머니의 어머니께서 이런 것들을 나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을 기억하시죠. 외할머니는 그 책들을 가지고 계셨어요. 표지가 가죽으로 된 것. 나는 어릴 때 그 책들을 이해하고 싶어 했지만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한 것은 새의 방향과 간의 모양 정도였어요.

그런데 오늘 정오에 내가 본 것을 나는 내가 배운 어떤 체계로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일식이 아니었어요 — 일식이라면 달의 그림자가 해를 삼키는 그 특유의 모양이 보였을 텐데, 해는 온전히 거기 있는데 빛만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폭풍도 아니었어요 — 공기 중에 습도가 없었고 바람도 없었어요. 이것은 신들의 분노의 표시도 아니었어요 — 그런 표시는 보통 번개나 지진이나 갑작스러운 폭풍으로 나타나지, 이렇게 조용하고 고르게 어두워지는 일은 없어요. 이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그것을 읽을 줄 몰랐어요.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나는 한참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배운 것들을 하나씩 꺼내 적용해 보았고, 하나씩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고, 마지막에는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손바닥 안의 열쇠를 나는 다시 쥐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순간에는 열쇠가 내 손과 같은 온도였어요. 너무 같아서, 내가 그것을 쥐고 있는지 아닌지를 손의 감각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시각으로 확인해야 했어요. 손을 펴 보았더니 열쇠가 거기 있었습니다. 장미 모양의 손잡이가 손바닥 가운데에 놓여 있었어요. 꽃잎 다섯 개가 여전히 다섯 개였습니다.

그 어둠은 세 시간쯤 지속된 것 같아요. 정확하지 않습니다. 나는 시간의 흐름을 평소처럼 읽을 수가 없었어요. 평소에 나는 시간을 두 가지 방법으로 읽어요. 하나는 해의 그림자이고, 다른 하나는 내 몸 안의 피로의 깊이예요. 그런데 그 세 시간 동안 해의 그림자는 믿을 수 없었고, 내 몸 안의 피로는 평소와 다른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았어요. 피곤함 대신에 어떤 다른 감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피곤함처럼 내 몸을 아래로 끌어당기지 않고 오히려 내 몸을 한 자리에 못질하는 감각이었습니다.

분수의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낮아진 것처럼 들렸어요. 실제로 낮아진 것인지, 내 귀가 그렇게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도시의 소음도 한 겹씩 얇아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성전 쪽에서 어떤 소리가 한 번 크게 났습니다. 무엇을 찢는 소리 같기도 했고, 천이나 가죽 같은 것이 갑자기 둘로 갈라지는 소리 같기도 했어요. 나중에 종들 사이에서 성전 어딘가의 커튼이 그 시간에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말이 돌았다고 해요.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공기 중에 어떤 큰 것이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정오가 조금 지난 무렵에 한 번 지나갔다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어둠이 천천히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러가는 모양이 들어오던 모양과 같았어요. 중간에서 막혀 있던 빛이 다시 조금씩 이 도시 위에 닿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느리게요.

7. 그가 돌아왔어요

빛이 다시 도시 위에 온전히 도착했을 때 나는 작은 정원에서 일어나 관저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손바닥 안의 열쇠는 여전히 거기 있었고, 온도는 다시 내 손보다 조금 차가워져 있었어요. 차가움의 정도가 아침의 그 차가움보다 더 깊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느끼면서 걸었습니다.

남편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어요.

그가 관저의 문을 들어서는 소리를 나는 안쪽 방에서 들었어요. 문이 열리는 소리, 그의 발자국 소리, 그의 망토가 벽에 스치는 소리, 종 하나가 그의 망토를 받는 소리. 그 소리들을 나는 순서대로 분리해서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그 소리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들어오는데, 그날은 따로따로 들어왔어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오늘의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나도 묻지 않았습니다. 물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물을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물음이 내 입 속에서 떠돌다가 입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는 손을 씻겠다고 했어요. 작은 물병과 대야가 준비되었습니다. 한 종이 물을 따라 주었어요. 그는 손을 씻었어요. 한 번 씻고, 물을 버리라고 했고, 종이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따라 주었고, 그는 다시 씻었습니다. 두 번째 씻음이 첫 번째보다 길었어요. 손등에서 손목까지, 손목에서 팔꿈치 가까이까지, 그는 천천히 씻었습니다. 나는 그 두 번의 씻음을 오래 보았어요. 나는 그 손에 무엇이 묻어 있다가 씻겨 나갔는지 모릅니다. 나는 모르고, 그 사람도 아마 자기 손에서 씻겨 나간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거예요. 손은 그냥 손일 뿐이니까요.

식탁에는 빵과 구운 양고기와 약간의 포도주가 있었어요. 평소와 같은 저녁 식탁이었습니다. 네우마키오스가 상을 차리면서 내 쪽을 한 번 돌아보았고, 나는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는 부엌으로 물러갔습니다.

남편은 빵을 한 조각 떼어 입에 넣었어요. 그는 오래 씹었습니다. 그 씹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어서 나는 그가 빵을 삼키는 순간을 눈으로 따라가게 되었어요. 그의 목에서 한 덩어리가 내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덩어리가 내려간 뒤에 그는 숨을 한 번 내쉬었어요.

양고기에 그는 손을 대지 않았어요. 평소에는 양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오늘 저녁에는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나도 손을 대지 못했어요. 네우마키오스가 정성 들여 구운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는데도요.

나는 그에게 묻지 않았어요. 그도 내 전갈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침에 보낸 그 편지를 그가 받았는지, 받고 읽었는지, 읽고 무엇을 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지금도 나는 모릅니다. 나는 그것을 물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 어머니, 내가 이것을 정확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나는 그가 그것을 받았다는 사실과 그가 그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 사이의 공간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공간을 언어로 채우는 순간 그 공간이 무너질 것 같았어요. 그가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내 탓이고, 받고도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의 탓인데 — 어머니, 이 두 가능성 중 어느 쪽이 더 견디기 쉬운지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 두 가능성 다 견딜 수 없을 거예요.

그는 나를 한 번 보았어요. 아주 짧게. 평소에는 식사 중에 나를 그렇게 보지 않아요. 그 시선은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시선이었지만, 말이 시선에서 입으로 내려오지 못한 채 거기서 멈추었어요. 나는 그 멈춤을 보았고, 내 쪽에서도 아무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나는 손을 식탁 아래로 내려, 손바닥 안의 청동 열쇠를 잠깐 무릎 위에 내려놓았어요. 열쇠가 내 옷자락 위에 놓인 채 몇 호흡 동안 거기 있었습니다. 열쇠의 무게가 옷자락을 통해 무릎에 전해졌어요. 무릎은 그 무게를 조용히 받아 주었어요. 무릎은 언제나 무게를 받아 주는 법을 아는 기관이에요.

식사가 끝났습니다. 그는 일어났어요. “먼저 자겠소.” 그가 말했습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어요. 평소의 그의 목소리 아래에 다른 목소리가 한 겹 깔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안쪽 방으로 들어갔어요. 문이 닫혔습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평소보다 부드러웠어요. 그가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는 뜻이에요. 그것을 나는 알아차렸습니다.

8. 편지의 끝

나는 그 뒤로 이 방에 와서 앉아 있어요. 등잔의 심지는 이제 조금 짧아졌고, 기름도 절반이 조금 안 됩니다. 새 기름을 부어야 할지 나는 아직 모르겠어요. 심지를 자를 가위가 책상 오른쪽에 놓여 있어요. 나는 그것을 들지 않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 편지를 어디까지 쓸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어머니께 정말로 쓰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어요. 그저 오늘 하루 동안 내 몸을 통과한 것이 하나 있었고, 그것을 종이 위에 놓아두지 않으면 그것이 내 안에 머물러 내 잠을 망칠 것 같았어요. 종이 위에 놓으면 종이가 그것을 대신 견뎌 주나요. 나는 모르겠어요. 아마 아닐 거예요. 그래도 놓아두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덧붙일게요.

아침에 메신저에게 시킨 그 말을 나는 그 뒤로 여러 번 속으로 되뇌었어요.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저 옳은 사람. 나는 왜 그를 “옳은 사람”이라고 불렀을까요.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었어요. 그의 재판도 보지 못했고, 그가 무슨 죄로 기소되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어요. 나는 그저 꿈에서 본 무언가를 바탕으로, 그를 “옳은 사람”이라고 말해 버린 거예요.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을 때 나는 그것이 옳은 말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옳은 말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지금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내 입은 그 말을 알고 있었고, 내 손은 청동 열쇠를 알고 있었어요. 나 자신보다 내 입과 내 손이 먼저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 — 그것은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느낌이었어요.

어머니, 나는 이 편지를 부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부친다고 해도, 어머니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 글자들이 여전히 뜻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편지 안의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양이 달라지잖아요.

이 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예요.

나는 편지를 여기서 멈춥니다. 붓을 내려놓습니다.

나는 오른손을 펴서 손바닥 안의 청동 열쇠를 탁자 위에 놓습니다. 열쇠가 탁자의 나무 표면에 닿는 소리가 납니다. 아주 작은 소리예요. 장미 모양의 손잡이가 위쪽으로 놓여 있습니다. 꽃잎이 다섯 개예요.

등잔의 심지가 한 번 흔들립니다.

제6편

내 아들이 졌던 나무

구레네 시몬의 아내
막 15

1. 등잔

언니에게.

로마의 저녁은 구레네의 저녁보다 한 시간쯤 늦게 온다. 해가 서쪽 언덕 뒤로 내려가는 동안 하늘의 색이 세 번 바뀐다. 주황에서 분홍으로, 분홍에서 보라로, 보라에서 회색으로. 나는 그 세 번의 바뀜을 매일 창가에서 보는데, 오늘은 두 번째 바뀜에서 고개를 돌렸다. 등잔에 불을 붙여야 해서.

탁자 위에 파피루스를 펴 놓았다. 잉크를 갈았다. 갈대펜을 물에 적셨다가 물기를 한 번 턴다. 이 동작은 내가 구레네에서 언니에게 편지를 쓸 때와 같은 동작이다. 다만 구레네에서는 갈대를 나일 강 하류에서 가져왔고, 로마에서는 시장 끝 가게의 이집트 남자에게서 산다. 갈대의 두께가 조금 다르다. 로마 것이 약간 가늘어서 글씨가 가늘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작은 것이 하나 끼여 있다. 나무 파편이다. 길이는 내 새끼손가락 끝 마디의 절반쯤이고, 한쪽은 매끄럽고 반대쪽은 나무 결이 갈라져서 끝이 약간 벌어져 있다. 이것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면 매끄러운 쪽과 거친 쪽이 번갈아 돌아간다. 나는 이 동작을 25년 동안 하고 있다. 가늠해 보건대, 매일 서너 번쯤 하니까 25년이면 삼만 번 가까이 굴린 셈이다. 나무가 닳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 닳았다. 처음에는 손가락 끝 마디 전체만 했던 것이 지금은 절반이다. 매끄러운 쪽은 더 매끄러워졌고, 거친 쪽도 예전보다는 둥글어졌다. 그래도 결이 갈라진 자리는 아직 남아 있다.

이 파편이 어디서 왔는지, 그것을 쓰려고 이 편지를 시작한다.

언니는 알고 있다. 어느 정도는. 25년 전에 시몬이 돌아와서 내가 울었던 것, 아이들이 한동안 밤에 잠을 못 잤던 것, 우리가 구레네로 돌아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았던 것. 언니는 그것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쓰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쓸 수 없어서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쓸 말을 찾지 못해서 쓰지 않은 것들이다. 25년이 지나서야 말이 조금 생긴 것 같다. 조금이라고 했다. 충분하지는 않다.

2. 구레네에서 예루살렘까지

우리가 예루살렘에 간 것은 유월절 순례 때문이었다. 언니도 알고 있듯이.

시몬은 그해 겨울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배편을 알아보고, 여비를 계산하고, 아이들의 신발을 고쳤다. 알렉산드로스는 일곱 살이었고 루포스는 네 살이었다. 루포스의 왼쪽 신발이 뒤축이 다 닳아서 시몬이 가죽을 덧대 주었다. 나는 그 가죽의 색이 기존 것과 조금 달라서 신경이 쓰였다. 시몬은 “어차피 아이는 신발을 안 본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루포스는 한 번도 자기 신발의 가죽 색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배는 열두 명이 탈 수 있는 상선이었다. 구레네에서 욧바까지 닷새가 걸렸다. 둘째 날에 루포스가 배멀미를 했다. 셋째 날에는 알렉산드로스도 했다. 나는 아이들의 등을 번갈아 문질러 주면서 갑판 위의 물동이에서 물을 적신 천을 짜서 이마에 얹어 주었다. 시몬은 배 한쪽에서 다른 순례자 두 명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몬의 등이 보였다. 넓은 등이었다. 그 등은 구레네에서 밭을 갈 때의 등이었고, 항구에서 곡식 자루를 나를 때의 등이었고, 아이들이 매달릴 때의 등이었다.

욧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이틀을 걸었다. 아이들은 첫날은 흥분해서 뛰어다녔고 둘째 날은 지쳐서 보채었다. 루포스는 결국 시몬의 등에 업혔다. 시몬은 루포스를 업고 언덕길을 올라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따라 걸으면서 루포스의 머리가 시몬의 어깨 위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잠이 들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날은 유월절 사흘 전이었다.

우리는 성 밖 남쪽의 한 객주에 방을 얻었다. 방은 좁았고, 벽은 석회를 발랐는데 한쪽이 벗겨져 있었다. 창은 하나였다. 창 밖으로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 올리브 나무의 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은빛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 나무를 여러 번 보았다.

3. 그날 아침

유월절 당일이었다.

시몬은 아침 일찍 나갔다. 성전에 가서 기도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아이들도 데려갔다. 알렉산드로스는 제 발로 걸었고 루포스는 시몬의 손을 잡았다. 문간에서 나는 루포스에게 물병을 건네주었다. 가죽 물병이었고, 물이 반쯤 차 있었다. “덥거든 마셔라.” 내가 말했다. 루포스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물병을 받았다. 네 살짜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법을 알아도 하지 않는다.

세 사람이 골목을 돌아 사라진 뒤에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유월절 음식을 정리해야 했다. 어젯밤에 먹다 남은 무교병 조각이 천에 싸여 있었다. 쓴 나물이 그릇에 남아 있었다. 나는 나물을 긁어내고 그릇을 물로 씻었다. 물동이의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물까지는 객주에서 여섯 집을 지나야 했다. 나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구레네에서 하던 것과 같은 동작이었다. 물동이의 무게가 같았고, 머리 위에 얹은 천의 두께가 같았고, 걸음의 리듬이 같았다. 예루살렘의 골목이 아니라 구레네의 골목이라고 해도 같았을 것이다. 여자의 일은 어디서나 같다.

돌아와서 바닥을 쓸었다. 방 한쪽에 아이들의 옷이 널려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튜닉에 어젯밤의 양고기 기름이 묻어 있었다. 빨아야 했다. 나는 그 튜닉을 물에 담가 놓았다. 기름 얼룩은 물에 오래 불려야 빠진다. 구레네의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던 방법이었다.

해가 높아졌다. 시몬과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문 앞에 잠시 나가 골목을 보았다. 사람들이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걸음이 빨랐다. 뭔가 구경할 것이 있는 사람들의 걸음이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순례자의 도시이고, 유월절에는 무엇이든 일어나는 도시였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기다렸다.

4. 돌아온 사람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을 때 문이 열렸다.

시몬이 먼저 들어왔다. 그 뒤로 알렉산드로스가 들어왔다. 그 뒤로 루포스가 들어왔다.

나는 세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시몬의 얼굴은 — 내가 아는 시몬의 얼굴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시몬의 얼굴은 넓고 짙은 피부에 주름이 깊고 눈 아래가 약간 처진 얼굴이었다. 그날 돌아온 시몬의 얼굴도 그 얼굴이었다. 형태는 같았다. 그런데 그 안에 있던 것이 달랐다. 무엇이 달랐는지 나는 말할 수 없다. 말이 없다. 내가 가진 단어들 중에 그 다름을 담을 수 있는 단어가 없다.

알렉산드로스는 겁먹은 얼굴이었다. 일곱 살의 아이가 겁먹으면 입술이 약간 벌어지고 눈이 한쪽으로 쏠린다. 알렉산드로스의 입술이 그렇게 벌어져 있었다.

루포스는 울고 있었다.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소리 없이 우는 네 살짜리를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네 살짜리는 울 때 소리를 내지 않을 줄 모른다. 그런데 루포스는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눈물만 흐르고 있었다. 내가 루포스에게 건네주었던 가죽 물병은 없었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루포스는 말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시몬의 오른쪽 어깨에 자국이 있었다.

튜닉의 어깨 부분이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곳의 천이 눌려 있었고, 눌린 자리에 핏자국이 있었다. 시몬의 피인지 다른 사람의 피인지 나는 처음에 구분하지 못했다. 시몬의 어깨 살갗을 보니 붉은 줄이 한 줄 그어져 있었지만 피가 나지는 않았다. 나무에 긁힌 자국이었다. 핏자국은 시몬의 것이 아니었다.

나무 부스러기가 어깨 주변에 박혀 있었다. 크고 작은 파편들이 천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나는 시몬을 앉히고 튜닉을 벗기면서 그 파편들을 하나씩 빼냈다. 손가락 끝에 나무 결이 닿았다. 거친 결이었다. 대패질이 안 된, 투박하게 다듬어진 나무의 결이었다. 파편은 열두세 개였다. 나는 세지 않으려 했는데 세어졌다.

그중 하나가 손가락 사이에서 멈추었다. 나머지는 바닥에 털었지만 그 하나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남았다. 매끄러운 면 하나와 거친 면 하나. 나는 그것을 왜 떨어뜨리지 않았는지 모른다.

시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물동이에서 물을 떠서 천에 적셨다. 시몬의 어깨를 닦았다. 핏자국이 벗겨졌다. 남의 피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 시몬의 살갗 아래로 스며든 핏자국이 아니라, 표면 위에 말라붙어 있던 것이 물에 풀려 나왔으니까.

“뭔 일이 있었어?” 내가 물었다.

시몬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대답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가 아버지의 등 뒤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루포스는 방 구석에 앉아서 여전히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나무를 졌어.” 시몬이 말했다.

“무슨 나무?”

시몬이 또 한참 말이 없었다.

“사형수의 기둥.” 시몬이 말했다. “병사가 시켰어. 길에서.”

나는 천을 짜는 동작을 멈추었다. 물이 시몬의 어깨 위에서 한 줄기 흘렀다. 흘러서 등을 타고 튜닉의 허리 쪽으로 내려갔다.

“어떤 사형수?” 내가 물었다.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는 것이 “모른다”인지 “말하고 싶지 않다”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시몬은 잠을 자지 못했다. 나도 자지 못했다. 아이들은 늦게야 잠이 들었다. 루포스가 먼저 들었고, 알렉산드로스가 나중에 들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기 전에 나에게 한마디를 했다.

“아빠 어깨에서 피가 났어.”

“아니야.” 내가 말했다. “아빠 피가 아니야.”

“그럼 누구 피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5. 시몬이 말한 것, 말하지 못한 것

다음 날부터 시몬은 조금씩 말했다.

한꺼번에 말하지 않았다. 한 마디씩, 며칠에 걸쳐서 말했다. 마치 무거운 것을 내려놓는 것처럼. 한 조각씩.

첫째 날에 시몬은 이렇게 말했다. “골목을 걷고 있었는데 병사가 나를 잡아끌었어.”

둘째 날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많았어. 유월절이라서.”

셋째 날에는 이렇게 말했다. “나무가 무거웠어.”

넷째 날에야 나는 그 사형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었다. 시몬은 잠시 천장을 보다가 말했다. “나사렛에서 온 사람이래.” 그리고 한참 뒤에 덧붙였다. “선생이었다고 누가 말하더라.”

시몬이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나무를 받았을 때 무게가 어떻게 느껴졌는지. 그 남자의 얼굴을 보았는지 보지 못했는지. 언덕까지 얼마나 걸었는지. 아이들이 어디서 따라오고 있었는지. 이런 것들을 시몬은 말하지 않았다. 나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그때의 나에게 가능한 유일한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시몬이 어느 날 저녁에 물을 마시다가 잔을 내려놓으면서 한 말이 있다.

“그 사람이 나를 봤어.”

나는 밥을 짓고 있었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뭐라고?” 하고 되물었다.

“나무를 받을 때. 내가 고개를 숙이고 기둥을 받았는데, 기둥이 넘어오기 전에 그 사람이 나를 한 번 봤어.”

“어떻게 봤는데?”

시몬은 잔 안의 물을 들여다보았다.

“그냥. 봤어.”

그 이후로 시몬은 그 사람의 눈에 대해 다시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눈을 본 적이 없다. 시몬이 본 것을 나는 시몬의 말로만 안다. 시몬의 말은 “봤다”뿐이었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나는 나무 파편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굴렸다. 두 번째였다.

6. 그 뒤의 세월

우리는 구레네로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려고 했다. 배편도 알아보았다. 그런데 시몬이 어느 날 “좀 더 있자”고 했다. 나는 왜냐고 물었다. 시몬은 “모르겠어”라고 했다. 시몬이 모르겠다고 말할 때는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시몬의 “모르겠어”를 믿었다. 구레네에서 10년을 함께 살면서 그 사람의 “모르겠어”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예루살렘에 남았다. 그리고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이 일어났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몬이 어디를 다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그다음에는 두세 번. 나는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시몬은 “사람들을 만나”라고 했다.

“무슨 사람들?”

“그 사람을 알았던 사람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시몬이 변했다는 것을 나는 언제 알았는가. 정확한 시점은 없다. 어느 날 시몬이 저녁 식탁에서 빵을 집어 들고 한참을 멈추어 있었다. 멈추어 있다가 빵을 떼었다. 그 동작이 예전과 달랐다. 무엇이 달랐는지 나는 말로 할 수 없다. 빵을 떼는 손의 각도가 달랐다거나 속도가 달랐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된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달랐다.

알렉산드로스가 먼저 따라갔다.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시몬에게 “나도 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포스는 열한 살이 되던 해에 형을 따라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나는 집에 있었다. 집에 있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물을 길어 오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의 옷을 기웠다. 예루살렘의 집이 구레네의 집보다 좁았지만 하는 일은 같았다. 여자의 일은 어디서나 같다. 나는 이 말을 아까도 썼다.

시몬과 아이들이 모이는 곳에 간 것은 한 번뿐이었다. 시몬이 데려가겠다고 한 적은 없다. 내가 가겠다고 한 적도 없다. 다만 어느 안식일에 루포스가 나에게 “엄마도 와”라고 말했고, 나는 — 왜인지 모르겠지만 — 따라갔다.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빵을 떼고, 무언가를 읽고, 기도했다. 나는 뒤쪽에 앉았다. 시몬은 앞쪽에 있었다. 시몬의 등이 보였다. 넓은 등이었다. 그 등은 구레네에서 밭을 갈 때의 등이었고, 배 위에서 순례자들과 이야기하던 등이었고, 루포스를 업고 언덕을 오르던 등이었고, 사형수의 나무를 졌던 등이었다. 같은 등이었다. 그러나 그날 그 방에서 보는 시몬의 등은 — 또 달랐다.

나는 이 “달랐다”를 설명하지 못한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 가족의 25년 안에 여러 개 있다. 나는 그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 옆에서 살았다. 옆에서 밥을 짓고 빨래를 했다.

나무 파편을 굴렸다. 세 번째였다.

7. 바울이라는 사람

로마에 온 것은 3년 전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제 서른둘이고 루포스는 스물아홉이다. 시몬은 — 시몬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다. 무릎이 아파서 먼 길을 걷지 못하게 되었다. 루포스가 로마에 오겠다고 했을 때 시몬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라”고 했다.

로마에서의 삶은 언니에게 이전 편지에서 몇 번 썼으니 반복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 이 편지를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를 말해야 한다.

한 사람이 있다. 바울이라는 이름의 사람이다. 다소 출신이고, 로마 시민이고, 원래는 바리새인이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로마에 와서 우리를 찾아왔다. 정확히는 루포스를 찾아왔다. 루포스와 내가 어떻게 그 사람과 알게 되었는지는 긴 이야기이고, 이 편지에서 다 쓸 수는 없다.

그 사람이 편지를 쓰고 있다고 했다.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했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저녁 식사를 한 번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러세요” 하고 말했다. 그가 우리 집에 왔다. 루포스와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빵을 굽고, 올리브와 말린 생선을 내놓았다. 그는 두 번 왔다. 두 번째에는 빵을 더 먹었다.

그 뒤에 내가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사람이 쓴 편지의 끝부분에 이런 말이 있다고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읽어 주었다.

주님 안에서 선택받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루포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두 번 저녁밥을 먹인 것뿐이다.

빵을 굽고 올리브를 내놓았다. 그것이 내가 한 일의 전부이다. 그가 왜 나를 “내 어머니”라고 썼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그에게 어머니였던 적은 없다.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이고 루포스의 어머니이고 시몬의 아내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나의 이름들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서 내 손이 허리춤으로 갔다. 거기에 항상 끼워 두는 이 파편. 나는 그것을 꺼내 엄지와 검지 사이에 넣고 굴렸다. 네 번째였다.

언니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에게 밥을 먹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밥을 먹이는 것은 내가 시몬에게 하는 것이고 아이들에게 하는 것이고 구레네에서 이웃에게 하던 것이고, 여자가 하는 일이다. 그것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전에 없었다.

8. 다시 로마의 저녁

등잔의 심지가 짧아졌다. 한 번 잘라야 한다.

나는 잉크를 내려놓고 심지를 가위로 잘랐다. 불꽃이 한 번 커졌다가 다시 안정되었다. 잘린 심지 끝에서 연기가 가늘게 올라갔다. 기름 냄새가 방 안에 얇게 퍼졌다.

파피루스 위에 쓴 것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읽으면서 내가 쓰지 못한 것들을 생각했다. 시몬이 나무를 지고 언덕을 올라갈 때 아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루포스가 왜 소리 없이 울었는지. 알렉산드로스가 열세 살에 왜 “나도 가고 싶어”라고 말했는지. 시몬이 빵을 떼는 손이 왜 달라졌는지. 이것들을 나는 쓰지 못했다. 모르기 때문이다. 25년이 지났는데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

25년 전 유월절에 남편이 예루살렘의 어느 골목에서 낯선 사형수의 나무를 졌다. 남편은 시켜서 진 것이다. 자기가 원해서 진 것이 아니다. 병사가 끌어냈고,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받았다. 그것뿐이다.

그런데 그 나무의 파편 하나가 25년째 내 손가락 사이에 있다.

언니, 나는 왜 이것을 버리지 않았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버리려고 했다. 다른 파편들은 다 바닥에 털었다. 이것만 남았다. 남은 이유가 없다. 나는 그 이유를 지금도 모른다. 모른다는 말을 이 편지에서 내가 몇 번이나 썼는지 세어 보지 않겠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로마의 밤이 왔다. 거리에서 수레 바퀴가 돌에 닿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루포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 모임에 갔다. 알렉산드로스에게서 지난 달 편지가 왔다. 예루살렘의 아버지는 건강하다고 했다. 무릎은 여전하지만 걸을 수는 있다고.

나는 갈대펜을 내려놓는다.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린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파편을 한 번 더 굴린다. 매끄러운 면이 돌아가고, 거친 면이 돌아온다. 25년 전의 나무 결이 아직 거기 있다. 닳았지만 있다.

등잔의 불꽃이 한 번 흔들린다. 기름이 줄어서 심지가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기름을 더 부어야 할지 이대로 둘지 잠시 생각한다.

이대로 둔다.

제7편

조서

로마 경비병
마 28

1. 보고서

유대 속주 예루살렘 주둔 제10보조대대 제2백인대

경비 임무 보고서

일시: 니산월 15일 저녁~17일 새벽 장소: 예루살렘 성벽 외곽 북서 방면, 아리마대 요셉 소유 바위 무덤 임무: 사형 집행 완료된 죄수 1인의 시신 보관 장소 경비 및 봉인 유지 배치 인원: 4명 지시 경로: 유대 종교 지도부 요청 → 총독부 승인 → 백인대장 명령

나는 이 보고서를 사실대로 기록한다. 기록은 군인의 의무이며, 의무는 제국의 기둥이다. 나는 제국에 16년을 복무했고, 3년 후 제대를 앞두고 있으며, 금료 지급과 토지 배분에 대한 권리를 보유한다. 이 보고서는 임무 수행 내용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

2. 배치

니산월 15일 해 지기 직전, 백인대장이 나를 불렀다. 막사 안쪽 탁자 위에 두루마리 하나가 펼쳐져 있었고, 백인대장은 그것을 손가락 끝으로 짚어 가며 말했다. 유대인 사제 계급이 총독에게 경비를 요청했다. 어제 처형된 죄수의 무덤에 경비를 세워야 한다. 이유는 그 죄수의 추종자들이 시체를 훔쳐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삼 일 경비. 이후 해제.”

나는 물었다. 시체를 훔쳐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백인대장은 잠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 자가 살아서 돌아온다고 소문을 퍼뜨리려는 거지.” 그는 말했다. “삼 일이면 끝난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배치 인원은 넷이었다. 나, 세쿤두스, 그리고 시리아 출신 두 명. 시리아 출신 둘의 이름은 ― 한 명은 아블라였고 다른 하나는 긴 이름이었는데 우리는 그를 줄여서 불렀다. 세쿤두스는 14년 복무한 베테랑이었고 나와 같은 해에 제대할 예정이었다. 그는 갈리아 남쪽 출신이었고, 제대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포도밭을 사겠다고 매달 한 번씩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열네 번 들었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무덤에 도착했다. 무덤은 바위를 파서 만든 것이었고, 입구에 큰 돌이 굴려져 있었다. 돌의 높이는 내 어깨 정도였고, 폭은 양팔을 벌린 것보다 약간 넓었다. 돌의 표면에 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새로 깎은 돌이었다. 이 무덤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유대인 사제 몇 명이 와서 봉인을 했다. 진흙에 끈을 매고 돌과 바위 벽 사이에 밀랍을 발랐다. 그 위에 도장을 찍었다. 총독의 도장이었는지 대제사장의 도장이었는지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도장은 내 관할이 아니었다. 내 관할은 이 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봉인이 끝나자 사제들은 돌아갔다. 네 명이 남았다. 나, 세쿤두스, 아블라, 그리고 긴 이름.

나는 경비 교대를 짰다. 2인 1조, 4시간 교대. 첫 번째 조는 나와 아블라. 두 번째 조는 세쿤두스와 긴 이름. 자정에 교대, 새벽 네 시에 교대. 해가 뜨면 전원 배치.

아블라와 나는 무덤 앞 왼편에 섰다. 세쿤두스와 긴 이름은 뒤쪽 바위 아래에서 잤다. 세쿤두스는 눕기 전에 물통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시체 경비라니. 죽은 놈이 도망이라도 가겠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봉인 작업 중 내 손이 돌 표면에 닿았을 때 손바닥에 묻은 돌가루가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가루의 대부분은 떨어졌지만 손금 사이에 미세한 것이 남아 있었다.

3. 밤

첫 네 시간은 특이한 일 없이 지나갔다. 그것을 기록한다.

바람은 북서쪽에서 불었고, 속도는 일정했다. 하늘은 맑았다. 별이 많았다. 유월절 직후의 달은 거의 만월이었고, 무덤 앞의 돌 표면에 달빛이 닿아 돌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 빛은 색이 없는 빛이었다. 낮에는 석회암 특유의 누르스름한 빛깔이었을 것이지만 달빛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무덤에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것은 기록할 만한 사실이다. 사형 집행 후 하루가 지난 시체가 밀폐된 바위 무덤 안에 있으면 냄새가 난다. 시리아의 전선에서,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나는 그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사람의 몸이 사람이 아닌 것으로 돌아가는 냄새. 그 냄새는 돌 사이로도 새어 나온다. 그러나 이 무덤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밤공기의 냄새만 있었다. 가을이 아닌 봄의 밤, 돌과 흙과 풀의 냄새.

아블라가 물었다. “안에 뭘 발라 놓은 건 아닌가.”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유대인들은 시체에 향유를 바른다고 들었다. 향유가 냄새를 막는 것인지, 단순히 의례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아블라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그 화제를 그것으로 끝냈다.

자정에 교대했다. 세쿤두스와 긴 이름이 일어났다. 나와 아블라는 바위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외투를 바위에 깔고 등을 기댔다. 바위의 차가움이 등을 지나 어깨까지 올라왔다. 나는 잠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잠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록한다. 로마 군인은 경비 중에 잠들지 않는다. 잠들면 사형이다. 나는 16년 복무 중 경비에서 잠든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잠들지 않은 채 누워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대부분은 제대 이후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이탈리아 남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16살에 입대했고, 시리아와 유대 속주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제대하면 나는 토지를 받을 것이다. 토지 위에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살 것이다. 아내가 있으면 아내와. 없으면 혼자.

세쿤두스의 포도밭 이야기가 떠올랐다. 포도밭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3년 후면 서른다섯이 된다.

새벽 네 시에 다시 교대했다. 전원 배치. 넷이 무덤 앞에 섰다.

4. 새벽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의 시간은 밤이 가장 짙은 시간이다. 별이 조금 옅어지기 시작하지만 동쪽 하늘은 아직 어둡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군사 교범에는 이 시간을 “가장 졸음이 오는 시각”이라고 기술한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전원 배치를 하는 것이다.

나는 잠들지 않았다.

다섯 시 직전이었다. 혹은 직후였다. 정확한 시각을 나는 특정할 수 없다. 별의 위치로 추정한 것이므로 오차가 있다.

땅이 움직였다.

지진은 이 지역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나는 시리아 주둔 시절 세 번의 지진을 겪었다. 그러나 그 세 번의 지진은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리는 움직임이었다. 그날의 지면 진동은 ―

그날의 진동은. 나는 이것을 기술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진동이라는 단어가 적합한지 모르겠다.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과 거의 동시에 ― 동시라고 쓴다, 선후를 구분할 수 없었으므로 ― 무덤 쪽에서 빛이 왔다.

빛이라고 쓴다.

나는 이 단어를 쓰고 멈추었다가 다시 쓴다. 빛이라는 단어가 적합한지 모르겠다. 횃불의 빛, 태양의 빛, 달의 빛 ― 내가 경험한 모든 빛에는 원천이 있고, 원천에서 퍼져 나가는 방향이 있고, 거리에 따라 약해지는 감쇄가 있다. 그것은 빛의 속성이다. 그날의 그것은 원천이 보이지 않았다. 방향이 없었다. 감쇄가 없었다. 무덤의 돌 쪽에서 왔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공기 자체에서 왔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아무 곳에서도 오지 않고 모든 곳에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 뒤에서도 그것이 보였다. 그것은 눈꺼풀을 통과했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도 그것이 들어왔다.

소리가 있었다. 돌이 움직이는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돌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른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 내가 들은 어떤 소리와도 같지 않았다. 번개 소리와 비슷하다고 쓸 수 있다. 그러나 번개 소리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 소리에는 시작은 있었으나 끝이 없었다. 그것은 시작된 뒤로 계속 되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보고서에 기록할 수 있는 종류의 진술이 아니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아블라도 쓰러졌다. 세쿤두스가 어디에 있었는지 나는 보지 못했다. 긴 이름도 보지 못했다. 넷 모두가 바닥에 있었을 것이다.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려 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사지가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나는 전투에서 경험한 적이 있다. 창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뒤 한동안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그때는 한쪽이었고 이번에는 전부였다.

얼마나 바닥에 있었는지 모른다.

눈을 떴을 때 빛은 사라져 있었다. 하늘은 아직 어두웠지만 동쪽 끝에 회색 한 줄이 보였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내 앞의 지면에 돌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미세한 석회암 가루가 공기 중에도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루가 내 입술에 닿았다. 맛이 있었다. 석회의 맛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무덤 입구의 돌이 옆으로 밀려 있었다. 밀려 있었다고 쓴다. 돌은 그 자리에 없었다. 돌은 오른쪽으로 한 사람 폭 이상 물러나 있었고, 무덤의 입구가 열려 있었다. 어둡고 낮은 입구가 벌어져 있었다.

나는 바닥에 손을 짚었다. 손바닥에 돌가루가 묻었다.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가루의 대부분은 떨어졌지만 손금 사이에 미세한 것이 남아 있었다.

5. 안

세쿤두스가 나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내가 14년간 들어 온 세쿤두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음높이가 달라져 있었다. 평소보다 반 톤 높았다. 나는 그 반 톤의 차이를 정확히 기억한다.

“안을 봐야 한다.”

나는 일어섰다. 다리가 제대로 서지 않았다. 왼쪽 무릎이 떨리고 있었다. 전투에서 무릎이 떨린 적은 두 번 있었다. 입대 첫해, 시리아 국경의 야간 기습 때가 첫 번째. 세 번째 해, 기병대가 진지를 스쳐 지나갔을 때가 두 번째. 이번이 세 번째였다.

무덤 입구로 걸어갔다.

입구는 낮았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었다. 안쪽에서 바깥의 새벽빛이 비스듬히 들어가고 있었다. 빛은 바닥의 절반쯤까지만 닿았다. 나머지 절반은 어두웠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바위를 파낸 방이었다. 천장이 낮았다. 내 키보다 두 뼘쯤 높았다. 안쪽 벽에 선반처럼 파낸 자리가 있었다. 시체를 눕히는 자리였다.

자리는 비어 있었다.

비어 있었다고 쓴다. 완전히 비어 있었다고는 쓰지 않는다. 자리 위에 천이 놓여 있었다. 흰 아마포였다. 아마포는 접혀 있지 않았다. 시체의 형태를 따라 ― 아니, 시체의 형태를 따르지도 않았다. 아마포는 내려앉아 있었다. 무언가가 안에서 빠져나간 것처럼 천이 안쪽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주름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모양은 유지된 채 안이 비어 있었다.

머리 쪽에 다른 천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몸의 천과 떨어져 있었고, 개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개어 놓은 것이다.

나는 그 천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만져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만지지 않았다.

나는 뒤를 돌아 밖으로 나왔다. 세쿤두스가 입구 옆에 서 있었다. 아블라가 돌 옆에 앉아 있었다. 긴 이름은 서 있었는데, 그의 두 손이 투구를 잡고 있었다. 투구를 벗은 상태였다. 경비 중에 투구를 벗는 것은 규정 위반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세쿤두스가 물었다.

“어떻게 보고하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체가 없다.” 세쿤두스가 말했다. “우리 넷이 지키고 있는데 시체가 없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내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의 손금 사이에 돌가루가 끼어 있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가루를 문질렀다. 가루는 줄어들지 않았다.

“어떻게 보고하지.” 세쿤두스가 다시 말했다.

6. 대제사장의 집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백인대장에게 먼저 보고해야 했지만 세쿤두스가 말했다. 사제들에게 먼저 가자고. 사제들이 이 임무를 요청했으므로 사제들이 먼저 알아야 한다고.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았다.

대제사장의 집은 성전 남쪽에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해가 떠 있었다. 아침 시간이었다. 대제사장의 종이 문을 열어 주었다. 우리는 앞마당으로 안내되었다가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사람이 여럿 있었다. 대제사장 외에 사제 서넛, 그리고 바리새인으로 보이는 자가 두 명. 그들의 얼굴에서 나는 우리가 가져온 소식이 이미 어떤 경로로든 전해졌다는 것을 읽었다. 놀라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놀라지 않는 사람은 두 종류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 놀라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 그들이 어느 쪽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보고했다. 경비 배치. 봉인 확인. 밤중 이상 없음. 새벽 ― 여기서 나는 잠시 멈추었다. 지진이 있었다고 말했다. 빛이 있었다고 말하려다 말하지 않았다. 빛이라는 단어는 보고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돌이 밀려 있었다고 말했다. 시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천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대제사장이 나를 보았다. 그의 눈은 내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나를 통과하여 뒤쪽의 벽을, 혹은 벽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다른 사제들과 눈을 교환했다. 방 안의 공기가 한 번 움직였다.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의 공기였다. 나는 그런 공기를 군대에서 여러 번 느꼈다. 작전이 변경되는 순간, 보급로가 바뀌는 순간, 후퇴 명령이 떨어지기 직전의 공기.

대제사장이 말했다. 옆에 있던 사제가 통역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나는 잠들지 않았다. 로마 군인은 경비 중에 잠들지 않는다. 잠들면 사형이다. 나는 16년 복무 중 경비에서 잠든 적이 한 번도 없다.

사제가 말을 이었다. “총독이 들으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나는 세쿤두스를 보았다. 세쿤두스는 나를 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잠시 보았다. 14년의 복무가 그 시선 안에 있었다.

그들은 돈을 내놓았다. 은전이었다. 몇 닢인지 나는 세지 않았다. 세쿤두스가 주머니를 열었다. 아블라가 손을 내밀었다. 긴 이름도.

나도 받았다.

은전은 손바닥 위에서 무게가 있었다. 은전의 무게와 돌가루의 무게는 달랐다. 은전은 셀 수 있는 무게였고 돌가루는 셀 수 없는 무게였다. 나는 은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 넣으면서 손바닥을 바지에 한 번 문질렀다. 돌가루가 바지의 천에 조금 옮겨 갔을 것이다. 그러나 손금 사이에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7. 조서

나는 이 보고서를 사실대로 기록한다고 첫 장에 썼다. 나는 그것을 첫 번째 문장으로 썼다. 지금은 마지막 장이다.

마지막 장에 쓸 내용은 이미 정해져 있다. 제자들이 밤에 와서 시체를 가져갔다. 경비병은 잠들어 있었다. 이것이 기록해야 할 내용이다.

나는 이것을 기록한다.

니산월 16일 밤. 경비 교대 중 4인 전원 수면 상태 진입. 해당 시간 중 미상의 인원이 봉인을 해제하고 돌을 이동시킨 뒤 시체를 반출한 것으로 추정됨. 경비 인원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음. 경비 실패의 책임은 ―

나는 펜을 멈추었다.

봉인은 총독의 도장이 찍힌 밀랍이었다. 봉인을 해제하려면 밀랍을 깨야 한다. 밀랍을 깨면 소리가 난다. 소리는 작지만, 경비가 잠들지 않았다면 ― 경비가 잠들었다면 듣지 못한다. 경비가 잠들었으므로 듣지 못했다.

돌의 무게. 무덤 입구의 돌은 내 어깨 높이였고, 양팔 폭보다 넓었다. 이 돌을 움직이려면 최소 네 명의 장정이 필요하다. 네 명이 돌을 밀면 돌이 바닥 위를 긁는 소리가 난다. 석회암이 석회암 위를 지나는 소리. 그 소리는 조용한 밤에 50보 밖에서도 들린다. 그러나 경비가 잠들었으므로 듣지 못했다.

돌가루. 돌이 밀릴 때 바닥과의 마찰로 가루가 발생한다. 가루는 돌의 이동 경로를 따라 바닥에 흩어진다. 경비가 잠들어 있는 동안 제자들이 이 가루 위를 걸어 다녔을 것이다. 그들의 샌들 자국이 가루 위에 남아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자국을 보지 ―

나는 잠들어 있었으므로 보지 못했다.

아마포. 시체를 훔쳐 가는 자들은 수의를 벗기고 시체만 가져갔거나, 수의째 가져갔을 것이다. 그러나 수의는 남아 있었다. 수의는 ― 수의는 시체의 형태를 유지한 채 안쪽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시체를 꺼내면 수의는 접히거나 흩어지거나 한쪽으로 밀려나야 한다. 가라앉지 않는다.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이 문장을 쓰면 안 된다. 이 문장은 잠들어 있었다는 진술과 양립할 수 없다. 잠들어 있었다면 수의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이 문장을 지운다.

나는 이 문장을 지웠다. 그러나 지운 문장이 파피루스의 섬유 사이에 남아 있는 것을 나는 안다. 잉크는 파피루스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완전히 지우려면 그 부분을 찢어 내야 한다.

나는 찢어 내지 않았다.

이 보고서에는 기록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빛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빛은 ― 빛은 보고서에 기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소리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소리는 ― 끝나지 않는 소리는 보고서에 기록할 수 없으므로.

내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시간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나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얼굴이 돌에 닿아 있었고, 돌의 차가움이 뺨에 와 있었다. 뺨에 돌가루가 묻었다. 그 가루가 묻은 채로 나는 아침까지 있었다.

나는 이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보고서를 완성한다.

결론: 경비 인원의 수면 중 미상의 인원에 의한 시체 반출. 경비 실패. 본 보고서를 사실대로 기록함.

날인.

나는 이 보고서를 말아서 끈으로 묶는다. 끈을 묶는 내 두 손이 보인다. 오른손의 손바닥에 돌가루가 끼어 있다. 나는 왼손 엄지로 오른손의 손금을 긁는다. 가루의 일부가 떨어진다. 일부는 남는다.

나는 이 보고서를 제출할 것이다. 제출하면 이것은 기록으로 남는다. 기록은 사실이 된다. 사실이 된 기록 안에서 나는 잠들어 있었고,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갔고, 무덤은 비었다. 그것이 기록의 사실이 될 것이다.

기록 바깥에는.

기록 바깥에는 내가 보았으나 기록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내 손금 사이에 남아 있다.

나는 손바닥을 턴다. 가루가 조금 떨어진다. 탁자 위에 떨어진 가루가 촛불 빛에 희미하게 보인다. 나는 다시 턴다.

남아 있다.

제 1 권 · 목 차
  • 1편 말고
  • 2편 연회장의 잔 가나의 연회장
  • 3편 비어 있는 자리 시몬의 아내
  • 4편 빌려준 하루 나귀 주인
  • 5편 꿈을 꾼 여인 클라우디아 프로쿨라
  • 6편 내 아들이 졌던 나무 구레네 시몬의 아내
  • 7편 조서 로마 경비병